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방, 무너진 아이

디테일 하나가 장면을 만든다

by 강펜치

수년 전 사회부 경찰팀 기자로 일할 때였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사고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때 내가 소속된 매체가 석간신문이었던 탓에 새벽부터 경찰서로 출근해 사건사고를 챙겨야만 했다. 이어 경찰청에 있는 캡(경찰팀장)에게 보고하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어떨 때는 취재가 미흡한 탓에 제대로 보고하지 못해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선명하다.


캡도 캡 나름대로 애환이 있다. 캡은 모든 팀원 기자들의 사건사고를 취합해 사회부장에게 보고한다. 때로는 경찰팀 기자들과 데스크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샌드위치 신세 때문인지 캡이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했을 것이다.


당시 캡이었던 선배는 ‘까라면 까라’는 경찰팀의 유구한 전통(?) 속에서도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애썼다. 어느 날 밤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본인이 과거에 모셨던 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그 캡을 두고 몇몇 일화를 들려주며 “악당도 이런 악당이 없었다”며 혀를 찼다. 물론 이 선배가 악당으로 운운한 캡은 이미 퇴사한 지 오래됐기에 이렇게 거침없이 말했으리라.


하루는 아침에 경찰서에 도착해 보니 살인사건 피의자 검거 보고서가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캡 보고 드립니다. 살인 사건이고요, 피해자는 이런 이런 사람이고, 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합니다.”

“칼에 찔렸다고? 몇 방 찔렸는데?”

“아… 그건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에 곤히 자고 있을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고. 그리고 선배는 다시 캡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가 칼에 몇 차례 찔렸다고 다시 보고했다. 그러자 캡은 다시 질문했다.


“범인이 피해자를 찌를 때 왼손으로 찔렀나? 오른손으로 찔렀나?”

그 선배는 그날 새벽 캡에게 시달렸던 기억을 곱씹듯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고 토로했다. 물론 구체적으로 취재하는 것은 좋다. 그 과정에서 새 팩트가 드러나면 기사를 키울 수 있다. 그런데 길어봤자 원고지 3~4매로 쓰고 치울 기사를 위해 칼을 어느 손으로 들었냐는 지엽적인 팩트가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당시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캡은, 스토리텔링 기사를 염두에 두고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뉴스룸의 스토리텔링 선구자를, 필요 이상으로 까칠한 캡으로만 기억해 온 셈이다. 범인이 흉기를 어느 손에 들었는지는 단순한 디테일을 넘어선다. 사건의 장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기사에서 핵심은 장면이다. 독자가 그 순간을 눈앞에서 보듯 떠올리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물론 르포 기사에서도 생생한 묘사는 중요하다. 그러나 스토리텔링 기사에서는 장면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독자를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내가 미국에서 만났던 한 기자를 떠올리게 했다. 수년간 총기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추적해 온 <워싱턴포스트>의 존 우드로 콕스 기자였다. 그는 역시, 이 점에서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내가 콕스를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24년 3월 22일부터 보스턴대학교에서 열린 ‘파워오브내러티브 콘퍼런스(The Power of Narrative Conference)’에서였다. 이 행사는 뛰어난 스토리텔링 기사를 소개하고, 취재 노하우와 경험을 나누는 미국 언론인들의 교류의 장이었다.


콕스는 23일 아침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랐다.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에 흰 셔츠와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은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인상을 줬다. 그날 아침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청중들에게 “제가 좋은 날씨를 몰고 왔네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콕스의 강연을 두 가지 표현으로 압축한다면 “먼저 사람이 돼라(Be human first)”는 것과 “항상 현장에 가서 머물러라(Always go and stay)”라는 것이었다. 그는 플로리다에서 한 아이의 익사 사건을 취재하던 중, 사실 보도가 남길 상처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객관적인 기록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보도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항상 현장에 가서 머물러라는 그가 훌륭한 스토리텔링 기사를 작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전화나 단발성 인터뷰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취재 대상이 마음을 열고 삶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이런 대체불가능한 현장에서 이야기의 구체적인 장면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콕스는 ‘사건’을 넘어 ‘사람’을 끝까지 따라가는 기자다. 특히 총기 폭력이 아이들의 삶에 남기는 균열을 집요하게 기록했다. 이를 통해 숫자 뒤에 가려진 인간의 고통을 드러내는 스토리텔링 기사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그의 연재는 퓰리처상 피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미국 의회 난입 사태 보도로는 공공서비스 부문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했다.


콕스가 총기 폭력 피해 아동을 취재하게 된 출발점은 한 편집자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를 이 주제에 깊이 붙들어 맨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총격으로 숨진 아이들뿐 아니라, 살아남았지만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에 주목했다.


“아이들에 관한 기사를 보면, 우리는 너무 자주 어른들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눈으로, 그들이 실제로 겪은 경험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법적으로는 ‘피해자’로 분류되지 않지만, 그들의 삶 전체는 이미 그 사건에 의해 바뀌어 있습니다.”


나는 강연이 끝난 뒤 그를 찾아가 나를 소개하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처음 만난 나에게도 친절하게 응했다. 이후 리셉션에서 그의 책 <총탄 아래의 아이들·Children Under Fire>을 구매해 사인을 받았다.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질문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흔쾌히 이메일을 알려주었다.


책을 읽으며 생긴 질문들을 정리해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직접 답하기보다 자신이 쓴 기사와 다른 인터뷰 글들을 보내왔다. 답을 건네기보다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그의 방식의 내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품은 대부분의 의문들을 그가 보낸 자료 속에서 해소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장면 재구성에 대한 그의 노하우였다.




2024년 3월 열린 파워오브내러티브 콘퍼런스에서 케이틀린 이야기를 소개하는 <워싱턴포스트>의 존 우드로 콕스 기자.


콕스가 총기 사건 생존 아동을 집요하게 추적하게 된 문제의식은 한 편의 기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2년 10월 24일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된 그의 스토리텔링 기사 ‘미국 소녀(An Americna Girl)’ 그해 5월 텍사스주 유발디의 롭 초등학교 총기 사고 생존 여학생, 케이틀린 곤잘레스의 이야기다.


지역에 거주하던 18세 남성은 사건 당일 합법적으로 구매한 반자동 소총을 들고 학교에 침입했다. 그는 교실에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9~11세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숨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교 총격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 사고로 친구를 잃어버린 케이틀린은 이후 완전히 다른 소녀가 됐다. 케이틀린의 가슴속에는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되살아나 수시로 그녀를 찔렀다. 콕스는 낮의 인터뷰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이 트라우마의 실체를 포착하려 했다. 케이틀린은 밤마다 공포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고통은 외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이에 콕스는 구상한 방법은 기상천외했다. 가족의 동의를 받아 고프로 카메라를 아이의 방에 설치한 것이었다! 아이가 잠드는 순간부터 밤사이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콕스는 곤잘레스 가족의 주방에 앉아 조그만 모니터로 이 모든 것을 지켜봤다. 기자가 개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담긴 영상에는, 뒤척이며 불안에 반응하는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는 그들과 신뢰를 쌓지 않았다면 아예 불가능한 시도였다.


이 기사는 그날도 케이틀린에게 찾아온 공포의 밤을 다음과 같이 그려낸다.


케이틀린은 디즈니 플러스의 '좀비 3'를 틀고, 교실에서 수사관들이 찾아준 파란색 '스티치' 스퀴시멜로 인형을 꼭 안은 채 침대에 올라갔다. 엄마 글래디스가 거실에서 30분만 있다 오겠다고 하자 케이틀린은 말했다.
"괜찮아… 아마도."
하지만 엄마가 나가자마자 케이틀린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바비 드림하우스 앞 바닥에 태아처럼 몸을 웅크렸다. 30피트(약 9미터) 떨어진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무서워. 너무 어두워."
엄마가 방에 들어와 곧 같이 자러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케이틀린은 이미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다시 메시지가 왔다.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어!!!!"


겉으로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밤이었다. 영화를 틀고 인형을 안은 채 평범한 저녁을 보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순간 케이틀린의 불안은 곧바로 폭발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단 몇 분도 견디기 어렵고, 어둠은 공포로 이어진다.


결국 케이틀린은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무너졌다.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콕스는 이 장면을 통해 ‘사건 이후’를 구체적인 드러낸다. 총격은 끝났지만, 아이의 밤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나 설명이 아니라, 한 아이가 잠들지 못하는 순간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트라우마의 실체를 독자가 직접 목격하게 만든다.


콕스는 이 장면 취재에 대해 그 또한 심리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2023년 1월 27일에 하버드대학교 니먼재단의 ‘니먼 스토리보드(Nieman Storyboard)’에 게재된 글 ‘유발디의 씩씩한 어린이 생존자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다(Challenging the stereotype of Uvalde’s plucky child survivor)’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 아이를 보세요. 한계가 없는 아이입니다. 가능성은 정말 무한하죠. 그런데 지금은 이 상태로까지 무너져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혼자 잠들 수 없습니다. 단 15분도, 어두운 방에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일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그 공포에 대해 몸이 반응하는 방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겁니다.”


결국 스토리텔링 기사란, 더 많은 사실을 아는 일이 아니라 더 정확한 장면을 붙잡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날 캡이 던졌던 질문처럼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 하나가 장면을 만들고, 그 장면은 그대로 독자의 가슴팍에 꽂힌다. 마치 케이틀린이 스티치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서 무너져 내리던 그 밤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내는 것처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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