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넌 내 삼색 고양이
그러고 보니 삼색이는 여러 번 내게 존재감을 어필했었다.
퇴근 길고양이 세 마리가 길막을 해서 차를 세워 "위험해, 저리 비켜!"라고 소리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주차를 한 적 이 있다. 녀석들이 길을 막은 게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과거의 추억인가 그 사진 속에 딱 삼색이가 있어서 생각보다 우리가 오랜 사이임을 새삼 깨달았다. 당시 가진 게 흰 우유밖에 없어서 아쉬운 대로 우유 한 팩 뜯어 목이라도 축이라고 두고 오고는 밤새 고양이에게 사람 주는 음식 주면 안 좋다는데, 고양이 유당불내증이라 사람 먹는 우유 주면 설사한다는데 설사하면 어떡하나 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고는 애써 외면하고 사는데 배가 부른 삼색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배고플 텐데... 임신까지 했네 이를 어쩌나... 밤중에 싱크대를 뒤져 참치캔을 꺼냈다. 이것도 사람 먹는 거라 염분이랑 안 좋을 텐데 걱정하며 물을 끓여 씻고 일회용 그릇도 하나 챙겨 마련한 장소에 뒀다. 다음 날 아침 말끔히 비워진 걸 보고 안도와 동시에 사람들이 먹는 음식 고양이 건강에 안 좋을 텐데 하며 큰 결심 하듯 동네 마트로 향했다. 읍단위의 시골이라 동물병원도 하나밖에 없고 마트에도 사료가 한정적이다. 세 종류 정도 있는데 개중에 좋아 보이는 걸(제일 비쌌던 거)로 사서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커피전문점 종이컵으로 한 컵 씩 매일 밤 밥을 줬다.
애써 외면한 이유는 나 외에 가족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게 이유였다. 안 좋아한다는 것 이상 싫어하는 내색을 하시는데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뭔가 나의 주장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좋아하잖아요 길 위의 생활이 위태롭잖아요 불쌍하잖아요는 나의 생각이지 농사 지으시는데 시래기 말리는데 밟고 다니고 고추 말리는 데 밟고 다니고 털이 날린다 농작물 심어 놓은데 땅을 파서 똥을 싼다 창고에 나무를 긁어놓는다 창고에 농약이 있어 고양이한테도 위험하다
이래서 나는 몰래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두근거리며 쫄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내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길냥이 사료로 가성비 끝판왕이라는 캐*랑을 5kg짜리 4포 인터넷에서 샀다. 동네 마트보다 가격도 양도 아 터무니 없다. 앞서 가족들이 길냥이 아니 동물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직장으로 주문했다. 웬걸 부피가 장난이 아니다. 차에 넣고 다녀야지 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니 사료 냄새에 현기증이 났다. 비위가 약해서 헛구역질도 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부모님 창고 캐비닛을 몇 개를 열어봤는데 숨길 만한 곳이 없다. 아 이 공간에 한 평 나만의 공간이 없구나 하는 탄식과 함께 에라 모르겠다 하며 한편에 쟁였다. 들킬 걸 알고 저지른 일이다. "누가 고양이 사료를 갔다 놓았더라" "누구긴 누구겠어요?" 하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저것만 주고 더는 주지 마라"
이렇게 계속 눈치를 보며 스스로에게도 얼마까지 쓸 것인가 아프면 병원은 어쩔 거냐 하며 의문을 갖고 스스로를 옥죄면서도 팍팍한 길 생활 밥이나 배불리 먹이자라는 선을 정하고는 그래도 아주 가성비라기보다 영양성분도 비교적 괜찮다는 사료를, 임신묘니까 마더 앤 베이비 그런 것도 사고 고양이 카페에 들락날락하며 나름 연구를 해서 양에 치중한 사료 질에 치중한 사료 섞어서 밥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호소에 들어간다는 사료도 구해서 사고 간간히 별식으로 주던 참치 파우치도 쟁여서 줬다.
삼색이는 내 차만 보면 밥차 왔다 라고 생각하는지 어디선가 나타났고, 밥 주러 가면 야옹 애옹 거리며 밥 달라는 시늉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코로나 19 이전부터 나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실천해오며 다가서면 한 발 물러나는 그러면서도 내가 보이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나는 삼색이가 안 보이면 몹시 걱정이 되었고, 가격대가 있는 주식캔을 사기도 했는데 삼색이가 입도 안 대면 망했구나 하며 좌절했다. 그래서 결국 다시 파우치로 돌아왔다.
명절이나 무슨 날이면 부모님 몰래 닭가슴살과 닭안심을 삶아 먹기 좋게 잘게 찢여 대령했고 그랬는데도 녀석 길 생활이 녹록지 않은지 구내염에 걸려 침을 질질 흘리고 다녀서 밥만 잘 먹여야지 했던 생각에서 그래도 아프진 않게 해야지로 바뀌었고 사료값보다 비싼 드는 영양제를 사버렸다. 허피스인가 걱정했는데 영양제랑 이것저것 잘 먹였더니 어느 날 햇살 아래 털이 보송해져 있어서 나름 뿌듯하기도 했는데 또 배가 불러오는 것이다. "가시나야 쫌! "소리가 나왔지만 임신묘 영양, 산실, 겨울집 검색하며 몰래몰래 만들고 있는 나를 이내 발견하게 되었다.
삼색이 이 마약 같은 가시내 이러면서 지금의 밥셔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삼색이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삼색이가 안 보이면 불안해진다. 삼색이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으면 안심이 되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넌 내 삼색 고양이. 등 따시고 배부르고(그 배 말고 밥 배) 평온했으면 좋겠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