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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을 아는 고양이들

꽃의 소임

by 여름햇살


고양이들의 온전한 하루


밤이 걷히고 나면 찾아오는 아침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오늘의 새로운 임무를 던져준다.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뽈뽈뽈 콘도 밖으로 나온 검은고양이도 예외는 아니다.


어랏, 저 검은 실루엣은!?


반려동물들은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해결해 주니 그저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배 부르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면서, 하루하루를 아무런 규칙도 의무도 없이 살아간다고 쉽게 여겨지지만, 고양이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으레 동그란 원 속에 하루 일과부터 그려넣었던 것처럼 스스로 ‘오늘 할 일’을 정해두고서 시간에 맞춰 아주 성실하게 수행한다. ‘집사가 주는 사료 먹기’, ‘햇볕 쬐기’, ‘우다다다 뛰어다니기’ ‘낮잠자기’ ‘새 구경하기’ 따위의 일과들에선 오늘날의 인간들이 필연적으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 따윈 좀처럼 묻어나지 않지만, ‘살아있음’이란, 그 무게와는 상관없이 하루하루를 온전히 스스로 원하는 대로 계획하고 수행해낼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치앙마이를 걷다 보면 알차게 오늘 하루를 보내는 중인 개, 고양이들과 흔히 마주치는데, 90% 정도는 목에 ‘나 집사있음!’을 뜻하는 목걸이를 하고 있다. 태국은 사계절 내내 여름만 계속되다 보니 건물자체가 개방된 형태로 지어진 경우가 많고, 창문이나 문 따위도 바람이 마음껏 넘나들도록 활짝 열어두어서 그런지, 반려동물들도 집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지내는 분위기다. 고양이는 정해진 공간에서만 생활하는 영역동물로 잘 알려져있는데, 인간이 모든 것을 점령해버린 도시에서 안전이 보장된 집 안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반려가 된 고양이들만의 행운이고 행복이지만, 오직 집 밖을 나서야만 만날 수 있는 바람과 햇살의 온도, 화분이 아닌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와 꽃들의 내음까지도 매일매일 자유로이 만끽하며 살아가는 치앙마이의 집고양이들은 어쩌면 인간들은 오히려 놓치고 살아가는 인생의 진정한 ‘멋’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치앙마이의 상점들 셋 중 하나는 고양이들이 터주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상점이 문을 닫고 나면 고양이들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주인과 함께 매일 아침 일터로 출근하는 ‘출근냥이’들인 것 같다. 이 고양이들의 진정한 영역은,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아침부터 밤까지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하는 ‘집사’가 아닐까?


오늘 아침 우연히 맞닥뜨린 까만 고양이 역시도 목걸이를 보아하니 콘도 1층 상점가에 집사를 따라 나온 ‘출근냥이’인가 본데, 연차가 넉넉히 쌓여 업무 중에 잠시 꽃구경 정도는 즐겨도 되는 모양인지 녀석은 콘도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화분들을 가볍게 훌쩍 뛰어넘곤 이내 나뭇가지들에 가려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화단에 풀썩 엎드려 자리를 잡았다.


인간들은 참 고양이한테 관심이 왜들 그렇게 많은지!


살금살금 다가가 꽃나무 가지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더니, ‘뉘기여?’라는 듯 고개를 슬쩍 돌려 쳐다본다. 하지만 손에 아무 간식도 들지 않고서 대뜸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인간에겐 별 흥미가 없는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만의 일과에 열중하는 고양이.


몸을 낮추어 고양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니, 평소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자그마한 화단이 푸르른 싱그러움 가득한 아늑한 초원이다. 나뭇가지 끝엔 마침내 때를 맞이한 꽃들이 화사하게 꽃잎을 펼친 채 꽃가루를 옮겨줄 반가운 손님들을 기다리고, 가장 화사한 때를 지나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 붉은 꽃봉오리들마저 소임을 다한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고양이들은 생존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나면 더 이상 ‘축재’를 욕심내지 않고 볕을 쬐거나 꽃을 구경하면서 남은 하루를 보낸다는데, 이렇게 스스로 정해둔 하루일과에 열중하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면 이 녀석들만큼 ‘낭만’을 잘 아는 녀석들도 또 없지 싶다. 까만 고양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뜨거운 여름햇살이 저 위에 무성한 나뭇가지들에 걸려 한층 유순해진 채로 내려와 보드랍게 정수리를 어루만지고, 초록잎사귀들을 산들산들 흔들고서 날아온 바람은 그 속에 한껏 실어온 신선함을 기분 좋게 살갗에 새겨준다.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있는지, 물은 충분히 먹고 있는지, 혹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작은 동물들의 본능이 ‘인간에게 피해를 준다’며 괴롭히는 사람들은 없는지, 한국에서 동네고양이들과 마주할 때면 으레 하던 걱정들은 모두 잊히고, 포근한 여름한낮의 그늘 속에서 느긋하게 오늘의 일과 하나를 수행 중인 고양이를 따라서 내 마음도 차츰 낭만에 물든다.


그림 같은 초록 속에서 아침을 만끽하는 중


고양이들이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곳에선, 그 곁에서 이따금 함께 멈추어 서서 같은 공기를 들이쉬어 보는, 인간의 일상도 여유롭다.


꽃의 소임


고양이와 함께 잠시 쉬어가느라 미루어졌던 오늘의 첫 일과를 시작했다. 반짝이는 햇살 속에 걸음은 자연스레 단골식당을 향한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듬직한 덩치로 동네어귀에 서서 수호신 역할을 든든히 하고 있는 바나나나무에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가, 문득 평소와 다른 빛깔을 발견했다. 신선의 부채처럼 커다란 초록색 잎사귀 속에 샹들리에처럼 주렁주렁 여물어가는 바나나열매들, 그 아래에 진한 분홍빛 꽃이 피었다.


연꽃을 닮은



꽃이 피지 않는 ‘무화과’가 아니고서야 –‘無花果’라는 단어는 ‘꽃이 없는 열매’를 뜻하는데, 우리가 과일로 즐겨먹는 무화과fig는 언뜻 꽃이 피지 않고 곧바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먹는 과육부분이 꽃이라고 한다- ‘바나나’라는 열매가 있으니 응당 ‘꽃’도 존재하련만, 처음으로 ‘바나나꽃’이라는 걸 인식하게 된 건 이번 치앙마이 세달살이의 첫 주에 방문했던 식당 메뉴판에서 ‘바나나꽃 샐러드’를 발견했을 때였다.


호기심에 덥석 ‘바나나꽃 샐러드’를 주문했지만 조금 아쉽게도 요리되어 나온 음식에선 도대체 어떤 게 ‘바나나꽃’인지 좀처럼 알아볼 수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구글에서 사진을 검색해보니 바나나꽃은 열매인 바나나보다도 훨씬 그 크기가 커서 온전히 한 송이를 접시에 담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바나나꽃은 짙은 보랏빛을 띠는데, 꽃잎이 겹쳐져있을 땐 그 색깔이 갈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해져서 얼핏 카카오열매처럼도 보인다.


바나나꽃은 커다란 보랏빛 꽃잎 속에 바닐라색의 줄기를 숨기고 있는데, 요리에 쓰이는 것은 바로 죽순처럼 생긴 이 속줄기이며, 이 부분이 나중에 자라서 바나나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바나나꽃’은 사실상 ‘바나나’가 열매가 되기 전의 태아시절 즈음 되는 격인데, 이때의 바나나줄기는 달콤한 맛은 전혀 없고 오히려 조금 쌉싸름한 맛이 난다. 식감은 아삭해서 샐러드로 요리해먹기 좋은데, 지중해에서 자라는 꽃 모양의 작은 양배추 아티초크와도 매우 비슷하다.


본래 쌉쌀한 맛이 있기 때문인지 치앙마이에서 두어 번 주문해 본 바나나꽃 샐러드는 전부 아주 매콤하게 양념이 되어있었고, 아마도 꽃 자체에서 별 다른 향기나 맛은 나지 않는 듯, 대부분 양파 등과 함께 잘게 썰린 채로 요리되어 나와서 ‘꽃’ 다운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었다.


열매가 무르익으면 꽃은 꽃다운 모습을 잃는다


하지만 ‘바나나꽃 샐러드’를 계기로 하여 이후 치앙마이를 걷다가 바나나나무를 마주치게 되면 마치 왕관이나 샹들리에처럼 주렁주렁 열린 바나나 과실 아래에 마치 또 다른 과실처럼 매달려있는 덩어리가 ‘꽃’이라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는데, 이 꽃에 대한 내 첫인상은 ‘바나나꽃은 모양이나 색깔이나 그다지 꽃다운 매력은 없구나’하는 것이었다.


허나 그건 바나나꽃의 일생 중 어느 한 단면만을 보고 섣불리 가진 오해였을 뿐, 바나나꽃도 갓 피어날 때엔 이렇게 어엿한 꽃 다운 분홍빛깔을 뽐낸다.


꽃이 피는 것은, 곤충을 불러 모아 열매를 맺기 위한 것. 갓 태어났을 때엔 더없이 꽃다운 빛깔과 자태를 뽐내던 바나나꽃은 이후 꽃잎을 점점 더 크고 단단하게 키워내며 그 안에 숨어있는 열매가 될 가녀린 줄기를 보호한다. 아름다운 것만을 ‘꽃’이라 명명한다면 곧 태어날 열매를 감싸기 위해 두꺼워진 꽃잎이 고집스레 여러 겹으로 똘똘 뭉쳐있는 그 모습이 ‘꽃답지 못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인간이 그들을 ‘꽃’이라 부르지 않을 때에도, 꽃들은 매일의 살아감 속에서 굳건하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꽃의 소임을 다한다.


오직 오늘의 작품들


매콤한 똠얌누들을 기가 막히게 요리해주는 동네 단골식당에 왔다. 오늘은 이 집의 장기인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매운 국물과는 정반대인, 맑은 국물의 수끼를 주문했다.



사실 맑은 육수의 경우엔 ‘광기’라고 일컬어도 될 정도로 다양한 채소와 해산물을 왕창 사용해서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한국식 육수에 길들여진 탓인지, 세계 어디를 가도 좀처럼 그에 비견할 맛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다. ‘태국식 샤브샤브’인 수끼는 재료를 살짝만 익혀서 매콤한 소스를 찍어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더 국물맛만을 논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태국여행 도중 먹었던 수끼 중엔 제법 내공이 느껴지는 국물이었다. 이 집은 매운 음식이 확실히 개성 있지만, 정반대의 요리도 그것대로 좋다. 특히 배추가 수끼를 해 먹으면 좋은 부위로 인심 넘치게 들어있고, 줄기부분의 익힘 정도도 딱 좋아서, 기대했던 대로 즐거운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 가게 아직 영업시작 전이다옹!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난 뒤에 거리를 걸으면, 따스한 한낮이 알록달록 물들인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나 보인다. 야채와 식료품, 옷가지 따위를 오밀조밀 진열해 둔 동네 구멍가게도, 지날 때마다 꼭 한 번씩 눈길 주게 되는 색색의 건물들도, 색색의 꽃과 주인 없는 노점을 홀로 야무지게 지키는 고양이들도, 모두 오늘이 빚어낸 오직 오늘만의 작품들이다.


하악- 넌 누구냣! 용맹한 아기고양이를 건드리면 아주 큰일이 날 거야!


숨은보물찾기


저녁은 이번 치앙마이 세달살이에서 새로이 ‘내 영혼의 태국음식’으로 등극한 ‘랏나’ 맛집을 찾아왔다. 딱 저녁식사시간에 맞추어 왔더니 현지인 손님들이 식당에 바글바글하다. 기대감을 잔뜩 안고 벽에 붙여진 메뉴판을 구글카메라로 찍어보았다. 일곱 번째로 적혀있는 ‘계란오믈렛을 곁들인 해산물 랏나’는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한 메뉴인지라, 바로 마음을 정했다. 손가락으로 그냥 메뉴판을 가리키면 혹시 소통이 잘못될까 봐 -계란오믈렛이 든 흔치 않은 랏나를 놓칠 순 없어!- 메뉴판을 찍어서 일곱 번째 메뉴에 동그라미를 친 뒤 보여주며 주문을 했다.



랏나는 넓적한 쌀국수를 야채와 고기 혹은 해산물 등과 함께 볶은 뒤,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국물을 부어먹는 음식인데,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론 면이 맛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이었다. 여태까지 방문했던 식당들은 전부 국수에 살짝 갈색빛이 돌도록 센 불에 볶은 뒤 뜨거운 국물을 부어주었는데, 이렇게 화끈하게 익힌 넓적한 쌀국수는 특유의 불맛이 국물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게다가 국물을 부어주면 면이 살짝 붇기 때문인지 꼭 손으로 빚는 수제비처럼 쫄깃한 씹는 맛까지 더해지는데, 이게 또 그냥 볶은 쌀국수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보기만 해도 불맛 나는


랏나의 또 다른 매력은 걸쭉한 국물 속에서 살짝 불어있는 볶은 쌀국수를 보물찾기 하듯 건져먹는 건데, 오늘은 그 속에 계란오믈렛까지 숨겨져있어 캐낼 보물이 두 배가 되었다.


사실 오믈렛 하면 약한 불에 노오란 색감을 살려서 아몬드모양으로 퐁신퐁신하게 익힌 모습을 으레 떠올리게 되는데, 센 불에 화끈하게 부친 태국식 오믈렛은 사실 ‘오믈렛’보다는 ‘계란부침’이라는 한국식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더불어 랏나 소스에 퐁당 담가서 먹기엔 부드러운 오믈렛보다 소스도 잘 스며들고 씹는 맛도 있는 ‘계란부침’ 쪽이 역시 제격이다.


랏나는 항상 처음 나온 모습을 보면 ‘이 많은 국물을 다 먹을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면과 고명을 건져먹는 사이사이에 수프처럼 국물을 호로록호로록 떠먹다 보면 눈 깜짝하는 사이에 그릇 바닥과 만나게 된다.


랏나 한 그릇에 코를 박고 나만의 작은 보물찾기를 하는 사이, 거리엔 붉게 노을이 내려앉았다. 소문난 맛집답게, 식당 앞엔 각지에서 달려온 오토바이들이 빼곡하게 줄을 섰다. 포장한 랏나를 싣고 혹 음식이 식을세라 바삐 길을 떠나는 오토바이들의 행렬을 뒤따라, 나도 다시 길을 떠났다.


밤의 안내자들


오직 맛있는 랏나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제법 멀리까지 온 지라, 돌아가려면 다시 올 때처럼 먼 길을 걸어야한다. 하지만 오늘 하루 일과는 모두 마쳤으니, 서두를 이유가 있을까. 앞에 펼쳐진 길이 한없이 길수록 더 부러 느긋하게 걸어 본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걸어갈 때엔 좀처럼 보이지 않던 거리의 작은 주인들이, 그제야 곳곳에서 묵직하게 눈에 띈다.


밤 그리고 밤빛고양이


어스름하게 밤이 커튼을 내리기 시작한 때. 앞으로 이어질 칠흑의 밤을 예고하듯 불쑥 튀어나온 새까만 털을 가진 고양이는 마치 ‘밤의 안내자’와도 같은 모습이다. -근데 이제 턱받이를 한 아가예요-


‘검은고양이’들은 단지 털색깔이 까맣다는 이유로 ‘불길한 동물’이라는 인간의 오랜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왔지만, 사실 이 까만색은 야생에서 적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에 매우 유리한지라 검은고양이들은 다른 색 털을 가진 고양이들에 비해 성격이 느긋하고 넉살이 좋은 경우가 많다. 특히나 몸집이 작은 고양이는 본래 다른 큰 육식동물이 활동하는 낮시간을 피해서 밤에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야행성동물인 고양이가 밤빛과 똑같은 까만 털을 가진 것은 고양이 입장에서는 천운의 ‘금수저’를 타고난 것!


까만 고양이의 두 눈에 뜬 초승달 두 개


해가 지고 나면 더욱 빛나는 까만고양이들의 두 눈은 마치 밤하늘에 뜬 달 같다. 밤이라는 망망대해 속에 유일한 등대가 되어 빛을 밝히는 저 달처럼, 밤에 마주치는 까만고양이들은, 삶이라는 이 칠흑의 미로 속에서 밖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를 알고 있는 것처럼 신비로워 보인다.


손님인가? 안 들어와? 그럼 말구~ / 왜 안 들어오세요? 야, 너 손님 왔는데 드러누워버리면 어떡해!


이윽고 마주친 또 다른 까만고양이는, 노란고양이와 함께 늦도록 상점을 지키는 중. 문밖에서 서성이는 손님을 보며 ‘들어올 거예요, 말 거예요?’ 라고 묻는 듯 시선을 떼지 못하는 노란고양이와 달리, 까만고양이는 ‘들어오든가 말든가!’ 라는 듯 이내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워버린다. 노란 털을 가진 고양이들도 까만고양이들만큼이나 성격이 좋기로 소문난 녀석들인데, 이 두 녀석들 중에서는 아마도 까만 털을 가진 녀석이 좀 더 느긋한가 보다.


오늘도 말린바나나 돌돌말이를 사러 왔습니다


노오랗게 빛나는 밤의 등대들을 따라서 항해해 온 밤, 급작스레 결정된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역시나 마야몰 지하의 참새방앗간. 늘 먹는 간식들을 사들고 익숙한 길로 접어드니, 이번엔 노오란 꽃들이 까만 밤 속에 활짝 꽃잎을 펼치며 등대가 되어준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비밀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어낸 듯 마침내 동그란 형태를 얻은 보름달이 마치 온 세상에 마법을 거는 듯 그 어느 날보다도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온 세상에 빛의 마법을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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