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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Jul 18. 2023

미안해, 집밥이 아니라서

생후 10개월 : 너무 어려운 이유식의 세계

이유식을 시작한 6개월부터 지금까지 이유식은 항상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다.


나는 시어머니가 오셨을 때도 식사를 차려드리지 못할 정도로 요리에 젬병이다. 타고난 미각이 무딘 것도 있는 것 같고, 30여 년간 요리와 담쌓고 지내다 보니 재미도 없고 효율도 떨어진다. 다행히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서 그럭저럭 잘 먹고살고 있었는데, 육아를 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이유식 요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은 쌀과 물을 끓이는 정도라서 수월하게 시작했다. 그마저도 야채 손질할 자신은 없어서 야채 큐브는 사서 만들었다. '이유식 생각보다 쉬운데?'라고 자만할 무렵, 아가에게 입맛이라는 것이 생겼다. 아가는 이제 정말 요리다운 요리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전처럼 밥과 고기, 야채를 함께 끓이기만한 죽은 뱉어내기 일쑤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루 3끼까지 이유식 끼니가 늘어나면서 나는 하루 3번이나 아이와 식사시간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아기에게 본인 힘으로 먹겠다는 고집도 생겨서 핑거푸드를 만들어주다 보니 하루종일 준비하고, 먹이고, 씻기고, 흘린 음식들을 치우고를 반복했다.


하필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시기와 이유식 끼니가 늘어나는 시기, 그리고 엄마 껌딱지가 되는 시기가 겹쳐서 8개월 무렵부터 나는 육아 권태기를 호소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은 이유식이었다. 수많은 이유식 책을 보며 정성껏 만든 이유식을 예쁘게 담아 아기새처럼 먹여주는 로망을 품었지만, 각자의 주방 사정과 아이의 성격과 입맛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 집만의 이유식 식단표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요리에 소질 없는 나에게는 최고난도 육아 미션이었다.


각종 SNS에는 매 끼니 5구 식판을 요리다운 요리로 가득 채운 정성스러운 이유식 사진들이 가득했다. 3끼뿐만 아니라 각종 머핀과 과자로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주는 엄마들이 많아 보였다. 그에 비하면 서툴게 끓인 죽과 무조건 계란물을 묻혀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주는 내 이유식은 너무 초라했다. 그럴수록 더욱 아등바등 이유식 연구에 매진했지만 들이는 노력에 비해 결과물은 언제나 초라했다. 힘들게 모유수유를 고집하던 반 년 전의 내 모습을 다시 보는 듯했다.


유명한 소아과 선생님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이유식만 한 게 없다고 강조하셨지만, 매일 비슷한 재료에 그마저도 뱉어내는 아가를 보면서 굳이 엄마표 이유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유식에 집착한 시간 동안 내가 아가와 보내는 놀이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아가와 노는 시간에도 다음 끼니는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어떤 재료들을 준비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판 이유식으로 과감히 돌아섰다.


시판 이유식도 쉬운 길은 아니다. 수많은 업체들이 서로 다른 이유식을 내세우고 있고, 우리 아가에게 최선의 이유식을 찾는 여정만 해도 한 달은 꼬박 소요되었다. 결국 나는 소고기 비중이 높고, 우리 아가가 좋아하는 무른 질감, 집에서 먹이기 어려운 재료를 사용하는지를 기준으로 원하는 이유식을 선택했다. 또 하나 중요한 고려요소는 배송방식이었다. 스티로폼은 분리수거가 힘들었고, 보냉팩보다는 생수를 얼려 보내주는 곳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시판 이유식을 먹인 뒤로는 더 이상 식사 시간이 스트레스가 아니다. 간편하게 뜯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이는 순간 미안한 감정이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날 아가가 새로 먹게 된 재료를 재잘재잘 설명해 주면서 미안함을 덜어낸다. 가끔은 후식으로 내가 먹을 과일과 삶은 계란을 나누어 먹으며 식사시간을 우리 둘만의 즐거운 데이트 시간으로 쌓아간다. 식사시간이 끝나면 그만큼 으쌰으쌰 넘치는 에너지로 아기를 열정적으로 안아주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놀아준다. 아무래도 우리 집에는 이게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인 것 같다.


이제 곧 돌이 지나면 유아식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육아는 익숙해질라치면 새로운 과제가 던져지는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모유수유부터 이유식까지 아기의 식생활에 유난히 어려움을 겪었던 나는 어쩌면 유아식도 시판 배달업체를 이용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 아가에게 보글보글 따듯한 순두부찌개를 끓여줄 수 있는 엄마는 되기 위해 가끔은 엄마표 이유식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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