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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18. 2017

133. Englishman in New York

2017년 7월 10일, 여행 292일 차, 미국 뉴욕

불세출의 성공을 거둔 그룹 'Sting'의 대표곡 중 하나인 'Englishman in New York'이 있다. 뉴욕 속의 영국 신사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저 노래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 노래가 유독 그날의 나에게 다가왔다. 미국의 심장 뉴욕 속의 영국인. 합법적인 이방인이라 외치던, 그 고독함의 외침이 내 외침 같기도 했으니까. 토론토를 떠나 본격적인 미대륙의 여행지로서 정한 첫 목적지 뉴욕에서 외치는 군중 속의 고독한 외침 말이다.


미국의 심장으로 향하다


토론토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사실 미국 여행에 대한 큰 정보가 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계획이 그렇게 치밀하지 못했다. 비용이나 일정적인 측면 때문에 동부는 과감히 포기하고 서부에 집중하기로 계획을 짜고 왔다. 그런데 미대륙 동부에 위치한 토론토에서 아주 가까운 뉴욕을 안 보고 가는 게 너무 아깝지 않겠냐는 정 사장님의 말씀에 바로 뉴욕행을 결정했다. 토론토에서는 버스로 약 12시간 이동, 야간 버스로 이동하면 하룻밤 사이에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이동할 수 있다. 11시경에 도착한 뉴욕에서 짐을 맡기기 위해 알아둔 곳으로 향했다. 약 10$(한화 11,500원)으로 짐을 보관해 주는 서비스를 하는 보관소였다. 뉴욕을 떠나기 전, 혹은 나처럼 당일로 짧게 봐야 한다면 이용해야 하는 서비스였다. 아무튼, 짐을 맡기고 나서 지도를 보지 않고 대강 따라나갔는데, OMG. 짐 맡기는 보관소 근처가 바로 타임스퀘어! 영화 속에서만 보던 타임스퀘어가 내 눈 앞에 펼쳐지다니! 

낮인데도 환하게 켜져 있는 전광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뭔가 내가 뉴욕에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창을 넋을 놓고 있다가 오늘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고 바로 움직였다. 내 오늘의 계획은 짧은 시간이지만 타임스퀘어와 센트럴 파크, 월가와 메모리얼 파크 그리고 브루클린과 MoMA 정도를 관람하고, 네팔에서 함께 트래킹을 했던 Sophie를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반나절 동안 이게 가능할까 싶었어서 계획을 대폭 축소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급한 대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브라이언트 공원(Bryant Park)으로 향했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작은 공원이었던 브라이언트 공원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록펠러 센터를 배경으로 하여 마천루를 등지는 멋진 공원이었다. 공원 안에서는 직장인들이나 여행자들이 담소를 나누며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탁구를 치는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은 뭔가 바쁘고 정신이 없는 대도시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타임스퀘어도 그렇고 브라이언트 공원도 그렇고 보면 여기가 세계 경제의 중심 수도인지 그냥 관광지인지 혼돈이 올 정도니까.

공원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써서 빨리 가장 먼 곳에 있는 브루클린을 보기 위해 뉴욕 메트로를 타고 이동하기로 한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의 전철이 엄청 좋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뉴욕의 전철은 한국 전철만도 못한 시설과 역 환경을 갖고 있다. 물론 곳곳에 잘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서유럽이나 바로 전날까지 타던 토론토의 전철보다도 더 심각했다. 하지만 그 옛것의 느낌이 있었다. 여러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그곳을 실제로 보는 것이니까! 아무튼, 전철을 타고 브루클린에 도착해 사진을 많이들 찍는다는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에 향했다.

뉴욕에 있는 모든 볼거리들은 각종 매체에서 많이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처음 보면 신기함이 자리 잡다가 이내 익숙함이 몰려온다. DUMBO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대하지만 단순한 건축물 사이에 비치는 맨해튼 브리지, 그리고 아래에 귀엽게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한참을 셔터를 눌러대며 시간을 보냈다. 야간 버스의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근처 공원에서 낮잠을 잤다. 


Englishman in Newyork

낮잠이 길어져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내가 계획한 것들은 엉망이 되었던 데다가 Sophie가 초대해주기로 한 시간이 조금 밀려졌다. 시간이 조금 남아 해가 지는 모습의 맨해튼을 보기 위해 브루클린 공원으로 이동했다. 하늘을 긁을 듯한 마천루와 허드슨 강이 이루는 풍경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뉴욕을 걸어 다니는 동안 보통 여러 여행자들이 뉴욕에 안성맞춤인 노래를 듣는데, 아마 가장 많이 듣는 곡은 Jay Z와 Alicia Keys가 함께한 'Empire state of mind'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위에 언급된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가장 많이 들었다. 특히 저 풍경을 보면서 많이 들었다. 멜로디는 꽤 철 지난 올드 팝의 느낌 같지만, 가사를 보면 이 노래를 자연스레 듣게 되는 이유가 있다.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나는 이방인이에요, 합법적인 이방인이죠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나는 뉴욕에 있는 영국인이니까요

작게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에서 선물했다는 여신상은 뉴욕 속 이방인 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뉴욕에 있는 동안, 그 어떤 편안함도 느낄 수 없었다. 뉴요커들의 삶처럼 살고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완벽한 여행자의 모습을 한 채로 천천히 그런 것들을 느낄 수도 없었다. 가방을 멘 채, 제삼자처럼 그들의 삶을 언뜻 들여다보고 있는 이방인의 모습이 나 같아서, 가사 속 영국 신사의 처지가 나 같아서.

그것은 나중에 뉴욕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타임 스퀘어를 다시 찾았을 때도 느꼈던 감정이었다. 화려하고 밝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에서 숙소 하나 없이 당일로 이 곳을 봐야 하는 신세가, 뭔가 합법적이지만 이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이방인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래서 Englishman in New York이 더 끌렸나 보다.


Meet up Again

뉴욕에 오면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여행을 조금 거슬러 작년 10월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팔에서 트래킹을 할 때였다. 혼자 출발한 트래킹은 한 명, 두 명이 더해져서 마지막 날 헤어질 때에는 모두 5명의 친구가 함께 트래킹을 했다. 비자 문제로 인해 나는 중간에 하산해야 했지만 그 친구들과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Sophie다. 

2016년 10월의 네팔. Thor, Von, Joseph 그리고 Sophie와 나. How are you guys :-0

Sophie는 프랑스계 미국인이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학교를 마치고 네팔로 왔던 것인데, 취업을 뉴욕으로 했던 것이다!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었기 때문에 프랑스로 가던, 미국 뉴욕에 가게 되면 한 번 보기로 했는데 내가 뉴욕으로 갔기 때문에 Sophie가 시간을 내어 만나주었다. 1년을 향해가는 동안 못 본 사이에 나는 나대로, Sophie는 Sophie대로의 삶을 살았기에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Sophie는 'Taek, 너 영어가 정말 많이 늘었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는 말을 가장 먼저 했다. 지금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당황하는 것이 덜해진 탓에 그런 변화가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는 너무 바빠졌어. 우리가 같이 산에 오를 때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야!'라고 말했다. 뉴욕, 그것도 금융의 중심이라 불리는 월가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너무 바쁜 삶을 요즘 살고 있기 때문이다. Sophie가 직접 준비해준 저녁을 먹으면서 한창 각자 지내온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면 뉴욕 야경을 조금은 볼 수 있는데 올라가 볼래?' Sophie의 제안에 함께 올라가 짧은 시간이지만 앉아서 함께 야경을 봤다.

Sophie와 함께, New York

여행에서 만났던 다른 나라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때의 추억을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고, 그때로부터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알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Sophie와 식사하고, 이야기하고,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중/남미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 다시 오게 되면 또 Meet up 하기로 약속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고마워!


방심하지 말 것, 뉴욕의 밤!

Sophie의 집에서 나오고 나서는 시간이 꽤나 남았다. 두 군데 정도의 명소를 더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심 속 기찻길을 공원으로 만들었다는 하이라인(High line) 공원에 갔다 월 가(Wall st.)를 들러서 공항으로 나갈 요량이었다. 맡긴 백팩을 찾은 뒤 무거운 배낭을 진 채로 하이라인 공원에 갔다. 입구로 알려진 곳에 문이 닫혀 있길래 다음 블록에 있는 입구로 향하니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어 한참을 걸어 출구가 있는 위치로 갔는데, 문이 잠겨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새벽 12시에 뉴욕 한 복판 공원에 갇혀 버린 것...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공원 내부에 '응급 전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한테는 응급 상황이니 도움을 요청했는데 전화를 받았던 사람이 'Is it emergency call, Right?'이라 물었다. 처음엔 너무 급하니 아무 생각 없이 'Yes'라고 대답하고 나서 전화가 끊어졌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뉴욕에선 응급 전화로 인해 사람이 오게 되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행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은 탔다. NYPD 두 명과 NYFD 두 명이 와서 나의 상태를 묻더니 '문은 우리도 열 수가 없어서 만약 문을 열려면 정말 공원 관리인을 불러야 한다'는 대답을 했다. 지금은 나가는 것도 중요하고 큰돈이 나가는 것도 중요해서 역대급 멘붕에 빠졌다. NYPD가 '그럼 네가 왔던 입구를 확인해 줄 테니, 열려 있다면 거기로 나오도록 하자'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잠시 후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내가 들어왔던 입구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불리지 않았지만 나 때문에 결과적으로 NYPD와 NYFD가 출동했으니 '돈은 어느 분께 드리면 될까요?'라고 묻자 '우리 실수니까 돈은 주지 않아도 됩니다. 폐장 시간을 체크하고 공원에 방문하도록 하시고 다른 분들께도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혹자는 뉴욕의 밤거리가 무섭다고 하는데, 밤거리를 거니는 것 자체보다 이런 돌발 상황이 무서운 것이라는 걸 오랜만에 섬찟하게 깨닫게 되었다. 항상 여행은 방심을 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계획을 수정하여 월가를 포기하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미 대륙 본격적인 여행이 펼쳐질 서부, 그 시작인 샌프란시스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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