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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ㅅㅁㅅ Jan 08. 2018

2019년 1월 1일에 만나요


시계를 보니 11시 57분이었다.
잠깐 밖으로 나와 강 건너 롯데타워를 향해 섰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폭죽이 터져 나온다. 한 해의 끝과 또 한번의 시작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집 근처 작은 포장마차 앞에서 2018년이 시작되었다. 역대급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 였기에 조금은 특별하게 마무리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돌고돌아 선택한건 차분하고 조용한 연말이었다.



언젠가부터 시끄럽고 화려한 자리보단 이런식의 마무리에 더 마음이 간다. 12월 31일은 더욱 그러하다.
카운트다운 몇 시간 전부터 야외에서 벌벌 떠는 것도, 잠깐의 낭만 뒤 찾아올 택시잡기 전쟁도 끔찍하다. 익숙한 장소에서 특별한 시간을 맞이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겐 1월 1일도 결국 일상이란 연장선 위에 있다.



새해라고 달라질건 하나도 없다.
새해 첫 출근이었던 오늘의 일상도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반복됐다. 피로 가득한 출근길의 지하철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고 회사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 채 쌓여있던 일들은 '새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예전에는 새로운 한 해의 목표를 세우고 행복회로를 풀가동하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요즘은 결국 똑같은 일상만이 반복됨을 확인할 뿐이다. 회사 시무식에서는 벌써 2019년까지 달성해야할 지표들이 나열되고 있다. 회사의 당연한 생리라지만 챗바퀴 속에 갇힌 느낌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해의 시작엔 막연한 설렘이 있다.

사랑하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란 인사치례를 곁들여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1년에 몇 안되는 그런 기회가 우리들 손에 쥐어진다.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역시나 휴대폰의 진동이 이어진다. 새해 인사가 쏟아지는 단톡방들 사이에 의외의 사람들이 끼어있다.


평소 연락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늘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땐 내가 미안했다며 묵은 사과를 전하는 과거의 여자친구, 고시공부한다며 잠수를 탔던 친구, 각자의 사연들이 질끈 깨문 입술자국과 함께 녹아있다.



턴제 RPG 게임처럼 이제는 내 차례다.
평소 자주 연락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 다음으로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얼굴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난이도가 낮은 순서부터 한 명,한 명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퀘스트를 해결해나간다. 한 단계씩 올라가다보니 몇 년 째 마음 전하기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중간보스처럼 등장한다.그 중에는 30년 넘게 실패 중인 아버지와 엄마도 있다.



결국 2018년 1월 1일도 실패다.
올 해 역시 원했던만큼 혹은 받았던만큼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품고있는 마음은 또렷하지만 카톡 메시지 속 감정은 흐릿하기만 하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단 말 한마디 한다 해서 대단한 일이 생기는것도 아닌데 나이를 먹을수록 겁은 많아지고 쓸데없는 걱정들이 마음 속에 켜켜히 쌓인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또 한번 다음으로 미뤄졌다. 나의 마음이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있는 한 언젠가는 할 수 있는 일이라 되뇌이며 내년을 기약한다. 말 한마디에 지나치게 올려놓은 무게를 덜어내다보면 2019년 1월 1일엔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있겠지.

모두들 그럼 2019년 1월 1일에 다시 만나요,
그때는 더 용기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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