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와 습도로 추억하는 날
장면뿐만 아니라 온도와 습도도 추억으로 기억된다.
오늘의 시원한 바람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간간히 그늘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구름이
뜬금없이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가끔 의식이 제멋대로 흐르는 날이 있다.)
_
지난봄에 있었던 코리아 50k 트레일 러닝대회,
약 40킬로미터를 지나는 지점이었을까?
대회 후반부라 내가 많이 지쳐있을 무렵 ‘그곳’을 지났다.
동두천(동네이름으로 잘 알려졌지만 하천이름이다.) 윗자락 쯤 이었는데,
물 좋은 이 곳엔 토종닭이나 오리백숙 집이 있을 법도 했지만 계곡과 조화롭지 않은 이런 음식점은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밭농사 짓는 허름한 농가들이 보일 뿐이었다.
아마도 미군부대 근처라 제한이 있는 듯 보였다.
부대 출입구에 가까워지니 작은 마을을 만났다.
사람이 아직도 살까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집들과 가게들이었던 모습만 남아있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쇠퇴해 가고 있었다. 아마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술집이나 음식점, 구멍가게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_
그런 허름한 몇몇 상가가 작업실처럼 사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가방을 만드는 가죽공방도 보였고 가구를 만드는 나무 공방도 본 것 같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화가의 작업실이었다.
화가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그곳에 많은 선수들이 유난히 많이 지나가는 날인데도 우리에게 등진 체 그림에만 집중했다. 죽어가는 마을에 생기가 보였다.
_
내가 지쳐있던 이유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음식점이 즐비해 있진 않은 계곡이,
유난히 조용했던 마을이,
그리고 그곳을 찾아든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왠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 마을 달리는 우리가 이상했고 그런 우리에게 무관심한 그들을 포함해 모든게 어색하고 이상한 풍경으로 보였다.
_
오늘같이 따뜻한 바람과 구름이 있는 날에 다시 한번 그 마을을 찾아 가고 싶다.
편의점이 아닌 옛날 모습 그대로인 구멍가게에서 냉장고 속에 삼 년은 있었을 법한 쮸쮸바 하나 꺼내 입에 물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에 맞춰 덩달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고 싶다.
특별할 것 같지 않았을 화가의 그림도 느리게 감상하면서.
_
#trailrunning #korea50k #코리아50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