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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Jul 18. 2023

적당히 따라가는 책육아

생후 10개월 : 지식이 아니라 추억이 쌓였으면 좋겠다

임신 시절부터 육아 커뮤니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책육아를 나도 하고 있다. 시작은 한 육아선배가 알려준 고가의 영유아 전집이었다. 글도 모르는 아기에게 이렇게 비싼 책을 사주는 게 맞는 건가라는 고민을 시작으로 책육아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책육아 커뮤니티에 눈을 떴다. 그렇게 뒤집지도 못하는 아기 때부터 어느새 10개월째 책육아 중이다.


책육아의 세계는 상상 이상이다. 영유아기의 잠재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은 더 좋은 자극을 주고 싶은 엄마들의 열정을 부추겨서 어마어마한 커리큘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영아 다중지능 개발을 위한 전집은 필수로 여겨졌다. 창작, 한글과 수과학, 자연관찰, 인지책뿐만 아니라 요새는 명화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전집을 들여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나는 분야별로 베스트셀러처럼 여겨지는 책들을 한 질씩 갖춰놓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 교육에 대한 열정은 물론 영어에도 빠질 수 없다. 다들 읽어주는 것처럼 보이는 영유아 영어 전집도 샀고, 영어 전래동화인 마더구스도 챙겨야 한대서 내 눈에 예쁜 그림체로 들여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책에 대한 후기를 볼 때마다 구매욕구가 끓어올랐다. 성인이 되고 나서 사실 책과 많이 멀어졌었는데, 한동안 나는 매일같이 아기 책쇼핑을 했다. 불안한 마음에 돈을 내고 책육아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커뮤니티를 보면 그 정도의 열정은 다들 쏟아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실을 아기 책장으로 가득 채운 후에야 비로소 내가 구매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다중지능 전집은 사실 내가 한글, 수과학, 명화 등 분야별로 구매한 전집들의 입문서 같은 느낌이었다. 촉감, 색깔, 모양에 대한 책은 거의 모든 전집마다 비슷하게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가는 취향이 확고해서 실사에 가까운 그림체, 사람이 주인공인 책, 플랩북 조작이 가능한 책만 주야장천 꺼냈다. 언젠가는 다른 책들로 확장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직 선택받지 못한 채 꽂혀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제야 책 사들이기를 잠시 멈추었다. 뒤돌아보니 마치 아귀에 들린 것마냥 책에 대한 욕망에 휩싸여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을 떨며 책육아를 일찍부터 시작하기를 너무 잘했다. 처음에는 언어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부지런히 읽어주었지만, 점차 아가와 할 일이 없을 때 시간을 보내는 용도로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특별히 대단한 엄마표 놀이를 해주지 않더라도 간단히 책 읽어주는 행동만으로도 육아 시간이 죄책감 없이 뿌듯하게 채워진다. 무엇보다 아가의 관심을 끌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가의 취향과 성격을 파악하는 데 온 감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아가의 취향을 저격해서 책으로 아가를 깔깔 웃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하루의 육아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간다.


어느새 아가에게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책들이 생겼다. 손아귀 힘이 생긴 요즘은 아가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쥐어주면 혼자서도 한참을 본다. 책을 뒤적이다가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고, 뒤에서부터 다시 앞으로 넘기기도 하고 때로는 던지거나 플랩을 찢어버리기도 한다. 읽는 건 둘째치고 어쨌든 책이 가장 좋은 놀잇감이 되었으면 싶었는데 벌써 책을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마냥 감사하다.


책육아에 빠지니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부의 삶의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우리의 최애 신접살림이었던 75인치 티브이는 당근행이 되었고, 그 자리를 3m 길이에 달하는 전면책장이 채웠다. 티브이 보면서 밥을 먹던 우리의 저녁 시간은 티브이 대신 하루 일과를 재잘대는 시간이 되었고, 아기에게 보여주기 식이라도 항상 책을 곁에 두게 된다.


사실 책육아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이다. 우리 아기가 앞으로도 평생에 걸쳐 책과 친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오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 아기는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질문을 품고, 사고를 깊이 있게 확장할 줄 아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욕심이 많은 엄마인 나는 본인도 하지 못했던 이상을 감히 어린 아기에게 기대하게 된다. 아가를 통해 나도 책과 다시 한 번 친해져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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