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처음

by 탈고

며칠 전부터 날씨가 범상치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 피크닉을 계획하고 있던 누군가에겐 안 좋은 소식이지만, 나와 민재에겐 희소식이었다. 물론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해서 파도가 좋은 건 아니지만 파도까지 좋았기 때문에 겨울잠을 깨고 이른 서핑을 즐기기로 했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든든히 먹고, 여유롭게 송정으로 향했다. 부산에 사는 특권이라고나 할까? 언제든 바다를 갈 수 있고, 언제든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곳. 골드 코스트는 어떨까. 나의 고향과 어느 정도 닮아 있을까? 무엇보다 언제 갈 수 있을까? 암튼 생각보다 바람은 찼다.


서핑을 처음 배운 곳도 송정이었다. 그땐 배웠다고 하기 엔 뭐할 만큼 둥둥 떠다니기만 했었다. 제대로 배운 곳은 발리였다. 이틀 정도 강습을 받고나니 파도를 잡아 타는 시늉 정도는 할 있게 되었었다. 그 후론 강습이나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후로 한국으로 돌아와 송정이나, 제주도에서 매년 몇 번씩 타는 게 저부였다. 그럴 때마다 늘지 않는 실력 탓을 "파도가 별로네"라는 말로 얼버무려 버렸다. 그래 놓고 어디 가서 ‘나 서핑 좀 탄다.’는 식으로 으쓱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인정해 버렸다. 실력을 상..하로 나눈다면 나는 하중에서도 하하하라는 사실을 말이다.



서핑은 자전거가 아니다. 한번 익힌다고 다음에도 그냥 탈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파도는 매 순간, 단 한 번도 똑같지 않고, 언제나 다른 형태와 다른 속도와 다른 움직임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매 순간이 처음이나 다름없다. 그런 파도를 잡아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타이밍도 못 맞추고, 있는 힘을 다해서 패들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중간한 파도는 원래 그래, 그러니까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식이었다. 마치 운 좋게 한방을 노리는 게으름뱅이처럼 말이다.


3시간 동안 타면서 파도를 잡아 탄 게 고작해야 다섯 번이었다. 그날은 파도가 좋아서 많은 서퍼들이 몰렸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퍼들은 내가 ‘에이, 이 파도는 못 타겠다.’싶어 거른 파도들을 참 쉽게도 잡아타더라. 그 사이에선 이미 서핑을 해보신 분인데, 강습을 받는 분도 있었다. 하에서 중으로 가기 위해 꾸준히 강습을 받으시는 분이었다.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배워나가는 모습이 나와는 사뭇 달랐다.

다음엔 나도 강습을 듣겠노라 다짐했다. 할 수 있는 것과 잘하는 것은 확연히 다른 거니까. 무엇이든 내 것으로 만들고, 누리고 살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삶은 자전거보단 서핑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단 한순간도 똑같지 않고, 언제나 다른 형태와 다른 속도와 다른 움직임으로 나에게 달려드는 게 시간이고, 삶이니까 말이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능숙하게 잡아타기 위해선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배워나가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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