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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Nov 16. 2023

엄마는 파티 플래너가 체질인가 봐

생후 13개월 : 돌잔치 덕분에 일 년이 행복했다

아기 엄마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기념일과 같다. 30일, 50일, 100일처럼 특별해 보이는 날은 물론이거니와 개월 수가 차 오를 때마다 훌쩍훌쩍 지나가는 아기 시절을 기록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중에서도 아기의 돌은 모처럼 성대한 파티가 합리화되는 기념일 중의 기념일이다.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는 본인의 옷매무새가 헝클어진 것도 모른 채 아기를 누구 못지않게 예쁘게 공주처럼 꾸며 포토존에 앉혀 놓으면 그저 흐뭇하다. 그런 엄마들에게 돌잔치는 엄마도 잔뜩 치장하고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날이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육아에 힘들어지는 순간이면 돌잔치 날 무슨 옷을 입을까, 어떤 헤어스타일을 할까 상상하며 버텼다. 사실 나는 결혼식을 준비할 때도 모든 게 즐겁기만 했다. 그때부터 사실 파티 플래너가 체질이었던 걸까. 이번에도 그날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모든 과정이 설렜다. 어쩌면 어느 정도의 사치스러운 소비가 정당화되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코로나 시절의 여파인지 돌잔치를 크게 하는 주변 지인들을 본 적이 없어서 돌잔치는 별 고민 없이 직계 가족들끼리 조그맣게 하기로 했다. 스몰 웨딩의 로망이 대신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작은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빌려서 평소 눈여겨보았던 꽃집에 그린과 화이트 계열로 장식을 부탁했다. 이렇게 야외 웨딩의 로망도 은근히 끼워 넣었다.


아기의 드레스를 고르는 과정은 마치 결혼식 드레스를 고르는 과정과 같았다. 아기 드레스 샵을 정해 피팅을 하러 갔고, 드레스를 갈아입은 아기가 내 앞에 설 때마다 감탄을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우리 아기가 나중에 웨딩드레스를 입을 날이 상상되면서 조금 울컥하기도 할 정도로 나는 돌잔치에 진심이었다. 엄마의 의상은 아기와 이질감이 들지는 않을 정도로 갖춰 입되, 그날의 주인공인 아기를 가릴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깔끔한 흰색 원피스를 준비했고, 아빠는 큰 고민 없이 가지고 있는 정장을 입기로 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성장 동영상이었다. 그날의 참석자가 모두 우리 아기를 아끼는 가족들이니만큼 아기의 일 년을 차분히 같이 되돌아보고 싶었다. 사실 아기의 주양육자는 엄마와 아빠이지만 조부모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행복한 육아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감사의 말씀도 전하고 싶었다. 시중에서는 마음에 드는 업체를 찾을 수 없어서 처음으로 직접 어플로 동영상을 만들었다. 이 과정이 무려 세 달이 걸렸는데, 아기를 재우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핸드폰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드니 오히려 그 시간이 취미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설레가며 준비한 돌잔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우리에게 아기는 정말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는데, 아기를 임신한 걸 안 순간부터 돌잔치하는 그날까지 아기는 우리를 매 순간 행복으로 채워 주었다. 나는 너무 행복하면 이 행복이 깨어질까 불안해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은 그런 불안이 끼어들지도 못할 정도로 행복했었나 보다. 낯선 환경에서도 동그란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던 예쁜 아기. 잔치가 끝난 후 나에게 폭 안기며 안정감을 찾던 아기. 결혼하던 그날처럼 멋지고 예쁘던 남편과 나. 그렇게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페이지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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