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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Jan 05. 2021

169. 체험 삶의 현장, 포토시

2017년 11월 4~5일, 여행 409~411일 차, 볼리비아 포토시

우유니에서 다른 일행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해갔다. 나 혼자 마지막까지에 남아있었고, 나는 볼리비아에서 다음 목적지를 설정해야 했다. 비행기는 가급적 이용하고 싶진 않았다. 지도를 펼쳐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세계 3대 폭포 중 마지막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경계에 있는 이과수 폭포가 남아있었다. 결국, 우유니에서 육로로 이과수 폭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 번에 가는 이동수단이 없기 때문에 볼리비아에서 상징적인 몇 도시를 둘러보고 볼리비아를 떠나기로 했다. 


옛 영광은 어디에

버스 창가에서 보이던 풍경, 초지의 중간중간 검은 점들은 돌멩이가 아니라 전부 야마(llama)이다

우유니에서 버스로는 약 4시간, 안데스 산맥의 그 구불구불하고 높은 길들을 따라 한참을 이동해야 나오는 포토시는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탄광이며 스페인 식민 정복 시대 최대의 금/은 생산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포토시는 정말 작게 보이는 초라한 도시였다. 실제로도 최근에는 금/은 채산성이 떨어져 있어 과거 우리나라의 정선 처럼 멈춰버린 탄광도시의 느낌이 강하다고. 아무튼, 4시간이나 굶었던 나는 해가 지기 전 배를 채우기 위해 황급히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의 모습도 그간 다른 도시들 보다 더 작고 오밀조밀한 느낌이 있어서 이 도시의 규모나 과거의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사실 그때는 뭔지도 몰랐던 음식이지만 안티쿠초(소 염통구이)와 피카로네스(밀가루 튀김)을 시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후후 불어먹었다.

사실 남미에서 시장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조금 그럴듯한 점포의 시장음식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이날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예약한 숙소도 영어가 많이 되지 않아 겨우 물어물어 시장을 찾았던 터라 먹게 되었는데, 다행히 맛있었고 배탈도 나지 않았다. 배만 대중 채우고 숙소로 와 내일 나가야 할 '탄광투어'만 예약한 채 몸을 누였다. 볼리비아는 남미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못 지내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그 안에 투어를 갖고 있고, 거에 정말 큰 도시라고 이야기를 들어 기대가 컸던 걸까? '도대체 과거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은 어디서 볼 수 있는 걸까?'라는 의심을 가진체 내일을 위해 잠들었다.


탄광, 삶의 전부이자 이유

아침 8시 집합인 탄광투어. 이젠 오래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 가격이었다. 대부분 숙소에서 예약할 수도 있고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수도 있다. 사람을 모아오면 가격이 싸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서 여행사에 홀로 예약했다. 집합시간이 되면 인원을 확인하고 탄광에 들어갈 때 필요한 광부복을 나눠준다. 그리고 나서는 시장에 잠시 멈춘다. 가이드가 말하길, 광부들은 보통 음식을 먹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일을 한다고 한다. 화장실도 없는 지하갱도에서 음식물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니까. 그래서 코카 잎이나 담배, 콜라나 간단한 에너지바와 같은 부피나 무게 대비 열량이 좋거나 그들의 피곤함을 잊게해주는 음식들을 챙겨가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관광객들이 대접하는게 나름의 예의라고. 왠지 모를 강매같지만 그럴싸한 말이라 나도 담배 몇 까치와 음료 그리고 코카잎을 사봤다.

형형 색색의 광부복. 내가 입은 사진은 차마 올리기 민망하다. 우측은 담배와 코카잎이다. 각성효과가 있는 물건들이다.

포토시에 있는 광산이 위치한 산은 세로 리코(Cerro rico) 인데, 대충 해석하자면 '부자(Cerro)들의 언덕(Rico)' 쯤 될 것이다. 주로 은이 채굴되는 이 곳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사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문제는 고도다. 해발고도가 4,800m에 달하니 사실 서있기만 해도 숨이 차고 어지럽다. 남미에 오면서 고산에 꽤 적응이 되었다곤 해도 4,000m대의 고도가 주는 압박감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광산에 들어가기 전, 실제로 채굴된 은이 보관되는 곳을 먼저 향한다. 은은 반짝 반짝한 형태로 바로 채굴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금속이나 광물들과 섞인 은광석 형태로 채굴 된다. 채굴된 광물은 다지고 부숴 가루형태로 만들고 추후에 여러 형태로 가공하여 순수한 은을 재련해 내는 것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무리한 채굴로 인해 이제는 채산성이 너무나 떨어져 버렸지만, 여전히 더 깊이, 더 아래로 내려가 광부들이 은을 채굴해 온다고 한다.

채굴한 은을 부수고 포장하는 작업장. 과거부터 언덕 밑 평지에서는 채굴된 은광석을 다루는 작업장이 있었다고.

이후부터는 갱도를 들어가 탄광 체험을 했다. 뭔가 한국이나 혹은 다른 선진국에서 과거에 사용된 갱도라고 하면 레일도 있고 그래도 들어가서 볼 땐 정돈된 형태, 특히나 초반부는 더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남미의 갱도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레일이 깔린 곳이 있지만, 상시 관리를 하는 곳이 아니라 습기와 흙이 뒤섞여 진흙이 되있었다. 좁기는 너무 좁아서 덩치 큰 외국친구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록 발을 떼기 어려워 했다. 

갱도를 보던 중간 중간 쓰레기 더미가 가득해 주우려 하니, 가이드가 멈춰 세웠다.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일종의 위령비 같은 것이라고 했다. 탄광작업은 고되기도 하고, 어떤 지반이 약한지 강한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중간중간 전진이 어려운 곳들은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채굴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돌덩이에 깔려 사람이 죽기도 하고 호흡 문제로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중간 중간 있는 쓰레기는 위령을 위한 물건들과 코카잎들이었던 것이었다. 앞서 간 사람들의 위로이자, 지금도 채굴을 위해 나아가는 광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참을 들어갔을까, 가이드가 여길 보라고 하며 비춰준 곳이 있었다. 작은 수염(?) 같은 것들이 나있고 그 근처 돌을 비추니 반짝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보통 저런 작은 수염은 철이나 은과 같은 금속가루들이 붙어서 생긴 것이고, 저 바위들이 철이나 은을 포함하고 있는 돌멩이들이라고. 생각했던 은광석은 뭔가 더 번쩍일 줄 알았는데, 자세히 봐야 아주 작은 조각이 반짝일 뿐인 것이었다. 과거에는 정말 많은 은과 금들이 나오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한참을 들어와야 아주 적은 양의 것들을 갈 수 있다고 하니 광부들의 고된 삶이 상상만으로도 느껴졌다.

추측컨데, 채굴하면서 가루로 날리는 금속입자들이 다시 돌에 엉겨 붙어 수염처럼 된 것은 아닐까

보통은 이 체험을 하다보면 광부들을 안에서 실제로 만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갔던 날이 하필 일요일이라 광부들이 오후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고. 안에서는 광부들의 일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대신 우리가 탄광을 다 본 뒤에 광부들이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사왔던 물건들을 그들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분명 힘들고 고된 일을 하러 가는 그들이지만 농담도 하면서 웃고 있었고 우리를 향해서도 좋은 하루 되라며 웃으며 인사를 해 주었다. 막상 일을 하면 저 밝은 표정이 사라질 순 있겠지만, 결국 그들 스스로나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러 가기에 오늘도 어두운 광산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광산이 그들에게는 어쩌면 삶의 이유이자 전부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광산체험으로 끝날 뻔 했던 투어가, 마지막 광부들을 보는 것으로 내가 이 곳 포토시에 온 모든 이유를 채워주는 투어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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