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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May 01. 2023

퇴사에 대한 주변의 반응

잘했어, 한마디면 충분하다

 회사에 그만둔다고 말하기 전과 후에는 마음이 정말 힘들다. 게다가, 나처럼 특별한 사유 없이 ‘힘들다, 쉬고 싶다’라는 이유로 그만두는 데에는 주변 사람에게 이해를 구하고 상황을 납득시키는 데에 많은 말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쩌면 내 선택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확신을 갖고 싶은 나를 위한 과정이 아닐까. 회사에 퇴사를 이야기하고 나서도 얼마간의 기간 동안 나는 나의 결정이 옳은지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견을 묻곤 했다. 


 나의 퇴사를 확인하고 결정을 마무리 한 제일 첫 번째 인물은 사장님이다. 그만두려고요,라는 말에 이어진 '왜'라는 반문에 '힘들어서요, 쉬고 싶어요.'라고 했고 그 대답이 충분치 않았는지 사장님은 그 이후에도 '정말' 그만둘 건지에 대해서 재차, 삼차 물으셨다. 이 기간이 한 달 정도 걸렸는데 나는 길게 설명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한 채 ‘네’라는 대답만 했다. 주변 상황에 변화는 없었다. 흔히 쓰는 일신상의 사유 예를 들면, 이직을 한다던지, 출산을 한다던지, 병이 있다던지, 가족을 돌봐야 한다던지 하는 이유가 없었고 혹은 로또에 맞은 것도 아니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주변 사람 중에 친구들은 놀람과 함께 어떻게 퇴사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한 정황을 알고 싶어 했다. 내 나이 또래들은 대부분 직장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생에 최우선 순위는 직장이다. 이는 경제적인 이유를 넘어서 일을 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한 맹신이다. 가족들을 위해서 벌어야지, 더 나이 들기 전에 벌어야지, 아이들 가르쳐야지, 하는 이유들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의 결정을 과감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없기에 그 외의 모든 의무들은 퇴직금 수준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미래의 숙제는 미뤄둔 채 퇴사를 결정하였다.


 주변에서는 나이가 적지 않아 대책 없이 그만두면 차후에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신입도 경력도 넘어선 사십 대 후반. 이력서를 넣으면 분명히 나이가 너무 많네요, 할 것이다. 재취업에 대한 어려움은 현실적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지인들은 앞날을 생각해라, 자리 구하고 옮겨야지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 그래서, '네, 맞아요. 백수가 돼요. 어떻게 되겠죠.'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계에 대한 우려는 지금으로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지금 당장, 직장을 다니며 겪는 괴로움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을 끊어 내는 게 먼저다,라고 고집했다.


 한편, 가족들은 내 상태를 상세히 알고 있어 별 다른 말없이 지지해 주었다. 지쳐있는 나에게 더 다녀 보라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힘들었지, 알겠어.'라고 오히려 퇴사를 응원해 주었다. 엄마는 제일 먼저 나의 퇴사를 찬성하였다. ‘에잇, 그놈의 회사 많이도 다녔다.’ 하시면서 얼른 그만두라고 종용하였다. 나는 8년을 다녔다. 그 기간이 타인에 비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텐데 엄마는 자식이 힘들다는 건 제일 못 참는 분이시라 두 손 번쩍 들고 찬성해 주셨다. 가족들이 내 결정에 반신반의했다면 과감히 퇴사를 감행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지금도 나의 퇴사에 제일 발목을 잡은 건 걱정이다. 앞으로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들 말이다. 잘한 건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 퇴직 후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된다. 퇴사 이후의 재 입사가 지금의 직장보다 더 나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라는 생각에 미치면 정말 기운이 빠진다. 


 나의 퇴사에 대한 직장 내 에서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퇴사 소문이 나면 평소 말도 걸지 않던 직원 분이 특별한 이유 없이 다가와 안부를 묻는다. 질문의 내용도 대답도 겉돌기만 할 뿐, 뭔가를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나도 일일이 대답할 수가 없다. 선뜻, 왜 그만두는지, 언제까지 다니는지에 대해 묻지는 않는다. 회사 내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내려 한다. 더 크게 말하거나 약간은 바쁜 척을 하기도 하면서 일을 하며 다가올 동료의 부재를 떨쳐 내고자 한다. 나도 그랬다. 퇴사는 남는 사람에게도 떠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이별의 과정이다.


 주말이 되어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소식을 듣고 별다른 위로는 생략한 채 ‘애썼다, 고생 많았어.’ 하였다. 쉬면서 체력도 회복하고 여유도 즐겨, 하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 한 녀석은 일 그만두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 한잔 하며 놀자고 한다. 초등학생 어린 아들까지 동행하는 나들이라니 제대로 대화가 될지 가늠이 안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시간을 내려고 하는 친구의 배려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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