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극장의 불이 켜졌지만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뜨거운 감정이 눈물과 함께 올라와 괴로웠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가 이렇게 슬픈 영화였다니. 마블 영화에 눈물샘이 터져버린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겨울왕국을 보고도 오열했던 나다.
오래전부터 이런 나의 모습을 알고 있던 사람들 혹은 인스타그램에 끄적이는 글을 통해 #소통하는 사람들은 나를 두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이야기한다. 차마 감성충이라 말할 수 없어 에둘러 말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평소 쓰는 글에 담긴 감정선, *비포 트릴로지를 인생 영화로 꼽는 문화적 취향, 김동률의 음악을 듣고 자라 정준일로 방점을 찍은 감성 체계 등이 나를 둘러싼 이미지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감수성을 제 3자의 상황에 본인의 이야기를 투영하여 나의 감정으로 가져오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타인의 평가에 어느 정도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에 잘 조직화된 시각과 청각적 자극이 합쳐지는 순간, 나의 감수성은 어김없이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물론 어떤 사안에는 이상하리만치 둔감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의 내면에 담긴 감수성의 총량을 따져 보았을 땐 그것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작은 막 감수성이란 개념이
내면에 싹을 틔우던 14살이었다
우연인지 혹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처음 내 손에 들어왔던 음악 CD가 김동률의 3집 '귀향'이었다. 특유의 웅장한 스트링과 저음의 목소리, 담담하지만 섬세한 가사가 삼위일체처럼 담긴 그 앨범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빅뱅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내면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감수성이란 우주를 창조했달까. 이후 자연스레 토이, 윤종신, 이소라 등의 체계적인 감수성 교육과정을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이수했다. 밤이면 밤마다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머리맡에 틀어 놓고 한껏 충만해진 감수성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문제는 남중고를 다닌 내가 마주해야 했던
또래들의 감수성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에게 감수성이란 기집애스러움의 얼굴마담 격이었다. 특히 반 분위기를 주도하던 소위 일진 녀석들은 남자다움을 강조하며 거친 10대 소년의 삶을 몸소 보여주곤 했다. 오가는 대화의 절반이 욕이었고 갈등은 대화가 아닌 주먹으로 해결되었다. 나뿐 아니라 정작 자신들도 남자다움에 대해 정의 내리지 못했지만 내 감수성이 그들의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에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한 번은 아이즈(I's)를 보던 한 친구가 녀석들의 집중 타깃이 되어 크게 놀림받은 일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즈는 그림체만 순정만화처럼 여리여리할 뿐 지극히 남성향의 만화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수 없이 많은 사춘기 소년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 작품이다. 하지만 녀석들이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그 사건은 내게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나도 아이즈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 친구가 다 보면 빌려 읽기로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그 후 나의 감수성을 밖으로 표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 자존감이 낮진 않았던 터라 그들이 감수성을 무엇이라 규정하든 스스로를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맞서지도 않았다. 대신 학교를 마치곤 돌아오는 길에는 늘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가장 먼저 들었다.
감수성을 사수하는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더 어려워졌다
감수성은 독서든 영화든 음악이든 화학작용을 일으킬 매개가 필요하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막 시작한 신입사원은 그런 것들을 즐길만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모든 에너지의 비중이 회사 안의 일상으로 쏠리다 보니 감수성의 매개라 할만한 활동을 멀리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다. 예전 같았다면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듣던 시간은 쌓인 피로와 긴장을 푸는 데에도 부족하다. 자연스레 내면에 활짝 피어있던 감수성의 꽃이 점점 시들어간다.
얼마 전 음악 페스티벌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들을 만났다. 거진 5년 만의 조우였다. 음악에 푹 빠져 공연장에 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이 어느덧 직장인이 되고 누군가는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기도 했다.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당연히 5년 전 그때처럼 음악에 대한 깊고 풍성한 대화가 오고 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2시간여의 시간은 연봉과 재테크, 결혼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신보를 듣고 피어오른 뜨거운 감정 대신 생계와 관련된 차가운 숫자들이 오고 갔다. 말랑말랑한 상태로 어떤 이야기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던 우리의 감수성이 딱딱하게 굳어있음을 한번 더 확인했다.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로 내몰린 우리에게 감수성이란 마음 여린 자들의 한가한 소리일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빠 요즘 이상해'
'전에는 보지도 않던 드라마를 챙겨보질 않나. 아니 전에는 동물농장 보다가 울더라니까? 남자가 나이 들면 여성 호르몬 분비가 많아진다더니 틀린 말은 아닌가 봐?’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구는 아버님의 최근 변화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과학적으로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남자의 감수성이 호르몬의 변화로만 설명되는 현실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몇 주 뒤에 정준일의 콘서트가 있다.
혼자 갈 예정이고 늘 그래 왔듯 오케스트라 사운드 위에서 노래하는 그를 보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혼자 정준일 콘서트에 가서 울고 있는 남자가 어느 정도 될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나와 같은 부류의 남자들이 존재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 문화로 대표되는 각종 **맨 박스(Man box)와 긴밀히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감수성 풍부한 남자로 살아가는 게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면의 감수성이란 소우주를 지켜나가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오늘도 안녕하길 빈다.
*비포 트릴로지: 에단호크, 줄리델피 주연의 로맨스 3부작, 비포선라이즈(1995), 비포선셋(2004), 비포미드나잇(2013)
**맨박스: 미국의 교육학자 토니 포터가 주장한 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