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행복만을 보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겁고 힘들었다. 제목에서 <행복'만'~>이라고 '만'자에 따옴표를 붙인다면 책의 느낌이 더 살 듯 하다.
(아래 내용에는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가 끝났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2부와 3부로 향할수록 고조되었던 감정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기억의 단편들이 잘 엮어져 이미지들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1부 그리고 충격적인 1부의 마지막 장면과 달리, 2, 3부는 그 후의 일들이 다소 담담하면서도 상투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2, 3부가 있기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완성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1부에서는 남자 주인공 앙투완의 가정사가 그려지며 그의 심리와 성격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아들 레옹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되며 지난 날을 회상하는 형식이어서인지 아님 아들에게 쓰는 글이어서 다소 격한 표현이 걸러져서인지 주인공이 처한 불우한 환경, 고통 등이 다소 무덤덤하게 그려지는 면이 없잖아 있다.
내가 비겁한 건 화를 밖으로 꺼내지 못하기 때문이야. 용서란 것은 이제껏 한 번도 인간적 특성이었던 적이 없어. 난 알아. 서로 싸워야 해. 다시금 기꺼이 짐승이 되어서 물어뜯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해. 정 안 되면 숨어버리던가.
사람들은 날 아프게 했지만, 그 상처를 더 헤집어놓은 건 나였으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우리가 생각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란다. 힘겨운 일이지.
사람들은 무언가를 할 때, 그건 다 자신이 남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하는 거라고 하지? 그렇지만 난 진실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 사람은 누구나 늘 혼자인 거지. 그게 날 슬프게 해.
세상 모든 사람은 백지상태를 꿈꾸지만, 불행히도 결국엔 하얀 종이 위에 뭐라고 써 있는 글자를 발견하고 말지.
아버지의 방임과 어머니의 가출, 이혼, 쌍둥이 여동생들 중 한 명의 죽음.. 평탄하지 않은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앙투완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처럼 그의 아내도 새로움을 찾아 떠나게 된다.
여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꿈꾸도록 만들어야 한다. 설령 네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도 해. 세상 모든 여자들은 현실이 아니라 희망을 바라보며 사니까. 현실만 바라보고 사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저녁 7시 30분에 저녁상을 차리고, 쓰레기를 비우고, 굿 나이트 키스를 하고, 주일엔 몽투아 카페에서 4프랑 50상팀짜리 타르틀레트를 사 먹는 동안, 한 여자의 인생은 너무 허무하게 무너져버리고 말지. 너무 허무하게
더는 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탈리는 바람을 피웠던 거야. 피팅 룸과 불꽃 이는 눈빛, 지속되지 않는 순간을 원했으니까. 수차례의 처음과 마지막을 원했지. 우리 부부 사이는 지속과 확신을 향해가야 했는데, 나탈리는 계속 뜨거운 열과 독을 꿈꿨어.
어머니가 떠나가는 걸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아버지처럼 그 역시 아내를 붙잡지 못한다. 가정에 무심했던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닮아가는 모습을 보인 앙투완. 힘겹게 아이 둘을 키우던 그는 회사에서도 내쫓기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아내를 보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간다.
사람은 말입니다. 사생활이 엉망이 되고, 가족이 무너지고, 사회생활까지 땅속으로 꺼지다 보면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요. 다시는 아무도 자기를 차지 못하는 곳으로요. 그래서 그랬겠죠. 아마도 그게 불씨였지 싶네요.
어느 날 평소와는 달리 유독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그는 그 날 밤 충격적인 행동을 하고 만다. 1부가 진행되면서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느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이것들이 갑자기 터져버려서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다가 순간 화면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미리 사둔 권총으로 자고 있던 첫째 딸을 쏜 후 총구가 막내 아들을 향해 겨눠지는데... 결국 실패한 앙투완. 주인공의 심리선을 따라갔기 때문인지 마치 조용했던 곡이 절정에 이른 것처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자살하거나 타인을 죽이고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려는 욕망은 언제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무한한 욕망, 상대방과 서로 마음을 합해 결국 상대방을 구원하려는 무한한 욕망과 만나 배가된다.
루이 알뛰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1부의 마지막 장면을 넘기면 위와 같은 글귀가 나오는데, 아마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이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삶을 살아왔던 앙투완은 자신의 한계(부모의 울타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때문에 불행하게 살아 갈 아이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행복했던 기억만을 남긴 채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충격적인 장면이지만 종종 뉴스 기사를 통해 비슷한 예를 접하곤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일가족 동반 자살(사실은 자살을 빙자한 살인인..)을 시도한 가장을 보면 그의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아이들의 생명은 그들의 것인데 그것을 부모가 소유물처럼 다루는 건 물론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앙투완도 같은 입장이지만 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서인지 그 마음이 어느 정도는 공감되는 것 같아 울컥했다.
한편의 영화같았던 1부가 끝나고 나니 쉽사리 책이 읽혀지지 않았다. 흥분과 놀람, 슬픔으로 가득한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2부에 들어서니 전혀 다른 장면들이 펼쳐졌다. 타국으로 쫓겨난 그는 홀로 호텔에서 청소부 일을 하며 낯선 이들과 인생의 2막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터에서 축구 연습을 하던 남자아이와 친해지면서 아빠 노릇을 하게 된다. 아이의 엄마는 실은 누나인데 과거 성폭행을 당해 낳은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아이를 매개로 여자와 친해진 앙투완은 과거 아내와의 불 같은 사랑과는 대비되는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깊은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은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3부는 아버지로부터 총을 맞아 턱이 날아가버린 딸의 입장에서 쓰여져 있다. 심리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왜 당신은 날 먼저 쏘았나요?' 라는 3부 제목처럼 아버지를 원망하다 서서히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를 이해해보려 한다.
사실 1부에 비해서 2, 3부는 다소 맥이 빠진 느낌인데 특히 3부는 더 그러했다. 추측하건대 앙투완의 시점인 1, 2부에서는 작가의 경험이나 시각이 잘 녹아져 있지 않았나 싶다. 특히 1부에서의 심리 묘사는 너무도 섬세하여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반영된 것 같았는데, 딸의 입장에서 쓴 3부는 왠지 모르게 급하게 진행되고 너무 쉽게 용서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그러나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행복'을 위해서는 2, 3부가 존재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1부 마지막 장면을 계기로 앙투완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으며 진짜 자기의 모습을 찾아나간다. 그의 부모를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들로부터(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이들 역시 그 사건으로 인해 대물림되던 가족의 굴레(마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한 가문이 여러 대에 걸쳐 겪는 숙명적 고통처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의 인생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딸의 턱이 여러 번에 걸친 수술과 치료로 서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그녀의 분노와 고통도 차츰 용서와 희망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책의 가장 마지막 장면, 딸은 환상 속에서 타국의 해변을 걷고 있던 아버지와 조우하게 된다. 그와 함께 있던 남자 아이와 자기를 동일시하며 아버지를 바라보는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면 아마도 아버지를 용서한 듯 하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전 그녀는 어렸을 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정원에 피어있던 히야신스 꽃, 함께 수영장을 만들던 아버지의 모습 등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며 생각한다.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행복했음을 깨닫는다고, 고통과는 달리 행복하게 사는 순간에는 결코 그 행복을 깨닫지 못한다고.
이런 그녀의 생각은 1부에서 앙투완의 대사와 겹쳐진다. 앙투완은 그의 딸이 떠올렸던 그 장면들과 꼭 같은 기억들을 회상하며 말한다.
그저 행복만을 보았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고통이 있기에 행복도 존재한다. 또 사람은 그야말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는 행복'만'을 봐야하는 게 아닐까. 아픈 기억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들 위주로 재편집된 영상은 살아가면서 계속 반복 재생된다. 또 그것은 앞으로 인생을 헤쳐나가는 데 절대적인 힘이 되어준다.
제목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우울함이 감도는 책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작가의 탁월하고 또 섬세한 심리 묘사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어 있는 이미지 및 장치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도 개성있고 몇몇 문장들이 마음을 탁 치곤 한다. 읽기는 다소 힘겨운 책이었지만 몇 가지 교훈점마저 있었다.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심지어 행복도 느끼며), 그리고 부모가 되기 이전에 자신의 가정사와 그로 인한 성격들은 극복을 해야 한다는 것. 두 번 읽기는 힘들겠지만 마음의 상처가 있는 이들에게는 한번쯤 읽어 볼 만하다고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