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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쟁이 Mar 14. 2016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

아일랜드, 브레이에서

  모처럼 찾아온 여유로운 주말 오전, 여느때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나가지 않았을테지만 더블린에서는 달랐다. 마른 하늘에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니. 나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그저 더블린 근교 어딘가에 갈 예정이었다. 어두컴컴한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ㅡ 어디든 도착할때면 날씨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브레이로 향하는 다트(Dart)에 몸을 실었다.


  브레이에 가까워질수록 날이 맑아지는 듯 했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도착한 브레이에는 티끌만한 의심을 한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아주 크고 선명한 무지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는 멎지 않았지만 걱정할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무지개가 너무 아름다워서 내리는 비마저도 선물같았다.

브레이에서 바라본 무지개

  해안을 따라 길을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마냥 좋았다. 파도에 씻기는 자갈 소리, 갈매기 소리, 어쩌면 불평할 수도 있었을법한 비바람,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무지개. 무지개를 등지고 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카메라에는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황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살면서 무지개를 본 적이 한 손에 꼽을 수도 있을만큼 드물었다. 그림으로나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았다.


  브레이의 전체 모습을 내려다 보기 위해 해안 끝에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뒷산같이 친숙하면서도 힘겹던 여정의 끝엔 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 바다와 흰 구름, 무지개의 조화는 날 감동시키는 데 충분했다. 도심 속에서는 알 수 없었던 상쾌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무엇인가 막혀 있던 게 탁 트인 기분이 들었다.

브레이의 언덕에서 바라 본 두 개의 무지개

  어렸을 때, 시골길에서 무지개를 본 적이 있다. 국도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바라 본 무지개는 계속해서 날 따라오는 듯 싶었다. 무지개 끝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도착하면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일랜드에는 무지개 끝에 보물이 있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ㅡ 무지개 끝에 가면 정말 보물이 있을까?

  걸어도 걸어도 닿지 않는 무지개의 끝을 바라보며 다음번에 꼭 가볼 거라고 다짐했다. 오늘은 이내 멈췄지만, 다음엔 보물을 찾을거라는 우스갯소리를 남기고 여행을 마쳤다.


-

  만약 비가 안왔더라면 우리는 무지개를 볼 수 없었을거야. 그랬더라면 조금은 덜 재밌지 않았을까. 아마 우리의 삶도 같을 거야. 만약 지금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 곧 무지개같은 선물이 나타날거야. 마냥 맑기만 하면 재미도 없을걸!



Happy-go-l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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