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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Jul 04. 2024

여기부터는 가본 적이 없는데

첫 번째 퇴사를 앞두고서


지난 11월, 본격적인 대학원 지원을 시작하기 직전에 올린 '설득하는 글'에서 나는 유학을 가겠다며 당당하게 외쳤으나, 현실세계의 나는 유학의 '유'자도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마냥 살았다. 당찬 다짐 한편에는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나에 대한 의심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과 중에는 정신없이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고서는, 퇴근 후에는 터덜터덜 도서관을 찾아서 밤늦게까지 영어시험을 준비하고 지원서를 제출하는 이중적인 삶을 한동안 살아야 했다. 특히 한 해의 업무를 마무리해야 했던 12월 말의 나의 생활이 어땠는지는 솔직히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서두가 길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8월 말 미국으로 떠난다.


유학이 결정되었던 4월 중순부터 동료와 친구들에게 하나둘씩 소식을 전하고, 걱정과 응원 어린 축하를 받으며 지내다 보니 벌써 7월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6년을 몸 담았던 회사에서의 퇴사를 50일가량 앞두고 있다. 대단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으나, 직장에서의 6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힘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동료분은 드릴 말씀이 있다고 찾아갔더니, 청첩장을 주러 오는 줄로 알았다며 또 다른 의미로 놀라셨다.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마땅한 나이 32살, 뜬금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혈혈단신 해외로 떠난다니!


2014년 2월, 짐가방 두 개를 들고 베트남으로 떠났을 때 비행기에 오른 나의 유일한 고민은 커서 무엇이 될까 하는 터무니없는 낭만뿐이었다. 사치스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행여나 베트남 생활에 싫증이 나거나 적응에 실패하더라도 그 날로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언제든 복학할 수 있는 안락한 학교가 있었고, 이러나저러나 가진 게 없다는 건 똑같았다. 10년이 지난 32살의 나는 또다시 짐가방 두 개를 들고 미국으로 떠난다. 그때와 다른 건 갚아야 할 현실의 대출도 있으며, 실패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치고 간다.



그래서 문득 무섭다. 사실 여기부터는 가본 적이 없다.   
















추천서를 써주신 교수님 한 분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졸업한 지 5년이 훌쩍 지난 학생이 급작스럽게 연락해 추천서를 부탁했음에도 흔쾌히 수락해 주셨던 교수님은 환하게 맞이하며 축하해 주셨고, 유학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솔직한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연락을 받고 솔직히 놀랐어.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기간은 졸업하고 최대 2년이라고 보거든."


공부라는 건 관성이 있어서, 가만히 멈춰있던 사람은 계속 공부해 왔던 사람들을 따라가기 벅차다. 체력은 하루하루 비루해지며, 공부 머리도 쓰지 않으면 어느 순간 굳어버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졸업 후 안락한 일상에 젖어들기 시작하면 굳이 이 생활을 버리고 다른 삶에 도전하려는 마음을 먹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나의 지지자,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도 귀여운 월급에 감사해하며 즐겁지만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테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가본 적 없는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여전히 두렵다. 그래도 용기를 한 번 내본 김에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확인해 보고 올 작정이다. 생각해 보니 실패하더라도 돌아올 곳이 마냥 없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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