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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Oct 22. 2017

163. 사막 덕후의 네 번째 사막

2017년 10월 6일~8일, 여행 380~382일, 페루 이카&나스카

여행기에서 몇 번 언급되었지만, 나는 '사막 덕후(?)'다. 여행하다가 사막이 있으면 꼭 한 번은 들러서 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여행에서는 총 세 번의 사막을 지나쳤다. 인도의 자이살메르 지역 사막,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 이집트의 바하리야 사막이었다. 유럽에선 사막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북미에서는 사실상 내가 돌아다닌 모든 곳이 사막지역이라고 봐도 무관하지만 모래언덕이 따로 없었으니까. 그리고 남미에서 드디어 사막이 등장했다. 다양한 지형이 있는 이 곳, 페루에 있는 이카 지역에! 바로, 사막이 있다.

고립된 오아시스, 와카치나


이카는 리마에서 약 5시간 떨어진 거리의 도시이다.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지만 페루를 찾는 많은 외국인이, 또 내국인이 이 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바로 아름다운 사막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덩그러니 떨어진 그 사막 안에 오아시스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밤 12시에 리마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새벽 5시에 도착한 이카에서, 다시 20여분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면 모래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 와카치나(Wacachina) 사막을 만날 수 있다. 처음 도착해서는 새벽이라 보이는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새벽 6시여서 체크인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는데 숙소에서 '공용공간 소파에서 자도 좋다'라고 해서 소파에 몸을 누였다. 사막은 역시 일교차가 엄청났다. 건물 안인데도 불구하고 한기가 몰려와서 천을 꽁꽁 싸매서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노숙에 익숙하다고는 해도 추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몇 시간을 때우다가 점심 즈음이 되어서야 움츠렸던 몸을 켜고 나갈 수 있었다.

초저녁의 풍경은 또 다르다. 사막덕후는 역시 사막에 있어야 제맛이다

 낮이 되자 햇빛을 받아 금방 달아오르는 것 역시도 사막. 순식간에 반팔만 입고 다녀도 될 정도로 더워졌다. 사실 이 곳 와카치나 사막은 그렇게 큰 특징은 없다. 나미브 사막처럼 붉은 모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바하리야 사막처럼 독특한 구조를 띄지도 않는다. 자이살메르 사막처럼 사막으로 마나 둘러싸여 있지도 않은 꽤나 작은 사막 지형이라 사막에 올라서면 주 도시인 이카가 보일 정도니까. 하지만 와카치나 에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이 꽤나 독특하다. 역시 사막은 매력덩어리다. 사막은 늘 옳아.


다이내믹 버기 투어

사막의 또 다른 매력은 다른 지형에서 즐길 수 없는 재밌는 액티비티일 것이다. 인도나 이집트 사막에선 전통음악을 들으며 별을 보는 사막의 밤이 있었고, 나미브 사막에선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을 보며 즐기는 스카이다이빙이 있었다. 이 곳에는 엄청난 출력으로 사막을 달리는 버기카 투어와 샌드 보딩이 있다! 

일반차량은 사막을 달릴 수 없다. 모래 아래로 바퀴가 푹푹 빠져버려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아래로 내려갈 뿐이다. 출력이 강한 4륜 구동 차량 같은 것들이 그런 지형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이 곳에서는 4륜 구동으로 움직일 뿐 아니라 무식할 정도로 출력이 강한 버기(Boggy) 자동차를 이용해 사막을 질주한다. 기어도 특별히 없다. 전진, 정지, 후진. 이 세 가지 기능에 무식할 정도로 타이트한 안전벨트를 착용한 채로 달린다. 왜? 엄청나게 흔들리니까. 게다가 그 엄청난 힘으로 모래를 뚫고 나가니 무래가 사방천지로 튀는 건 당연지사. 모래를 홀딱 뒤집어쓴 채로 달리는 버기카는 롤러코스터보다 짜릿하고 번지점프만... 큼은 아니지만 강렬하다! 한참을 달리다 모래언덕이 나오면 차를 언덕 위에 세워두고는 커다란 널빤지에 양초를 바른다. 모래를 설원 삼아 나아가는 샌드 보딩(Sand boarding)을 즐기기 위함이다. 사실 난 이 샌드 보딩은 그렇게 즐겁지가 않다. 나미비에에서 해보기도 했지만, 이게 하고 나면 모래가 며칠을 가기 때문. 처음엔 꺼려졌다가, 결국은 또 재밌게 탔다!

버기카 투어의 대미의 장식은 사막에서 보는 일몰이다. 함께 차를 탄 친구들과 노래를 틀어 놓고 준비해 간 맥주를 마시면서 해가지는 사막의 모습은 역시 아름답다. 사막의 일몰이 아름다운 이유는 도시나 산처럼 경계선을 긁는 형태의 지형이 없기 때문이다. 모래가 그리는 부드럽고 완만한 지평선과 곡선이 만들어내는 일몰과 그 실루엣은 정말로 아름다우니까! 돌아오는 길 드라이버는 우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일몰로 잠잠해질 법 한 우리의 마음을 버기카로 들썩거리게 했다. 말 그대로, 다이내믹한 버기카 투어였다! 


아쉬워서, 나스카

원래는 1박만 하고 바로 나가려고 했던 이카였는데, 버기 투어를 하고 나니 피곤해서 보고 싶은 것 한 가지를 보지 못했다. 바로 사막의 밤. 오아시스와 어우러지는 사막의 밤을 보지 못했다. 하룻밤 더 늘려 사막의 밤을 보러 가기로 했다. 밤은 그렇게 보낸다 쳐도 낮에는 할 게 없어서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이카에서 버스로 약 2시간 떨어진 나스카를 가보기로 했다. 미스터리 서클이나 여러 지상화가 그려진 곳이지만 경비행기를 타야 온전히 그것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돈 없는 여행자(...)니까 저렴한 전망대를 이용해 몇 개의 지상 화만 보기로 했다.

나무 모양 지상화와 작은 새 모양 지상화를 볼 수 있었던 전망대. 가격은 단 돈 1불이면 볼 수 있다.

그날 괜스레 남겼던 글을 다시 옮겨 적어본다.

Las lineas de Nasca.
돈이 없어서 경비행기는 차마 못 타고 천 원짜리 전망대에서 3개만 바라본다. 누가, 왜 그렸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렸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다. 축복받은 기후와 지형 덕에 일부러 지우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도 않는다. 대자연이 신기하다고는 해도 가끔은 이런 인간의 노력이 보이는 것들이 더 놀라움을 주는 경우가 있다. 오가는 시간이 더 길었지만 지는 태양과 바닥의 그림, 황량한 환경이 주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던, 신기한 인류의 유산. 

만약 비행기를 타고 이 광경을 봤다면 어떤 느낌일까. 가끔은 사람이 더 놀랍다는 걸 다시 느끼고, 아쉬움도 남긴 상태로 그렇게 나스카를 등지고 이카로 다시 돌아왔다. 아스카의 아쉬움을 등지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한 뒤 와카치나 사막의 밤을 보려고 사막 언덕을 오르고 올랐...지만 대 실패였다. 오아시스가 만드는 안개와 만월 그리고 밤늦게까지 화려한 밤거리의 와카치 나는 그야말로 대 실패... 아스카만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사막의 밤도 아쉬움을 남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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