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라면 오늘이 출국이다. 고민 없이 말했고, 오랜 시간 망설인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도 그만두고, 한 달 동안 쉬면서 나름 준비한다고 했는데 코로나가 모든 걸 꼬아놓았다. 천재지변을 내가 어쩌겠냐 싶어 타인들을 탓하고 싶지만 그런다고 호주 입국 금지가 풀리지는 않을 노릇이다. 비행기표 취소하는 거야 별거 아니지만, 출국 전까지 한국에서 쓸 돈이 이미 바닥난 상태에서 호주에서 쓰려고 모아둔 돈까지 깨서 쓰기 싫은 마음이 너무 크다. 사실 코로나가 문제라기 보단 이번에도 돈이 문제다. 가장 문제 삼기 싫은 문제는 언제나 돈이다.
넉넉하게 자라지 못해서 언젠가부터 가난 자체보단, 가난한 티를 안 내려고 발악하는 나 자신이 꼴 보기 싫기다. 막상 현실이 되니 생각보다 돈 나갈 곳이 많았던 탓도 있다. 보험료는 왜 그렇게 비싼지, 자잘하게 살건 왜 그렇게 많은지. 무엇보다 짜증 나는 건 당연히 만나야 할 사람들과 만나는 것에도 돈을 아까워하고 있는 나 자신이다.
정신 차려보니 알바몬을 뒤지고 있었다. 사실 모아둔 돈에서 조금 쓴다고 문제 될 건 없다. 계획보다 더 많이 모아 두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빼 쓴다고 해도 호주 가서 굶고 살진 않을 텐데, 또다시 단기 알바를 구하는 내가 한심하다. 그냥 주어진 휴식기간을 온전히 즐겨도 되는데 뭐가 그렇게 더 채우고 싶은지, 뭐가 그렇게 부족하게만 느껴지는지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하는 꼴이 여간 한심한 게 아니다. 결국 또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 까만 생각하고, 나 자신을 보지 못하는 꼬락서니기 때문이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딱 그 정도로 적당하게만 일하자. 원고 제의가 들어오면 하고, 안 들어오면 그만이다. 휴식하고, 돌보고, 계획해야 하는 시기니까. 충분할 만큼 고생했었고, 앞으로도 고생할 거니까. 남들한테 없는 티 나는 걸 무서워 하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에게 확신을 가지자. 충분히 멋지고, 충분히 잘살아 나갈 자신이 있으니까. 혹시나 타인의 시선에 나의 부족함이 보일 것 같으면 속으로 외치자. ‘남이사, 어쩌라고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