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아이
며칠 전 우연히 한 영상을 보았는데 그건 놀랍게도 AI인가 싶을 정도로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의 손이었다. 물론 다지증은 이전에 사진으로는 본 적이 있었는데, 보통 한 손가락이 엄지나 다른 손가락과 붙어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여섯개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와, 신기하다. 하면서 보다가 ‘왜 수술하지 않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욕 비슷한 소리를 질렀다. 미쳤다. 많은 장애우들의 환경에 노출된 내 자신도 장애에 대해 이렇게 끔찍한 생각을 해버리다니. 나도 모르게 정상과 비정상으로 선을 그어버렸구나.
생각해보면, 다지증은 그렇게 희귀하진 않았다. 옛날엔 동네에 하나 쯤은 있었다고 하고 ‘육손이’란 이름도 있었듯이(지금은 비하발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살았을 거다. 게다가 기능도 한다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성 형질이라고 한다) 조금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잖아. 그냥 그 모습을 인정해버리면 그만이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그림책 <유리 아이>, 그림책 모임에서 두번째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른 감흥이 있어 조금 놀랐다. 작가처럼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2002년 <유리소녀>로 소개되었던 이 책은 작가가 아이를 낳고 기르며 세계관이 바뀌어 몇 개의 흐름과 결말을 수정해 2019년 <유리 아이>로 재출간 하였다. 이전에는 특별한 존재에 관해 계속 방황하는 결말이었다면, 바뀐 결말은 유리 아이 스스로 자기 존재를 인정한다. 처음 보았을 때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이야기로 읽혀졌다면, 다지증 영상을 보고 나의 자동화 사고에 한번 크게 놀란 후 유리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인이 보였다.
작가는 여린 선으로 연약하고 투명한 주인공을 그리고, 표정과 감정들은 종이의 질감으로, 유리아이에게 참견하거나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은 꼴라쥬로 표현했다고 한다. 나는 꼴라쥬로 표현된 누군가가 된 기분이었다. 곱씹고 싶은 창피한 감정이다.
덕분에 오랫동안 끌고 있던 이야기의 결말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볼 때마다 다른 영감을 주는, 이 맛에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