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2개월 : 맘카페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새삼 월급의 소중함이 실감 난다. 내가 지출해야 할 곳은 오히려 늘었는데 나의 월급은 반토막도 더 나 버렸다. 연초에는 아직 성과급이 책정되기 전이라서 월급이 겨우 80만 원 남짓 들어왔었는데, 남편은 이걸 보고 주급이냐고 비웃기도 했다. 나라에서 아기 몫으로 주는 부모급여가 월 80만 원인데 내가 벌어온 돈이 우리 아기만큼도 안 된 것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주판을 튕겨 봐도 나를 위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부모급여만으로 아가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데 그렇다고 아가를 위한 소비를 아끼고 싶지는 않다. 설상가상 이런저런 대출 금리도 올라서 원리금 갚는 걸로도 줄어든 내 월급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결국은 아가를 낳기 전 나를 위해 쓰던 돈에서 지출 규모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아기를 낳고 어느새인가부터 유명한 맘카페의 핫딜 정보방을 들락거리게 된다. 좋아하는 생필품을 살 때에도 이게 최선인가 싶어서 꼭 맘카페 할인 정보를 먼저 검색해 보고 이런저런 쇼핑몰을 들락 거리게 된다. 카드 청구할인과 적립금은 꼬박꼬박 챙겨야 안심이 된다. 어쩌다 핫딜을 놓쳐버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제 가격에 사기가 아까워 소비를 미루기까지 한다. 꽤나 궁상맞은 삶이지만 줄어든 수입에서는 이렇게라도 최대한 아껴가며 사는 수밖에 없다 싶다.
사실 핫딜을 통해 아끼는 돈은 굉장한 푼 돈이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건지 눈에 불을 켜고 싸게 사려고 해도 평소 구매하는 가격에 비해 10% 남짓 싼 가격으로만 나와도 핫딜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올라오기도 한다. 어쩔 때에는 핫딜이래 봤자 고작 몇 천 원 차이밖에 안 나기도 한다. 카드할인, 적립금 등 이것저것을 거추장스럽게 달고 몇 십원 단위까지 최대한 체감가를 떨어트린 가격표를 달고 올라온 글들을 보면 가끔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더 값비싸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주부가 되고 보니 그 몇 천 원 차이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추가적으로 수입을 벌어올 곳은 없는 상황에서 가정 경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출을 줄이는 것뿐인데 핫딜만큼 명시적으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팍팍한 가계부 사이에서 그나마 핫딜이라도 알뜰살뜰 챙겨야 조금의 숨통이라도 생긴다. 머리로는 이 시간과 노력을 재테크 공부에 투자하는 게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장 내 가계부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방법은 핫딜 소비를 하는 게 거의 유일하다.
주부들의 마음은 다 비슷한 것인지 핫딜방은 언제나 수많은 글들로 핫하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내는 건지 가격이 잠시 내려가기만 해도 바로 핫딜방에서 공유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핫딜 방에는 주부들만의 의리가 있다. 본인만 잘 사고 흡족히 끝내도 될 일인데 굳이 번거롭게 핫딜방에 글을 올려주고 친절하게 댓글마다 상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공유해 준다. 사실 나도 아직 허접한 수준이라 핫딜을 공유해 준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되면 나도 좋은 할인 정보를 공유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다. 아마 푼돈을 아끼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주부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을 서로 위로해주고 싶은 건 아닐까.
이제 몇 달 있으면 유급휴직 기간도 끝나서 그나마 들어오던 백만 원 남짓한 월급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매달 카드값과 대출이자를 채워놓기 바쁜 나는 벌써부터 월급의 공백이 두렵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 나라가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그럭저럭 살만했던 맞벌이 가정은 외벌이의 빠듯함을 경험하게 된다. 나도 몇 달 있으면 생계를 위해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고 돈을 벌러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엄마가 되니 비로소 주부가 되고, 주부가 되니 비로소 가계 살림에 눈을 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