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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Feb 14. 2018

혼자서는 못 이겨내는 것들이 있다


가끔은 일방적이어도 괜찮다


편도가 부었다. 물조차 삼키기 어려울만큼 아팠다. 조퇴를 하고 추한 몰골로 집에 와서 쉬던 중 그가 문을 두드렸다. 서프라이즈. 컨디션이 최악이지만 조금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해야할 일도 많으면서 왜 왔냐며 타박을 하긴 했지만, 내심 많이 좋았다. 사실은 와주기를 바랐다. 혼자 아픈 것은 생일에 계획없이 있는 것보다 서러운 일이다.

그치만 난 나름 어른이라 상대의 스케줄이나 계획을 해치면서까지 나에 대한 관심을 종용하고 싶지는 않다. 죽을 병에 걸린 것도 아닌걸. 그치만 “나에게는 네가 제일 중요해” 고마운 말이지만 으레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안다. 소중한 것은 놓치기 십상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도 쉽게 허물어져버릴 수도 있다. 모래알 같은 속성 때문에 적어도 너와 나는 서로를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아파서 그를 내버려 둔 채 잠을 자버렸다. 사실 그는 손에 무언가를 잔뜩 싸들고 왔다. 삼키기 부드러운 감자수프를 직접 만들어왔다. 미열에 통증이 심해 에너지가 없어서 만족스러운 호들갑을 떨어주지 못해 미안했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배고프다고 밥을 먹자고 했다. 종종 뒷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혹은 옆모습. 상대의 시선이 나를 향해있지 않을 때 물끄러미. 그때서야 이 사람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타인이 내게 밥을 만들어준다. 손에 익지 않은 내 방의 토스터를 다루고 조리도구를 찾아 음식을 만드는 움직임, 저 움직임이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을 때 말도 안되는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세심하게 음식의 조리과정을 관찰한다. 맛을 보고 간을 조율한다. 곱게 담아 내어준다. 처음이다. 누군가가 먹을 것을 해준다는 것. 내 끼니를 걱정해 직접 팔을 걷어부치는 것. 음식의 온기만한 따뜻함. 정성만으로 충분한데 맛까지 놓치지 않는 완벽함. 도대체 내가 뭐라고.


대체로 받을 줄 몰랐다. 내게 건네는 호의와 사랑에 때로는 몸둘 바를 몰랐다. 문제는 그것이 일방향일 수밖에 없을 때 더 우왕좌왕했다. 이젠 그럴 때도 있는 것 아니겠나 싶다. 빚지고 못사는 성격이라면 나중에 내가 하나 더 얹어주면 되는 것 아니겠나. 내가 일방적으로 줄 때도 분명히 있다. 받을 줄 아는 것도 사랑을 잘 나누기 위한 스펙 중 하나다. 주는 것만 잘 하지 말고 받는 것도 잘하자. 온 맘을 다해 상대의 마음씀을 기뻐하고 그것을 내 몸에 물들이자.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그리고 아프지 말자


덕분에 온기를 받아 낫고 있다. 내리 며칠을 잔뜩 웅크린 채 적극적으로 쉬었다. 이런 아픔은 쉼표가 된다.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몸이 내리는 극단의 처방전이다.


아픔은 나만의 것이어서 마음쓰는 타인을 갉아낸다. 찍히기 시작한 쉼표의 끝맺음은 너무 날카로워서 사람이, 사랑이 앉아 쉴 곳을 따갑게 찌른다. 가시가 그의 몸에 박혀 부러질 때쯤에야 쉼표가 마침표로 바뀐다.


그런데 어쩌지. 그가 나를 안으면서 긁히고 박혀버린 가시는 어떻게 뽑을 수 있나. 아프지 말아야 할 당위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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