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줍은 동료의 고백
마음 한켠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말
마흔 중반이 너머서자 친구들과의 거리감은 익숙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직장도 없고 아이도 없지만 내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 맘이라 일과 육아, 가사로 정신없이 바쁘다. 생업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친구라는 존재는 먼 추억의 일환으로 마음 한켠에 미루어 버린다. 나는 가끔 연락을 기다리곤 하지만, 굳이 ‘잘 사냐, 왜 연락이 없냐.’는 식의 문자를 남기지는 않는다. 친구들의 삶이 평탄하게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언제든지 삶의 여유가 한자락 흘러 들었을 때 내게 연락해 올 것이다.
확실히 삼십대에 비해서 인간관계도 좁아지고 약속도 줄었다. 이런 상황이니 가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소풍 가는 어린 아이마냥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언제 하루가 지나고 저녁에 와서 약속장소에 나가게 될까 설레인다. 오늘은 직장 동료였고 지금은 친구인 선후배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다. 내가 제일 먼저 입사했고 팀장으로 언니가 입사했다. 뒤이어, 다른 부서 팀원으로 동생이 입사했는데 결국은 같은 팀으로 묶였다. 위로는 세살, 아래로는 두 살, 우리 세명은 나이 차이가 있지만 또래여서인지 친해질 수 있었다. 함께 일한 기간은 만 2년 정도. 짧다고 할 수는 없는 그렇다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되어 시작과 끝을 아울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기에 똘똘 뭉쳐 일하였고 끈끈한 동지애를 형성하였다. (실은 지금은 인연이 닿지 않지만 동고동락한 다른 친구들도 여럿 있어 이 자리를 빌려 마음의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잊을 만 하면 한번씩, 계절에 한번 정도 회동을 하는 편이다. 세 명의 직장과 집의 교차로가 되는 강남역에서 주로 만난다. 강남역 하면 우리 나라 최고의 번화가다. 유명한 많은 옷집과 음식점, 극장가가 형성되어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서 맛집을 찾아다니고 유행하는 음식도 먹게 되는 기분이 날아갈 듯 행복하다. 사실, 나 혼자였다면 낯선 곳이었을 텐데 셋이서 나란히 걷는 길은 즐거운 탐험을 떠나는 듯 발걸음도 당당하다.
오늘은 육 개월 전 나의 결혼 이후 첫 만남이다. 마흔 넘어 늦게 한 결혼. 초보 주부에 대한 궁금증 대폭발 중인 친구들을 만났다. 코로나로 인해 음식점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언니 회사의 회의실을 빌려 둘러앉았다. 이미 초등학생, 중고등 학생 아이들을 둔 결혼 대선배들 앞에서 나는 결혼 생활에 대한 감상을 솔직히 이야기 했다. 좋은 점과 나쁜 점. 그리고 여자로서 맞닿으려야 했던 집안 살림에 대해서 특히 강조했다.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현재 직장의 이야기 등 오랜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사는 모습이 비슷해 보여도 각자에게 중요한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의 고민을 가감 없이 내뱉게 된다.
시간이 무르익어 기억을 더듬다 보면 옛날 직장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십년도 지난 그 때 일들을 생생하게 추억하며 웃는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잘 됐으면 하고 데이트에 밀어 보내기도 하였고, 아장아장 걷는 세 살배기 아기를 데리고 팀 단합대회라며 스키장에 우르르 몰려가기도 하였다. 상사로부터 꾸중을 들은 날에는 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였는데 우리는 꽤 자주 모였다.
예전 기억 중에 다른 부분을 이야기 나눌 때에는 그때, 그 사람이 그런 뜻이었어? 정말 그랬어? 그랬단 말이지, 뒤늦은 해석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기억이 동일한 특별한 사건을 이야기 할 때에는 셋이서 동시에 맞아, 맞아 하며 얼굴을 마주하고 박장대소한다. 당시,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이었던 우리들은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해가 안 될 정도의 괴력을 발휘하였다. 젊었고 일이 중심에 있었던 날들이었다.
동고동락 후에 남은 동료들의 우정.
지금은 일선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기에 사람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여유롭다. 할 말이 많고 더 물어볼게 많은데 간혹 침묵을 유지하기도 한다. 눈앞에 음식이 줄어 들고 잔에 가득 채운 맥주가 줄어들어 간다. 느지막한 시간이 되자 평소 생각해 왔던 질문들을 나누었다. 늙음이란 무엇일까. 사람 간의 기대란 무엇일까.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살면 좋을까.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문장이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좋다.
나는 수줍음이 많아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데 언니와 동생들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던 소중한 기억들이 있다. 상사였던 언니는 같이 근무할 때 나에게 뜻밖의 문구류를 선물해 주었다. 언제나 손바닥만 한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며 뭐라도 끄적였던 내 모습을 알고 있었던 건가. 당시 친하지 않았는데 특유의 유려한 필체로 ‘오랜만에 J 덕분에 문방사우를 쇼핑하며 기분이 좋았다.' 라고 담백한 카드를 동봉했었다. 나는 왠지 마음이 따뜻해 옴을 느꼈다.
다른 진한 추억도 있는데 그건 바로 언니의 말이었다. 다른 팀들도 참여하였던 워크숍이었는데 ‘나는 우리 팀원들이 있으면 뭐든지 할 있을 것 같았다.’며 강한 신뢰감을 내비쳤다. 사람을 지탱하는 힘 중에 ‘너 잘 해 나가고 있어.’라는 인정만큼 큰 힘을 가진 말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은 가족보다는 친구나 동료가 해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은 황량한 사회 생활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준다. 당당하였고 솔직하였던 그녀는 지금도 커다란 회사에서 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굳게 믿고 있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다른 면에서 동생은 나에게 감동을 주곤 하는데, 예전의 어느 날이던가. 내가 힘들다고 했던 그날. 온라인 메신저로 수십만 원을 선뜻 송금하였다. 어디라도 떠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메모와 함께였다. 나는 그렇게 큰돈을 선뜻 내밀 만큼 통 크지 못한데 그녀는 어디서 그런 담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친구라는 존재는 가족만큼이나 사람의 정신을 지탱해 주는 커다란 울타리 인 것 같다. 내가 지금, 힘들다는 말 안에 넉넉지 못한 형편임을 알아차릴 만큼 섬세하기도 하다.
그 통 큰 동생은 얼마 전에는 생일 선물로 핸드크림을 보내왔다. 강남역처럼 신선하고 뽀송뽀송한 핸드크림은 아름답고 향긋한 자태였다. 내 마음까지 보드랍게 만들어 주었고 감사함을 넘어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불쑥 선물을 보내오는 센스는 그녀만의 전매특허 따스함이다.
그에 비해 나는 선뜻, 잘 지내냐, 선물 고맙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성향이 못된다. 정말 고마워, 라고 문자를 보내기까지는 머릿속에 상대가 다섯 번은 족히 왔다 갔다 한다. 그냥, 뭐든 약간은 조심스럽고 내 마음을 잘 전하고 싶어 망설여진다. 사람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들의 나를 향한 사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신비로움에 취해 잠시 말을 잊는 것 같다.
이제서야 돌이켜 이 글을 읽는 나의 친구이며 동료였던 이들에게, 수줍은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