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글을 읽을 줄 알았고, 유난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아주 어린 나이에도 글을 읽을 줄 알아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고, 한창 때라 열심히 싸우셨다. 나는 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텔레비젼을 열심히 시청했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알아서 생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곱살 무렵, 어머니께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친구들이 다니니까 보내달라는 게 아니었다. 학원에 가면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고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보내달라고 졸랐다. 나름대로 집밖에서 시위도 했지만 어머니는 절대 미술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뭘 배우고자 하기에는 우리집 사정이 여의치 않구나.
그때부터는 알아서 했다. 아주 조금 가진 재능에,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들을 눈짐작으로 배워서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다. 상을 곧잘 받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 또는 아주 작은 재능을 인정받아서일뿐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은 공연도 보고 전시도 보고 그렇게 견문을 넓히면서 꿈도 키워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늘 주눅들어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그럴수록 도태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사춘기를 겪던 언니는 잡지책 한권을 사들고 왔다. 큰 포스터가 함께 있었다. 잡지명은 로드쇼(Roadshow). 1995년 6월호였다. 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때문에 이 잡지를 사왔노라고 말했다. 나는 호기심으로 잡지를 들춰봤다. 멋있는 영화배우들의 모습, 극적인 영화장면, 영화 뒷얘기, 영화 해석, 깨알같은 글씨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언니가 다음 호를 사올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영화를 본 적 없어서 낯설었지만 거듭 읽어서 그런지 수많은 영화들과 영화배우들이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들어와있었다. 잡지책을 읽으면서 언니가 빌려오는 비디오를 함께 봤고, 그 시간을 지나서 나는 언제부턴가 직접 작품들을 골라보고 관련된 글들을 혼자 열심히 쓰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알게 되면서 삶은 더 행복해졌다. 넉넉치 않은 용돈 때문에 친구들과 놀러갈 수 없고 남들처럼 편하게 문화활동을 즐길 여유가 없던 나에게 영화만큼 훌륭한 친구도 없었다. 단돈 500원이면 원하는 영화들을 빌려볼 수 있었다. 비디오가게에 가는 게 가장 행복했고, 우리 동네에 없는 영화들을 찾아보고자 다른 동네 비디오가게로 원정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이따금씩 폐업하는 비디오가게들이 있으면 가서 희귀한 작품들을 구입했다. 주인 아주머니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어떤 비디오를 몇 편 사야할지 의견도 드리고 가끔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도 얻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비디오가게 알바로 취업해서 동네 주민들의 영화 선택을 도와주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사장님은 손님들의 줄거리 설명만으로 영화제목을 알려주고 찾아줄 때마다 나를 몹시 자랑스러워하셨다. 나는 영화가 좋았고, 수많은 비디오들, 비디오가게가 좋았다. 내가 구입했던 희귀 비디오 테이프를 가게에 기증까지 할 정도로 좋은 작품은 남들과 나누고 싶었다. 수집한 비디오테이프도 많았고, 읽어댄 영화 관련 서적도 꽤 많았다. 영화음악은 관련 라디오 방송을 끼고 살았고, 늘 녹음했고, 음반을 사서 모았다. 청취자가 직접 출연해 좋아하는 영화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와달라는 제안까지 받은 적도 있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나는 영화에 관한 많은 것들을 알고 싶었다. 영화가 시작될 때 뜨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로고만 봐도 흥분됐고, 오프닝 타이틀에 등장하는 스탭들의 이름들을 보면서 영화를 예측하는 것도 행복했다. 나는 세상에서 영화가 제일 좋았다.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져버리고 계속 두려움에 몸을 웅크린 결과로 지금의 나는 아무도 아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강한 마음을 먹기에도 나약해서 언제나 실패를 거듭했다. 그 과정은 늘 고통스러웠고, 이제는 희망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이에 맞게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갖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직장생활이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서 자리를 잡고 배가 나온 아저씨, 수다스런 아줌마로 잘 살아간다. 재산을 늘리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를 희망하며 그렇게 산다. 내 삶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평범보다 훨씬 못한, 혼자서 버티는 그런 삶을 살며 언제 포기할지 스스로 방관하고 있다.
하지만 포기할 땐 포기하더라도 내게는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들이 있다. 영화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위에 열거한 저 많은 기억들. 영화가 내게 주는 감정은 그런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해질녘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안도감과 같은 것. 실패하고 좌절을 해도 나는 언제든 내가 좋아하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 분명한 기준,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잘 할 수 있는 것. 누군가 나를 업신여겨도 나는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이 많다, 라는 약간의 자신감이 여태 나를 지탱해줬다. 그래서 혼자 버려졌어도 외롭지 않았고, 지금도 혼자만의 세상에서 변함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20년도 훨씬 전과 지금의 삶이, 관심사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다른 이들의 세상이 두 번 변할 동안 내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한 가지 확신은 든다. 이제부터는 뭔가를 해야할 것이다. 남은 삶은 지금까지의 것과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