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던 아일랜드 생활이 끝났다.
2016년, 1월.
한국으로 귀국하고 3일 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초대장이 도착했고, 최종 합격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쉬지 않고 고민했다. 지금 이 시점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는 것을 옳은 행동일까. 25살, 곧 26살.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정말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잠시 멈추어 내가 달려온 길을 뒤돌아 보려 했지만, 오래 머뭇거릴 여유는 없었다. 대학 졸업이라는 큰 산이 남았었기 때문에. 2017년 여름, 나에게 그저 지루하게 길었던 대학생활을 마쳤다. 시원 섭섭도 아니었다. 홀가분했다. 겨우 졸업을 마쳤다 생각했을 때, 다시 내 눈앞엔 커다란 산이 뚝 떨어졌다.
취업.
졸업하니 주변에서 자꾸 요즘 뭐하냐고 묻는다. 그냥 논다고 답한다. 취업시켜 줄 것도 아니고, 돈 줄 것도 아니면서 왜 묻는지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시공부를 기말고사 공부 정도로 쉽게들 생각한다. 최소 1년 이상을 매일 10시간 넘게 공부만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공부가 제일 쉽다고 가볍게 조언한다.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교사가 하기 싫다.
왜 사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몰랐던 청소년기에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수능에 인생의 전부를 걸었었다. 어떻게 점수 맞춰서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갈 수 있었고, 나름 열심히 산다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남은 건 졸업장, 평범한 학점, 남들 다 있는 봉사점수, 자격증, 대외활동뿐이었다.
하라는 대로 다 했더니, 이제 취업할 차례라고 한다.
취업 그다음은 결혼, 출산. 미래가 뻔하다.
내 앞 날이 뻔한데, 그 미래가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몇 주전에는 이 생각으로 너무 속상해서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서 소리 내어 울어도 봤다. 공허한 방이 울리고, 휴지통에 티슈가 수북이 쌓일 때까지 엉엉 울어버렸다. 속이 좀 편해진 것도 잠깐, 다음 날 일어나면 도루묵이었다. 그렇게 며칠 밤을 울다 잠들었고, 아침에 눈이 떠져서 일어났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캐나다행 항공권을 끊은 건 불과 열흘 전이다. 사실 내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고민하는 척했다. 캐나다에 간다고 내 삶이 180도 뒤바뀌고 마냥 좋은 일만 가득하지도 않을 거란 거 안다. 이미 해외 경험이 있기에 막연한 환상 같은 것도 없다. 외로움도 많이 느낄 것이고, 타국 생활에 어려운 점도 많을 것이란 걸 안다. 그렇기에 다가온 괜한 불안감에 결정을 미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왜 떠나느냐 물으면, 오로지 나를 위한 스스로의 삶을 살고 싶어서. 남 눈치 보며, 남들의 시선에 맞춰 틀에 짜인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다. 말도 안 되는 경쟁사회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취업을 위해 투자할 시간과 노력이라면 캐나다에서라고 불가능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떠나보려고.
죽을 용기가 없으니, 일단 떠나보려고 한다.
아일랜드에 살 때, 홈대디가 나이가 많다며 고민하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신 적 있다.
"나이는 중요한 게 아냐. 네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중요한 거야. 그런 괜한 걱정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