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회사를 그만두고서 곧바로 NGO 단체에 입사했다. 복지관에서 만났던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잔상은 나를 빈곤아동지원 단체로 이끌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느꼈던 도와 주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물색없이 사회복지사라는 이유 만으로 나를 따랐고 좋아해주었다. 그리고, 몇천원에서 몇만원 혹은 몇백만원까지 지원을 연결해준다는 것으로 내 어깨가 으쓱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어떤 부모님은 옆집 아이는 삼만원씩 받는데 우리 아이는 왜 오천원을 받느냐고 문의 하기도 하셨다. 후원이라는 것이, 후원자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 내가 금액을 좌지 우지 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드리고, 또 다른 후원자와 중복 혜택을 받도록 소개하기도 하였다. 복지관에서 경험한 일 자체에 대한 감동과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에 나는 두번째 직장으로 향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두번째 직장. 그 곳에서는 정확히 8년동안 일했다. 사원인 사회복지사로 들어가서 팀장으로 승진하고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기는 했지만, 열심히 다녔고 맡은 바 본분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 교회를 다니고 있어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고 성품이 좋았다. 다만, 힘든 점은 일이 무척 많았다는 것이다.
거의 매달 행사가 있었고 출장은 쉴 새 없이 다녔다. 나중에는 출장이 익숙해져서 전국 방방 곡곡을 헤매고 다녀도 기계적으로 고속버스와 열차에 몸을 맡겼다. 이 회사가 이전 복지관과 다른 점은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사무국에서 주로 후원자들에게 제안과 펀딩, 자원분배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들은 초겨울이면 김장 행사를 했고 겨울에는 겨울옷을 신학기에는 책가방을 후원받아 전국 각지에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종이로만 만났다. 김치를 먹는 아이들, 따스한 겨울 외투를 입은 아이들, 선풍기 바람을 쐬는 아이들, 서울로 나들이 온 아이들. 모두가 사랑스럽고 소중한 모습이었다. 비록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소신과 열정으로 8년을 한결같이 열심히 살았다.
나는 직급이 팀장이었고 내 위로는 부장, 사무총장, 대표가 있었는데 8년을 다녔지만 부장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꼭 진급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왜인가라고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일을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내 시야가 경주마처럼 좁았던 것이 원인이었지 않나 싶다. 당장, 닥친일을 해 내는 데에만 급급해서 사람들(내부)과의 의사소통이 예민하고 불친절했다.
동시에, 퇴사를 맞이하기 전까지 여러번 번아웃(burn out)이라는 것을 맞이했다. 회사에서는 나를 배려하여 1주일 휴가도 주고 한달 휴직도 주었고 정말 여러가지 연수와 교육으로 나를 북돋아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은 제자리걸음 이상을 걷지 못한채 정체되었고 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이 곳에서 받았던 많은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따뜻하고 좋은 동료들이었다. 다만, 나의 여유 없음이 긍정적인 에너지 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를 몰고 나갔던 것 같다.
이미 너무 오래 전인, 그 때로 되돌아간다면, 나에게 괜찮다, 잘하고 있다, 주변을 더 믿어라, 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너무 혼자서 해내려고 하지 말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