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2일, 여행 366일(여행 1주년). 지구 반대편에서
에콰도르에서 페루로 이동하기로 해 특별한 일정도 없었다. 심지어 이 이동은 약 32시간 정도가 걸렸기에 특별하게 기록할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2017년 9월 22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날이었다. 2016년 9월 22일에 출발한 여행이 꼭 1년을 맞이했기 때문. 그래서 이번 글에는 내가 한국을 떠난 지난 1년가의 여행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365일 동안 움직인 나라는 현재 체류 중인 에콰도르를 포함 37개국이다. 처음 계획보다 더 많은 나라를 왔고, 예상과 다른 움직임을 한 경우도 많았다. 크게 보나 작게 보나 내 여행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의 여행을 보자면, 완벽한 계획은 없다고는 해도 몸으로 부딪히며 개선해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알아보고 간 교통편이 없어서 다시 찾고, 대체 편으로 가고, 숙소가 방이 없어서 계속 알아봐야 했고,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서 노숙한 것도 몇 번이나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원래 계획과는 다른, 인터넷에서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루트로 가고 있는 셈이니까. 큰 계획으로 보자면 내 체류 일정에 대한 것인데, 단순히 셈으로 나누어 보면 한 국가에 10일 정도 체류한 것으로 나온다. 물론 처음 계획을 만들 때에도 일부 국가들은 짧은 체류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처음 포부에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굉장히 오래 머물 것처럼 구상을 하고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여행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문제로, 혹은 치안의 문제로, 혹은 동행과 함께 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바쁘게 움직인 나날들도 많다. 본디 시행착오라는 것은 후에 개선이 있어야 하는데, 딱히 개선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냥 이게 내 여행인 것을. 한 때는 이런 시행착오에 푸념을 늘었더니, 여행 시작은 후배여도 아프리카를 진하게 즐기고 있는 한 여행자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게 오빠 여행이죠. 여행에 잘나고 못나고 가 어딨어요.
각자의 여행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 이후에는 누군가와의 비교보단 그냥 지금 내 여행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도 많고, 보고 오지 못한 곳도 많고, 깊게 즐기지 못한 곳도 많다 한들. 이 것 마저도 내 여행의 모습 아닌가. 심지어 이 여행은 내 인생에 처음인데 말이야, 어떻게 완벽하겠어 :-P
홀로 배낭 들쳐 매고 나온 여행이다. 나라를 건너는 비행기도, 도시를 이동하는 버스도, 여행지로 향하는 발걸음도, 잠을 자는 그 숙소도 대부분 혼자인 경우가 많다. 여차저차 홀로 출발한 세계일주라고는 해도 이 여행은 절대 혼자 해 낼 수 없는 여정이었다. 여행을 허락 해준 가족도 있지만, 출발 전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준 친구, 선배, 후배들이 있다. 한국을 떠나 있기 때문에 이 분들의 감사함을 잊기 쉽지만 늘 그들을 떠올릴 만한 매개물들을 보면서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여행을 하는 중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모든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행한 국가 중 75% 이상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이름을 Shout-out 하지는 않아도 그 함께한 모든 이들께 감사하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큰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을 꼽자면 우꾼. 여행의 1/3을 같이 한 최고의 동반자였으니까. 모든 사람들과 아직까지 깊게 연락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나를 믿고 응원해주고, 그렇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일 년이면 이제 군대 간 성인 남자가 상병을 달고도 남는 시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날 말은 1년이면 빌딩이 지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변화는 빠르고, 그 시간 동안 여러 얻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여행엔 깨달음이 없다. 누군가 '그 1년의 여행 동안 뭘 얻으셨나요'라고 물어보면 답을 하기가 꽤 어렵다. 사실 거창한 목적도, 또렷한 방향도 없으니까. 누군가는 이런 나, 혹은 나와 같은 이에게 '목적성을 갖고, 방향을 가져라. 그럼 여행(혹은 방황)이 더 의미 있게 된다'라고 한다.
그런데, 되려 이렇게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얻어야 할까? 어떤 목적이 꼭 있어야 할까? 일정한 방향으로 꼭 향해야 할까?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왔던 래퍼가 다른 라디오에서 했던 말이 나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아무것도 찾지 마세요. 재미만 찾으세요. 좋아하는 것 말이에요.
정말 아무것도 안 찾아도 돼요. 그 스트레스를 도대체 누가 준건지 모르겠어요.
이 세상이 웃긴 게 왜 꼭 꿈이 있어야 합니까? 열심히, 잘하는 거 왜 있어야 해요?
아무것도 찾지 마세요. 그냥 끝까지 못 찾아도 상관없어요.
시간이 정지돼 있는 게 아니에요.
계속 흘러가는 동안 무언가를 계속 찾아야 한다는 그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낼 수도 있다 생각해요
만약에, 정히 찾을 게 있다면 낙을 찾으세요!
그냥 나에겐 그 낙이 여행이었다. 원래 좋아하던 것이었고, 사무실에 앉아 멍하게 있을 때 유일하게 떨리고 즐거웠을 때는 여행했을 때를 떠올렸을 때 것이니었으니까. 그렇게 출발한 여행이었고 나는 지금 즐겁다. 무얼 보지 않아도, 무엇을 느끼지 않아도 매일이 즐겁다. 그래서 깨달음이 없어도 나에겐 행복한 여행이다. 그래, 누군가 나의 여행에서 무얼 얻었냐 물으면, 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깨달은 건 없다고 해야겠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벌써 1년이나 흘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