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탁
버스에서 내려
슬레이트 지붕으로 걸어가는 길
자구 티 공장 대지는
대학 입학금으로 팔아 치운 논
신작로 옆 금싸라기 땅은
등록금으로 팔려 버린 논
들뫼 산비탈 언저리
대학원 수업료로 넘어간 뙈기밭
아
걸음마저 팔린 듯 풀리어
풀 풀 잡풀처럼 흔들리는 미안함
아
날아 가버린 것들
날아 가버린 흙의 숨소리
온통
거칠어져 날아드는 고샅 막다르면
등골 빠진 기다림으로
집보다 더 낡아 버린 골 주름 얼굴들
처음처럼 웃어 반긴다
텅 빈 외양간
누렁이 먹어 치운 석사논문
책 뚜레로 꿰어져 매여 있다
불 켜지 마세요
마음이 한없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녁 짓지 마세요
오면서 눈물 배불리 마시고
한숨으로 취해 버린 속입니다
날도 밝기 전에
떠나갑니다.
시강료 삼십만 원
이십 오만 윈 놓고 갑니다
그래도 찾아오는 고향집
오만원은 오가는 소관이라서
다 드릴 수 없는 계산
꿈도 깨기 전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앞서 가는 못난 송구함
잿빛 하늘
슬레이트 지붕 밑 백열등이
쑤신 삭신으로 깨어 깜박거리며
뒤쫓아 따라옵니다
박사과정 어찌하려면
이제는 이 몸 등골마저 팔아야 하는
동트는 아침으로
부리나케 도망칩니다
-군 제대 후, 대학 동기와의 술자리 가난을 건배하며 희망을 씹던 녀석은 독일 유학 후 교수가 되어 있었다. 데모 한창이던 오후, 최루탄 가스 묻은 나의 얼굴 앞에 구두약 잔뜩 묻어 웃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