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시를 다시 꺼내어 읽는다.
구리 반지 같은 위로
_ 형님의 시를 다시 꺼내어 읽는다.
사람의 마음은 때때로 말보다 먼저 울컥한다. 2016년 3월의 어느 밤, 술기운에 묻혀 있던 내 마음이 친구 상국과의 영상통화 앞에서 터졌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아이 둘을 품에 안고 먼 퀘벡까지 떠났던 친구. 그의 얼굴에 스친 외로움은, 그간의 삶의 궤적을 아는 내게 너무도 선명했다. 그 순간, 술잔에 떨어진 눈물은 내 것이었지만, 그 울림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의 것이었다.
그 다음 날, 주탁이 형님이 시 한 편을 보내주셨다. 「진호의 눈물」. 그 시는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었고,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꺼내어 펼쳐놓았다. 낙엽처럼 흩어졌던 젊은 날의 친구들, 그 중에서도 왼 손가락만큼 남은 진짜 친구를 향한 애틋함. 그리고 구리 반지처럼 감아쥐는 또 하나의 먼 친구. 형님의 시는 위로였고, 의리였고, 우정이었다.
그 시를 받고 나는 오래도록 말없이 읽었다. 형님의 시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지켜보는 따뜻한 눈길이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든든한 등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형님의 시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그 시는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고,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속삭여주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상국은 귀국해 구례에 터를 잡고 잘 살고 있다. 그의 삶이 다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건, 그날의 눈물과 그 눈물을 알아봐 준 형님의 시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주탁이 형님은 말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분이다. 늘 조용히 지켜보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마음을 건네주시는 그런 분.”
형님, 그때 그 시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말없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릅니다. 형님의 시는 제게 구리 반지 같은 존재입니다. 투박하지만 단단하고, 오래도록 닳지 않는 마음의 증표입니다.
이제야 글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늦었지만, 진심입니다. 형님 같은 분이 곁에 있다는 건, 참 든든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 진호의 눈물
낙엽들은 저리 길 무리 져
지들끼리 화사한 소멸을 노래한다
어둠은 가로등불 언저리마다
시침 분침으로 자정의 높이를 너머 간다
이제 모임 이차는 술 깊었느냐
한 모금 짙은 연초 맛이여
너 같은 친구 왼 손가락만큼 있더냐
젊은 날 그 많던 놈들은
저마다의 방명록 주인으로
언젠가 백지를 내주며 떠나가겠지
삼차는 온몸을 취하게 하고
먼 땅 퀘벡시 상국을 화상 통화하며
기어코 진호는
백 단풍 같은 눈물 술잔에 떨구고
술잔 감아쥐는 오른 손가락 하나
너는 또 하나의 먼 친구를
구리 반지처럼 감아쥐느냐
-김주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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