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향
밤에만 향기를 내뿜는 꽃이 있다.
한문으로
밤夜야, 올来래, 향기香향,
밤이 되어야 향기가 찾아온다는 꽃이다.
물론 낮에도 밤과 똑같이 꽃은 피어있지만
거짓말처럼 향이 아주 미약하다.
향기는 주로 해 질 녘부터 새벽 사이에 본격적으로 진동을 한다.
왜 이 꽃은 밤에만 향이 날까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지금은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아주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양반댁 청상과부가 어둠을 틈타 이웃마을 같은 처지의 남정네를 만나 밤새 사랑을 나누곤 했었다. 새벽녘이 되면 황급히 돌아오느라 치맛자락이 이슬에 다 젖곤 했는데 그 모습을 어느 눈치 빠른 동네 여인에게 들켜서 곤욕을 치르던 내용의 영화…
"장미희'라는 여배우가 주연으로 나왔던. . .
연한 연둣빛 꽃은 아주 작아 존재감이 별로 없다.
나무의 크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나겠지만
수백만 송이가 가지가 휘도록 피어난다. 밤이되면 향기가 뭉텅뭉텅,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꽃은 한여름에 개화를 하는데 날씨가 아무리 무더워도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는 야래향 향기를 맡으러 온실을 찾는다. 더위를 이길 만큼 꽃향기는 매력적이다.
야래향을 찾는 건 우리 말고 또 있다.
수많은 숫자의 야행성 나방들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몰려든다. 어느 게 꽃이고 어느 게 나방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용하게 꽃을 찾아 꿀을 빠는 나방들
어느 날 아침 온실에 나가보니
수명 다한 야래향꽃 한 송이가 거미줄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뇌리 속에 번쩍 찾아온 詩魔시마를 핸드폰 앵글에 가두었다가 글로 옮겨 보았다.
야래향夜来香/이수미
어둠을 히잡처럼 둘러쓰고
그녀가 찾아왔다
밤을 한 자락 끌어다 알몸을 가리며
날 저물기를 학수고대했노라고
그녀가 풀어놓는 속 내가 진동을 한다
문 꽁꽁 걸어 잠가도
밖으로 새어 나오는 살 내음들
새벽닭이 울고
희뿌연 먼동이 다가오는 소리에
그만 돌아가야 한다고
여인은 풀어헤쳤던 앞섶을 여미는데
가지 마 가지 마
한생 전 여기서 같이 살자
끈질기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거미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