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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Jun 13. 2023

드디어, 퇴사합니다.

팔십만 원의 자유

 드디어, 퇴사하는 날. 나는 출근길에 택시를 탔다. 왠지 마음이 허전해서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싶었다. 솔직히,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봄이 오고 있어 날이 조금 더 포근했다는 게 약간 달랐다. 직장을 마주하고 길 건너편 이웃집 회사는 마당에서 개를 키우고 있다. 얼마 전, 백구가 강아지 네 마리를 낳아 그 녀석들 보는 게 낙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는 녀석들에게 달려가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다가가기만 해도 좋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분주하게 흔들어대는 모습에 웃음다.

그날은 10일이라 세금계산서를 마감해야 하기 때문에 통장 거래 내역을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사장님이 지시한 퇴사 전에 처리해야 하는  몇 가지 서류들을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오전 시간에는 약간 바쁘게 움직였다. 다만, 꽤 다른 점은 우리 회사 직원분이 시모상을 당하셔서 퇴근 후에는 상갓집에 들러야 한다는 일정이 있었다. 상조금을 입금해달라고 부탁한 분들, 상조 봉투를 달라는 분들이 있어 나의 퇴사 당일에 대한 관심은 살짝 멀어져 갔다.


 비로소 마지막 출근일. 오늘도 여러 명의 거래처 고객들이 왔다 갔고 센스 있게 나의 퇴사를 전달해 주는 후임님 덕분에 몇몇 분들과는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분들은 8년이나 다닌 어쩌면 변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당황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남기며 혹은,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남겨 주었다. 일일이 찾아가지 못하고 연락하지도 못하는 데 몇 분들과는 인사를 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일로 연락하고 지냈는데 갑작스레 자리를 비우는 게 미안하였기 때문이다.


 후임언니는 나에게 사장님에 대한 여러 가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본인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 하였다. 동시에 그간의 나의 수고에 대해 깊이 공감하여 주었다. 내 생각에는 나와의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후임님이기에 일보다는 나의 감정을 다독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일만 하는 성향이어서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장면을 겪은 듯하다. 일 외에 내 감정에 대해 이렇게 공감을 받은 일은 이 회사에서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몇 직원 분들은 나의 퇴사가 없는 일인 듯이 하루를 살았다. 나는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그머니 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퇴사를 굳이 칭송받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제 다시 보기 어려워질 텐데 함께 고생하며 일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굳이 저렇게 피하실 이유가 있나, 라며 생각했지만 나도 굳이 지나가는 그분들을 붙들고 인사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상갓집에 갔다. 사장님과 직원분들과 한차에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했다. 상갓집에 가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다들 내가 퇴사하는 줄 알고 있으니 마지막 날, 굳이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해했겠지만,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퇴사는 퇴사고 동료이었던 분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가봐야 할 일이었다.


 상갓집에서는 신기하게 회사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지인도 만나게 되어 퇴사 소식을 전하고 인사도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나이가 있어서 -직장을- 옮기지도 못하고 말뚝 박아야 해.’라며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옛날 같았으면 몇 번이라도 때려치웠을 건데, 지금은 상황이 아니잖아.’라고 하시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술을 못하는 나로서는 상갓집에 오래 있기가 어려워 혼자 먼저 나오게 되었고 남은 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솔직히, 너무 섭섭해.’하시며 손을 잡아 주시는 여직원분의 말씀에는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울 일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쉽고 섭섭한 일이다. 우리는 벚꽃이 피면 양재천에서 다시 만나자 약속을 나누었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노점에서 파는 프리지어 한 단을 샀다.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싶었는데 택시를 포기하고 그 돈으로 꽃을 샀다. 꽃 한 단에 기분이 좋아졌다. 금세 생기를 찾고 당일 입금된 퇴직금과 며칠간 일한 급여에 대한 은행일을 보기로 했다. 여러 달 치 적금과 보험료를 납부하고 통신비가 빠져나가는 통장에 잔액을 넣어두고 생활비 두 달 치 팔십만 원까지 송금하고 신이 났다. 나는 한 달에 사십만 원을 생활비 통장으로 보내고 있기에 이제 두 달간은 내가 프리라는 뜻이라며 자유를 확인했다.


 그리고 볼일을 보며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사족 같은 ‘00, 수고했어.’라는 사장님의 문자에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일보다 사람이 중하니 건강도 챙기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이러이러하지 않았다면, 내가 퇴사했을까,라는 생각을 몇 번 했다. 회사가 이렇게 바쁘지 않았다면,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월급을 올려 준다고 하였다면 등 고려사유는 많았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알았다. 어떤 상황과 여건이었더라도 나는 퇴사하였을 것이다. 퇴사가 답은 아니지만 퇴사라는 변화가 나에게 필요했다. 매일 겪던 답답함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일상을 뒤흔드는 퇴사 말고는 찾을 수 없었다.


 비로소,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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