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수를 나는 새 Jul 15. 2016

갈 수 없는 병문안

이제는 볼 수 없는, 젊은 두 사람을 추억하며

그날 새벽 꿈 속에, 나는 가만히 어느 병실 문을 열고 있었다. 벌어진 문 틈으로 캄캄한 어둠이 새어나오고, 나는 누군가의 병문안을 간 것인 듯 한데

병실 안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병문안 가는 꿈을 꾸면 실제로 병문안을 가게 된다는데. 대체 해몽이 무엇일까 하니, '너무 늦어 이루어질 수조차 없는' 병문안인가.


옛날에 갔었어야 할 병문안을, 이제야 꿈 속에서 가보았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건 각각 7년 전, 4년 전이다.

사건의 시점은 대과거인데, 나는 과거도 아닌 현재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7년의 시간 안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치유와 망각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건너뛰어 망각의 단계에 이른 자에게는 슬픔과 분노, 치유 따위가 온통 갈 곳을 잃는다. 그저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아 어리둥절한 채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 것만이 이런 사람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그들은 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 둘 다 집안이 무척 어려웠고, 방황도 있었고, 입시도 실패했다.

또한 그 방황과 실패 만큼이나 많이 자란 사람들이기도 했다. 살면서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그것이 타인과 인생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선하고 배려심이 많았다.


그 때는 아마 여자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 후 어느 교회의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때였을 것이다. 남자 아이는 군대를 제대한 후 전문대 미대에서 H대 미대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여자 아이는 바르고 성실하고 신앙이 깊은, 하얗고 동글동글한 아이였다. 다들 그 아이를 좋아했고, 집안이 어렵고 대학진학을 못한 이 친구가 직장을 잘 유지할 수 있게 돕고 싶어했다.


남자 아이는 미소년적인 첫인상과는 달리 무척 진중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내면적인 깊이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씩 마음 속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어 놓거나 꺼내어 듣고는, 무거운 위로를 주고받기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내가 무척 아팠던 어느 날,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돌봐주기도 했다. 나는 그들과 관계된, 내 인생의 인상 깊었던 몇몇 장면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Aquatic Park, San Francisco, USA


그런데 세상 일이란게 참 징그럽다. 살다보니 물리적 시간과 공간 상에서 그들은 점점 멀어지게 되고,

어느날부터인가 계속 바뀌는 휴대전화의 주소록 안에 더 이상 남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 그 둘이 예쁘게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로 헤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이야기를 전해전해 듣다, 나는 그들의 죽음까지 전해듣는다.


여자 아이는 위암에 걸려 4년간 투병하다 죽은 것이라 한다. 남자 아이는 2012년 어느 날,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한달만에 죽은 것이라 한다. 시간을 대충 계산해보니, 여자아이가 위암투병을 시작한 즈음 그 둘이 헤어지고, 여자아이가 죽고 난 3년 후 남자아이도 세상을 뜬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얄궂은 운명일까.


그들의 이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은 왜그리 조용했는지. 아는 사람에게 다 퍼뜨려 병문안이라도 오게 해주지. 마지막에 얼굴이라도 보게 해주지.


잠이 오지 않아, 아니 잘 수 없어,

벌떡 일어나 끄적인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나선,

슬픔도 뒷북이다.


세상과 세월에 휩쓸렸다는 변명이나,

자책 또한 뒷북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등 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