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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Jan 24. 2017

함께하는 미니멀리즘

혼자일 때 보다 즐겁다.

미니멀리즘을 비롯하여 자연주의나 채식주의를 시작하는 것, 특정 종교를 가지는 일, 공부나 운동을 꾸준히 하겠다는 결심 등 자신이 그동안 가졌던 삶의 모습을 바꾸는 일은 무엇하나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정하고 결심하는 과정, 그로인해 평소 아무 생각 없이 해오거나 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하는 수고로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의지와 부지런함 그리고 끈기 등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니 당연히 실천의 어려움도 나와 관련된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제가 미니멀리즘을 본격적으로 시직하고 나서 만났던 어려움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관련된 문제였고, 그 어려움을 해결할 의지를 준 것도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무리를 짓고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매우 빈번하게 타인과 접촉하게 되고 서로 영향을 주거나 받습니다. 마주한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고 공격하는 등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제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미니멀리즘을 처음 실천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저와 시간과 공간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남편 및 아이들이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특별히 아끼거나 정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과하게 소유하지도 않던 남편은 저로인해서 적다는 것과 정리가 얼마나 쾌적한 삶을 제공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적극적으로 집안의 물건을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경우에는 기꺼이 도움을 주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할 때 충분한 고려를 하는 등 매우 협조적으로 함께 해주었습니다.


저는 큰 아이와 뱃 속에 둘째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때때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엄마가 주는 것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입니다. 왜 나는 일회용 기저귀가 아닌 천 기저귀를 썼는지, 왜 남들보다 자신이 가진 장난감이나 책의 수가 더 적은지 비교하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과자가 아닌 엄마가 만들어 주는 간식도 (맛이 있다면) 잘 먹어주고, 몇 가지 제한적인 장난감 만으로도 매일 즐겁고 새로운 놀이를 창조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가까운 가족들은 제 생활이나 결정에 큰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며 함께 사는 반면, 친정 엄마는 제가 물티슈 대신 걸레며 행주를 사용하는 모습이나 매번 똑같은 옷만 입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딸이 남들처럼 편하게, 예쁘게,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어떤 생활을 하시는지 전혀 알지 못하시는 시어머니는 종종 손세정제와 새로운 아이 장난감 등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러 번 괜찮다고 거절을 했는데도 이따금 시댁에 방문할 때면 이런저런 물건을 한아름씩 안겨주십니다. 선물받은 물건이니 버리거나 남에게 주기도 어렵고 필요했던 물건이 아닌데다 마음에 들지도 않으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어른들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설득하려 애쓰거나 거스르지 않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뜻에 따르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습니다. 친정 엄마께는 생활이 조금 불편하지만 행복하다는 메시지로 응답하고 시어머니께는 챙겨주신 물건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가급적 잘 다듬어 사용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모두 저와 제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들인데다, 저보다 두배 이상 많은 시간을 살아오신 어른들께 제 방식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서 미니멀리즘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제 생각과 뜻을 전해야 할지 괜한 신경을 쓰게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선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미니멀리즘 실천 소식을 알리고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전했습니다.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매번 생일이나 기념일 등을 챙기는 것은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부 피곤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신기해 하면서도 반갑게 여겨 줍니다. 좀 더 미니멀리즘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친구들은 음식이나 편지, 그림, 무형의 컨텐츠 이용권(E-book이나 제가 즐기는 게임에서 사용 가능한 아이템) 등의 형태로 선물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를 생각하는 마음 덕분에 오히려 제가 미니멀리즘에 대해 한 수 배우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다.


자주 만날 수 없는 지인들에게는 SNS를 통해 조금씩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의외로 관심을 가지고 호응하거나 응원해주는 일들이 많았고, 자신이 가진 경험담이나 지식을 나눠주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비난이나 놀림을 받을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그렇지 않았던 데다가 생각하지 못했던 응원을 들으니 무척 힘이 났습니다.


저와 특별히 친밀한 사이도 아니고 미니멀리즘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았지만 사소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 유리 저장용기를 내밀며 "어짜피 여기에 옮겨 담을거니 여기에 넣어 주세요"라고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의아해 하시지만 몇 번 지나면 자연스럽게 일회용기 대신 제가 준비해간 용기에 고기를 넣어 주십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봉투는 안 주셔도 되요"라고 이야기 하면 처음에는 정말 필요없겠냐고 묻지만 이 역시 몇 번 지나 익숙해지면 오히려 봉투는 안 드려도 되죠?라고 먼저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평범하지 않은 부탁을 한다는 것이 꺼려지고 용기도 필요했지만 한 두번 하고나니 적응이 되기도 하고 그에 호응해주는 분들이 계시기도 해서 지금은 어렵지 않게 저에게 필요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고 함께 무언가를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 들뜨고 즐거운 기분이 됩니다.




제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을 쓴 저자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인터넷 너머의 누군가, 또 평생 자식들을 키우며 천기저귀와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손때 묻은 빈티지 살림살이가 얼마나 멋진지 보여주신 친정 엄마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미니멀리즘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미니멀리즘 자체를 모르며 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모습은 역시 제 주변의 다른 지인들과, 인터넷 너머의 누군가에게 또 다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가끔 제가 쓴 글을 보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용기나 희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합니다.


밥을 먹거나 취미생활같은 사소한 활동도 함께 하면 더욱 즐겁듯이, 생활습관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함께 실천한다는 것은 소속감을 가지게 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하는 끈기며 열정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해도 괜찮을까, 나의 다름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만 막상 함께 하는 즐거움을 배우고나니 전보다 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2017년에는 미루지 않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우선 가까운 지인들과 미니멀리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서랍에서 오래된 추억거리를 꺼내어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게 정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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