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불평등에서 저항과 창의성의 상징으로
베네치아를 찾는 아니 유명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다들 '관광객이 없는 곳'을 찾고 싶어 한다. 베네치아에 오래 살면서 넓지 않은 베네치아를 어쩔 수 없이 발로 만 찾아다녔던 경험으로 추천드리는 장소는 게토(Ghetto) 지역이다. 주거 밀집 지역이라 화려한 볼거리가 없는 대신 고즈넉한 분위기라 진짜 베네치아 인들이 사는 정취를 천천히 걸으며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https://maps.app.goo.gl/n9XfRMcRnSZVVHpc7
현대에서 쓰이는 '게토'는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밀접해 사는 도심 지역을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만들어낸 힙합 문화로 지금은 주류가 된 패션, 음악, 언어가 게토 문화로 이젠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창의성과 쿨함의 상징이 되었다.
이 게토라는 말이 실제로도 16세기경 베네치아에서 유래되었다. 유럽은 오랫동안 유대인들을 강제로 특정 지역에 거주하게 했다. 유대인들은 유럽의 주류인 가톨릭 신자들이 아니 이교도들이라는 이유로 토지소유나 직업에 제한이 있었고 사람들이 접촉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게토 안에서 그들의 공동체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면서 살아갔었다. 베네치아는 이들을 16세기에 강제로 분리시켜 엄중하게 감시한 최초의 도시였다. 지금 '게토 누오보 Ghetto Nuovo'에는 한때 대포알을 만드는 주물공장이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게토'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설이 유력하다. gèto가 베네치아 방언으로 주물공장이란 뜻이고 이 말이 '주조하다'라는 이탈리아 단어 gettar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 지도에서 보이듯이 게토 누오보 섬은 단 두 개의 다리로만 건널 수 있어서 통제하기 아주 유용했다.
과거 유럽의 유대인들은 직업의 제한이 많았다. 농사도 지을 수 없어서 금세공사, 환전상, 고리대업, 골동품상, 의사가 가장 흔한 직업이었다. 이전 화 '지로 용지의 지로는 이탈리아어다'에서 소개한 대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한 탐욕스러운 샤일록 역시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샤일록을 변호하자면 그가 베네치아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금융업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금융업은 다른 고객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예외 없이 수금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은행 대출 상환을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그가 안토니오의 살을 원했던 것의 다른 해석이 있다. 언뜻 보기엔 기독교인인 안토니오는 친구를 위해 빚을 진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샤일록은 잔혹하고 몰인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샤일록은 자신을 멸시하는 안토니오에게 복수하려 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복수에는 샤일록의 숨겨진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샤일록의 유명한 독백을 들어보자.
유대인은 눈이 없단 말인가? 유대인은 손이, 사지가, 도구가, 감각이, 취향이, 열정이 없단 말인가?
그는 계약 상대자로서뿐 아니라 '접촉'할 수 있는 완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길 원했던 것이다.
그 당시 베네치아인들, 유럽인들의 유대인과의 접촉 공포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작품 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
유대인들은 당연히 집을 소유할 수도 없었고 이주의 자유도 없었다. 하지만 인구는 늘어나고 거주할 공간을 더 필요했다. 베네치아는 원래 5층 이상의 건물이 없다. 하지만 게토에서 만큼은 예외였다. 갈 곳이 없는 게토의 유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증축을 해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7층 8층짜리 주거 건물이 있다. 그리고 이비 지어진 집도 수평으로 넓히기 위해 골목길까지 내밀어 뺀 건축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중해 무역으로 외국인도 많이 살았을 베네치아 같은 국제도시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유대인 격리 구역인 게토를 가장 먼저 만들었을까? 베네치아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
도시에 재난이 닥칠 때마다 베네치아 인들은 유대인에게 복수를 했다. 베네치아인도 유대인을 무역에 이용했던 다른 민족들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베네치아인은 유대인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괴롭혔고, 그들의 재산을 갈취했으며, 게토 구역을 점점 더 제한했다.
1453년 오스만에 의해 제국은 멸망했다. 그리고 베네치아는 지중해 패권을 잃었다. 이를 만회하려 이탈리아 본토로 진출하려는 시도는 1509년 전투의 패배로 좌절됐다. 이어서 포르투갈이 대서양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유럽 무역의 독점적 지위도 잃게 되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일련의 처참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베네치아 인들은 상실감과 패배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1494년 이탈리아와 베네치아에는 매독이 창궐했는데 이는 베네치아 인들의 방종과 도덕적 부패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희생양을 찾았고 바로 오랫동안 탄압해 오던 소수자인 유대인들을 이번에도 이용했었다. 유대인들은 불순하고 타락했고 이들을 격리시킴으로써 베네치아인의 '순수함'이 복원되고 과거의 영광도 되돌아올 거라는 터무니없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게토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유대인의 악마화와 접촉 공포가 고스란히 유럽에 퍼져 '베니스의 상인'에도 담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괴물이 되어 받았던 탄압을 더욱 잔인하게 무고한 사람들에게 퍼붓고 있다. 역사는 항상 얄궂게 되풀이되고 인간은 잘 배우질 못한다.
지금의 게토 지역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게토 누오보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폰다멘타 델 미제리코르디아 Fondamenta del Misericordia라는 카날을 따라 이어진 식당과 바가 이어진 길이 나온다. 이곳은 맛있는 식사나 와인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꼭 들려보길 바란다.
https://maps.app.goo.gl/iesK8UquZHTfzxh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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