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라니 Nov 24. 2022

서른다섯이 마흔다섯에게


서른쯤 되면 많은 게 정리돼 있을 줄 알았다.



가치판단의 기준이 자리 잡혀 의심 없이 옳은 선택을 하고, 드러나는 것 이면을 보는 지혜도 생겨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이 아니라 실존과 대면하길 두려워하는 우리의 자아다!" 따위의 정신 나간 말을 담담하게 할 줄 알았다.


서른을 훌쩍 넘은 지금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은 저절로 생기는 건 나이와 주름밖에 없다는 거다. 그릇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지조차 못한 채 이미 잘못을 저지른 다음이고, 이면을 보는 지혜는커녕 의심만 늘었다. 이십 대의 내가 지금의 날 본다면 분명 멋있다고 말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한 가지 나아진 게 있다면 자의식의 버블을 조금은 걷었다는 거다. 예전엔 머릿속에 나, 나, 나, 너, 나, 나, 너, 나로 가득했다면 지금은 '너'가 하나, 둘 정도 더 생겼다. 생각보다 짜릿한 경험이다. 나의 끔찍한 자의식 터널을 거치면 누가 무슨 이야길 하든 내가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있는 크기의 아주 협소하고 빈약한 것이 되어 버렸는데, 그런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네 이야길 들어보니 그건 생각보다 훨씬 크고 옳고 멋있었다.


더하기가 어렵다면 빼기라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볼까 싶다. 깊이 있어 보이려고 입을 꾹 다무는 연기는 그만하고, 드러내고 표현해서 가벼워지고 싶다. <미나리>에서 할머니도 그러셨잖아. 숨어있는  더 위험하니까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낫다고. 물론 회사에선 밑천 드러나면 안 되니까 계속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지만.


그러니 마흔다섯 살 생일엔 지금보다 가벼운 사람이 되어 있길 바란다. 편한 사람이 되어 있길 바란다. 옳은 결정을 내리려 주저하지 말고, 온전히 책임만 지고 있어라.

그때 브런치에 내 얘기 말고 다른 사람들 얘기가 더 많으면, 지금보다 멋있어졌다고 말해줄 테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힘 빠지는 글은 쓰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