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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기억 속의 유니콘을 찾아서

같은 음식, 세 가지 모습

by 여름햇살


먼 기억 속의 유니콘


십여 년 전 태국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때에 복잡한 방콕 도심을 쏘다니다가 ‘쌀가루로 부친 굴전-Oyster Riceflour Pancake’이라는 영어문구를 보고 방금 점심식사를 하고 나온 길임에도 불구하고 홀린 듯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굴전 한 접시를 주문한 적이 있다. 벽에는 태국방송에 소개되었던 사진들이 붙어있었고, 메뉴는 굴전과 해산물로 만든 전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해져 정확하지는 않다.


‘굴전’이 한국에서도 흔히 파는 음식은 아니거니와, 당시에 알러지 때문에 밀가루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끊게 되면서 예전엔 집에서 부쳐먹거나 식당에서 사 먹거나 여하간에 흔히 먹던 전 종류를 전부 먹지 못하게 됐던 터라 ‘쌀가루로 부친 굴전’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먹어봐야 해!’라고 두 눈이 번쩍 뜨였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굴은 ‘차가운 계절에 먹어야 안전한 음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더운 태국에서도 굴요리를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태국도 남부의 해안에서 한국처럼 굴을 대규모로 양식하고 있어 일 년 내내 신선한 굴을 제법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듯했다. 자연산 굴은 많은 양을 채취할 수 없어 양식을 하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굴요리가 그리 흔하지도 않거니와 있어도 매우 비싼 경우가 대부분인데, 태국식 굴전은 양식장 덕분인지 보통 식당에서 한 끼 식사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넓적한 접시에 담아 내주었던 ‘그때 그 굴전’은 젓가락만 대도 찢어질 정도로 야들야들했는데, 가장자리가 특히 쌀가루로 만든 묽은 반죽을 뜨거운 철판 위에 흩뿌려 익힌 듯 종이처럼 아주 얇고 파삭파삭해서 한국식 굴전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굴도 넉넉히 들어있었는데, 크기가 크진 않았지만 알이 제법 통통하고 잡내 없이 신선한 데다 질기지 않도록 부드럽게 익혀내어 그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때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해외에서도 데이터를 펑펑 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곧바로 인터넷으로 식당정보를 찾아본다거나, 지도에서 식당을 검색해서 저장한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식당 이름도 알지 못한 채로 하루 뒤엔 다른 도시로 떠나버려서, 십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식당이 대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꿈이라도 꾸었던 것처럼 뿌옇게 흩어진 기억 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쌀가루로 얄팍하게 부쳐낸 굴전의 가장자리가 선사했던 환상적인 파삭거림뿐! 그 맛을 잊지 못해 이후 태국을 방문할 때면 으레 근처에 태국식 굴전인 ‘어쑤언’을 파는 식당이 있는지 검색해보고 있지만, ‘쌀가루로 부친 그때의 그 굴전’은 마치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유니콘처럼, 좀처럼 다시 만나지지 않고 있다.


나만의 유니콘을 쫓아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의 산간지역이자 내륙지역인지라 바다와는 거리가 꽤 멀어서 과연 굴요리를 파는 집이 있을까 싶었는데, 치앙마이에 갓 도착해 하이야Haiya에서 첫 여장을 풀고 나서 검색해보니, 마치 환영인사라도 하듯 너무도 가까이에 ‘어쑤언’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여행 삼일 째였던가, 숙소에서 빌려준 자전거를 타고 캄캄한 밤을 씽씽 달려 고대하던 어쑤언을 먹으러 갔는데, 접시에 담겨 나왔던 먼 기억 속의 얇고 야들야들한 굴전과 달리 이번엔 새까만 돌판 위에서 장군처럼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는 색다른 굴전이 내 앞에 놓였다.


요 녀석이 최애인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


아무리 기억이 희미해졌다고는 해도, 이건 내가 지난 십여 년간 애타게 찾아 헤맨 ‘그때 그 유니콘’과는 아예 정반대의 모습인데, 두툼하면서도 바삭바삭한 것이 전과 튀김의 그 중간 어디쯤엔가 있는 맛이어서 이것 역시 한국식 굴전에서는 보지 못한 개성과 매력이 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 잔 곁들이면 끝내줄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밀가루가 제법 들어있는 것 같아서, 혹 여행시작부터 알러지로 고생할까 봐 반죽만 있는 부분은 적당히 남기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여행객이 한국에 와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해물파전을 시켜먹었는데, 그 맛이 아예 요리법부터 다른 것이 분명할 정도로 극과 극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부산에는 쪽파를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로 만든 반죽을 얇게 부어가며 부치는 동래파전이 있으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태국식 굴전 역시도 지역에 따라, 혹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재료나 레시피가 조금씩 다른 모양인데, 방콕과는 먼 치앙마이에서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굴전은 ‘굴’이 주재료라는 것만 같을 뿐 아예 다른 레피시로 만든 음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옛날 그 음식과는 전혀 달랐다.


TV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사진까지 벽에 붙어있었던 것을 보면 ‘그때 그 집이 정말로 흔히 만날 수 없는 굴전계의 유니콘이었나’ 하는 뒤늦은 아쉬움과 함께 ‘치앙마이 쪽은 전을 튀김처럼 두껍게 부쳐먹나 보다’ 싶어 한동안 ‘기억 속의 그 유니콘’을 찾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팍 꺾여있었는데, 며칠 전, 단골 초콜릿상점 옆에 유독 평점이 높은 식당이 있어 클릭해보니 ‘어쑤언’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을 살펴보니 이 녀석, 여태까지 먹어본 두 가지 굴전과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그렇다면, 당장 먹어보지 않을 수 없지! 창푸악 이곳저곳에 단골식당들이 생기며 요즈음 한동안 ‘갔던 식당 또 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는데,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신발끈 단단히 묶고 먼 남쪽으로 길을 나섰다. 치앙마이는 공항이 도심에서 자동차로 5-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데, 식당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 되니 저기 지평선 너머에서 연신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항공안전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높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탁 트인 시야에 마음도 덩달아 활짝 열렸다. 담장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낯선 골목길엔 정오의 햇살이 평온하게 웅크린 채 오수에 빠져있었다.


새 유니콘의 등장


대로변에 위치한 오늘의 식당은, 어쩐지 낮보다는 밤에 더 붐빌 것 같은 모습. 식사메뉴 말고도 각종 해산물을 재료로 한 두꺼운 ‘요리메뉴판’을 따로 갖추고 있는 걸 보니, 한국으로 치면 ‘해산물요리전문점’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창 너머의 초록 / 식당 입구에서 주방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기름진 전요리엔 매운 음식이 제격일 것 같아서, 굴전과 매운 오징어볶음을 한 접시씩 주문했다.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창문 너머에서 산들거리는 초록색 잎사귀들을 따라 기대감을 나풀나풀 나부끼고 있으려니, 머지않아 어디선가 지글지글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도 돌판 당첨이요...!!!


음식을 보글보글 끓는 채로 먹으려고 ‘뚝배기’라는 그릇까지 고안해 낸 한국인들이 이런 귀한 대접을 마다할 리가! 내 앞에 놓인 후로도 돌판 가장자리에선 기름이 여전히 지글지글 맛깔나는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그 난리법석의 와중에도 굴은 알알이 탱글탱글 살아있는 걸 보니, 맛이 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계란과 굴, 그리고 대파 사이사이를 장식하고 있는 이 반투명한 녀석의 정체는 뭐지?


어랏, 이거 왜 늘어나는 거예요...?


녹말을 넣어서 부쳤는지, 굴전 속살이 치즈처럼 주욱 늘어난다. -이거 굴피자로 이름 바꿔야 되는 거 아니에요!!?- 계란은 뜨거운 돌판의 열기와 그 가장자리에서 여전히 지글지글 끓고 있는 기름을 머금은 바로 그 맛이고, 살짝 익혀진 굴엔 탱글탱글한 식감과 감칠맛 나는 육즙이 가득하다. 거기에 모짜렐라치즈처럼 쫄깃쫄깃한 녹말까지 더해지니, 열렬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


쌀이나 녹말, 찹쌀 따위를 이용해서 만드는 ‘쫄깃쫄깃한 맛’을 좋아하는 건 ‘떡볶이’가 수많은 맛깔나는 음식들을 제치고 소울푸드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이 단연 1등이지 않나 싶은데, 치앙마이 세달살이를 하며 이전보다 훨씬 폭넓게 현지음식들을 경험해보니 태국사람들의 ‘쫄깃쫄깃함사랑’도 한국인들 못지않은 것 같다. 쌀이나 찹쌀, 타피오카 등을 재료로 한 디저트류에선 이런 식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전에 이렇게 녹말을 넣어서 쫄깃쫄깃한 식감을 살린 건 처음이라 새롭고도 반가웠다. 마치, 그 옛날 딱 한 번 마주친 게 다인 유니콘을 홀로 십 년째 그리워하다가, 새로운 유니콘을 만난 것 같은 기분!


색깔만 봐도 아는 바로 그 맛!


뒤이어 나온 오징어볶음은 청양고추를 넣은 것처럼 -아마도 태국고추를 넣었을 테지만- 칼칼하고 깔끔한 매운맛이 역시나 지글지글 끓는 기름을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머금은 굴전과 잘 어울렸다. 오징어볶음은 태국식과 한국식을 불문하고 내 영혼의 음식인지라 그간 동네식당을 두루 돌아다니며 ‘바질오징어덮밥’을 여러 그릇 먹었는데, 역시 이렇게 한 접시로 요리해주는 오징어볶음은 아무래도 오징어 한 마리를 전부 넣어서 요리하기 때문인지 덮밥에 살짝 덮여있을 때보다 좀 더 깊은 맛이 나는 것 같다. 태국식 오징어볶음은 한국식 오징어볶음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인데, 인상 깊은 건 치앙마이 식당들 중에 오징어를 질기게 요리하는 집은 여태껏 단 한 집도 없었다는 거다.


중도를 지키는 법


단지 어종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치앙마이의 단골식당들을 드나들며 사방이 활짝 열린 주방에서 한낮의 햇살을 듬뿍 받으며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사계절 내내 뜨거운 여름 속에서 살다 보면 이미 온몸과 마음에 열기가 충분해서, 음식을 익힐 때에도 지나치기보단 살짝 모자란 듯하게 열을 주어 손님 앞에 그릇이 놓일 때 즈음이면 그 약간의 모자람이 남아있는 잔열의 도움을 받아 ‘완벽한 중도의 부드러움’으로 완성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요리를 하면 항상 음식을 정도보다 더 익히는 편이다-


두 사람이 먹어도 충분한


야들야들한 오징어도, 탱글탱글한 굴도, 모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도를 딱 지켜주었건만, 그들을 맞이한 식탁 앞의 나는 중도를 지키지 못하고 과식을 하고 말았다.


중도를 안다는 것은, 지나침과 모자람을 모두 두루 알고 난 뒤에야 가능한 일. 식탁의 중도를 지키기엔, 아직 이 세상엔 지나치도록 경험해보아야 할 맛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넌 나의 유니콘


십 년 전의 그 유니콘은 이번에도 만나지 못했지만, 오늘은 마침내 내 마음에 쏙 드는 새 유니콘과 만난 날. 음식이 행여 가장 맛있는 온도를 잃을 세라 서둘러 배부터 채운 뒤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 구글에서 이미지검색을 해보니 -왜 전에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태국식 굴전은 생각보다도 그 모습이 다양한데, 계란만 넣고 깔끔하게 부치든, 쪽파나 숙주를 왕창 추가해서 철판볶음처럼 부치든, 밀가루보다는 녹말을 넣어서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쪽이 좀 더 대중적인가 보다.


그렇다면, 오늘 새로 만난 내 유니콘은 이곳 태국에선 그저 들판에 흔히 뛰노는 백마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지만. 기약한 세 달이 모두 지나 치앙마이를 떠나고 나면, 그때는 그 옛날 우연히 마주쳤던 내 첫 유니콘처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현실 속에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하던 기억마저 희미해져, 결국 언젠가는 환상처럼 불완전한 기억 속 어딘가에만 겨우 존재하는 유니콘이 되어버릴 터.


식당을 나와 마주한 풍경들


지금은 문밖을 나서면 자연스레 마주하는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애타게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 헤맬 유니콘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시선에 와닿는 세세한 풍경들이 새삼 소중해진다. 조용히 멈춰 서서 찰칵-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사방에 자유로이 흩어져있는 이 찰나의 보석들을 작은 손에 가만히 그러쥐어 본다.


어디에나 흔히 피어있는 것 같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신비로운 남국의 꽃들

밤이 되면 떠오르는


오후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 꼭대기부터 어스름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에 분홍빛 새가 떴다. 마치 오늘 낮에 만났던 내 새 유니콘이 밤을 맞이해 저 하늘로 거침없이 날개를 펼치며 떠오른 것처럼.


파아란 하늘 가득 펼친 분홍빛 날개


태양이 마지막 혼을 토해내며 새들은 잠시 불사조라도 된 듯 불길에 휩싸였다가, 이내 고요히 가라앉는 밤 속에 다시금 마법 같은 옅은 분홍빛을 되찾아갔다. 인적 드문 풀숲 위에 날개를 펼친 밤의 유니콘을 한참 바라보았다.



무성한 풀숲 사이에 어서 들어오라는 듯 나있는 갈래길로 걸어 들어가면, 분홍빛 새의 품으로 빨려 들어가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뚝 떨어질 것만 같다. 어쩌면 그 세상 속엔 내가 십여 년 전 잠깐 마주쳤던,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내 첫 유니콘이 이제는 닳아버린 날개를 고이 접은 채로 마지막 비행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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