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현장을 되살리는 마법
스토리텔링 기사에서 장면의 치밀한 재구성은 독자를 현장으로 데려가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독자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을 통해 사건을 ‘경험’한다. 미국의 기자들은 이를 위해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취재 수첩에 담는다. 텍사스 유발디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 어린이를 취재한 <워싱턴포스트>의 존 우드로 콕스 기자 역시, 고프로 카메라까지 활용해 아이가 겪는 고통의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그는 사건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그 아이의 시간을 함께 견디도록 만들었다.
물론 콕스처럼 카메라까지 동원해 장면을 기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정도의 취재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취재원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 아마도 그가 ‘파워 오브 내러티브 콘퍼런스(The Power of Narrative Conference)’에서 강조한 “항상 현장에 가서 머물러라(Always go and stay)”라는 원칙을 실천했기에 가능했던 접근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이 이미 사라졌을 때는 어떻게 할까. 기자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가 그 순간을 다시 목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흘러가버린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방법은 있다. 가장 기본은 그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 증언을 확보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기억을 교차시키고 반복 확인하는 과정에서 장면의 윤곽은 점차 또렷해진다. 장면은 상상이 아니라, 취재로 만들어진다.
페르난다 산토스 전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녀의 책 <파이어라인> 도입부에서 화재 장면을 묘사하며 이를 몸소 실천했다. 이 책은 2013년 미국 애리조나주 프레스콧 인근 야넬힐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남긴 비극을 논픽션으로 풀어낸다. 화마는 산불을 진압하던 그라나이트 마운틴 핫샷 대원 1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산토스가 화재 현장에 처음 접근한 것은 6월에 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7월이었다. 숨진 소방관들이 발견된 장소는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은 이미 잿더미로 변한 상태였다. 그녀는 책에서 화재 발생 순간부터 산불 진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 고립된 그들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가 투입되는 장면까지 어떻게 그려냈을까. 마치 산불 현장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그날 아침 마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불은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끝없이 푸른 하늘 아래, 사프란빛 연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틀 전 번개로 시작된 불은, 발원지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핫샷 대원들은 불의 가장 느리게 번지는 가장자리, 즉 발원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불길이 덮쳐올 경우를 대비해 안전한 후퇴 지점도 표시해두었다. 그들의 첫 임무는 불길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선을 구축할 전략적 출발점을 찾는 것이었다.
그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예보관들이 두 차례 경고했던 대로, 강력한 뇌우가 북쪽에서 밀려왔다. 그것은 불길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 충돌은 동시에 두려우면서도 장관이었다. 바람은 시속 40마일, 곧이어 50마일까지 치솟으며, 북쪽으로 번지던 불길을 동쪽으로 꺾고 남쪽으로 밀어붙였다. 불길은 4분 만에 1마일, 15초 만에 100야드를 이동했다. 장비를 짊어진 소방관이 달릴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야넬의 집에서, 아드리아 셰인은 그 종말 같은 광경을 보고 숨을 삼켰다. 불길은 마을 서쪽을 휩쓸고, 남쪽 주택가로 밀려 들어왔다. 재가 태양을 가리며 낮을 어둠으로 바꿨다. 북쪽을 향해 서 있던 맥도너는, 목을 스치던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얼굴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불길이 더 이상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굴러오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무전을 통해 그는 대장 제시 스티드에게 불길이 가까이 접근했다고 알렸다. 맥도너는 물러나며 뒤를 돌아봤고, 자신이 방금 서 있던 곳을 불길이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라나이트 마운틴 핫샷 대원 19명은, 불타는 야생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파이어라인·The Fire Line> 프롤로그 일부 발췌
산토스를 비롯한 기자들은 한 달 전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그곳을 안내한 몇몇 소방관들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 산토스는 그들에게 최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특히 그들의 오감을 모두 동원하게끔 묻고 또 물으며 화재 장면을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고 나에게 털어놨다.
“저는 사람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했어요. ‘무엇을 보셨나요? 냄새는 어땠나요? 그곳이 어떻게 보였나요? 무엇을 떠올리게 했나요?’와 같은 질문이요. 단순히 사람들이 한 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섯 가지 감각으로 경험한 것을 포착하려고 했어요. 듣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생생한 묘사를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산토스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책을 쓰기 위해 배경지식까지 습득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저는 그 지역의 식생에 대해서도 공부했어요. 그곳의 식물들이 얼마나 빨리 불에 타는지를 조사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독자들에게 왜 불이 그렇게 빠르게 번졌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말이죠. 또, 책 작업을 위해 소방관 아카데미에서 훈련도 받았어요. 소방관들이 하는 모든 훈련을 경험했죠.”
산토스는 장면을 쓰기 위해 질문했고, 이해했고, 결국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에이미 골드스타인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제인스빌 이야기>는 2008년 12월 23일, GM 제인스빌 공장에서 마지막 차량 ‘타호’가 출고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이 한 대의 차량을 끝으로 수십 년간 지역을 지탱해온 생산 라인이 멈췄다. 이미 지나가버린 그 장면은 기사와 기록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즐처럼 다시 맞춰지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골드스타인 역시 이 결정적인 순간을 책의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 사라진 장면을 다시 불러내는 데 집중했다. 수많은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장을 독자의 눈앞에 다시 세워 보이려 한 것이다. 이 출고식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오전 7시 7분. 마지막 자동차 타호Tahoe가 조립라인 끝에 당토했다. 바 깥은 아직 어둡고 기온은 영하 9도, 12월 강설량으로는 기록적 수치에 가까운 84cm의 눈이 매서운 바람에 실려 주차장에 쌓였다. GM 제인스빌 자동차 생산 공장은 휘황한 불빛 아래 꽉 들어찬 사람 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제 곧 공장을 떠나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서야 할 노동자들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퇴직자들과 나란히 도열했다. 퇴직자들의 가슴은 충격과 향수로 저미는 듯하다. 지에머(GMer)들 모두 구불구불한 조립라인 위로 움직이는 타호를 뒤따른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얼싸안으며 눈물 흘린다. <제인스빌 이야기> 프롤로그 일부 발췌
이 장면의 탁월함은 하나의 순간으로 시대적 변화를 압축해 보여준다는 데 있다. “오전 7시 7분”, 영하 9도, 84cm의 눈 같은 구체적 수치는 현실을 단단히 고정한다. 어둠과 바람은 노동자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드러내고, 현직 노동자와 퇴직자를 한 줄에 세워 과거와 미래를 포갠다. “격려하고, 얼싸안고, 눈물 흘린다”는 행동은 감정을 직접 전달한다. 마지막 타호를 뒤따르는 장면은 공장의 ‘죽음’을 배웅하는 의식처럼 작동한다. 결국 하나의 장면만으로 구조조정과 노동자의 운명을 독자가 체험하게 만들고 있다.
골드스타인도 이 장면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다. 그녀가 제인스빌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1년 여름이었고, 마지막 차량의 출고는 이미 2년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당시 공장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하나씩 모았다. 지역 신문과 역사 보존소 자료를 뒤지며 사건의 맥락을 보강했고, 사람들의 페이스북 게시물까지 확인해 그날의 분위기와 감정을 교차 검증했다.
특히 같은 인물들을 반복해서 만나 “당신이 본 것을 다시 설명해 달라”고 거듭 묻는 방식으로 기억의 디테일을 다듬고 정확도를 높였다. 이 장면은 한 번의 취재가 아니라 수많은 증언과 자료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장면은 결국 축적된 취재의 결과물이다.
골드스타인은 인터뷰 말미에, 내가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조지아대 저널리즘스쿨의 잰 윈번 교수와의 대화 내용을 들려주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그럼 윈번 교수가 말한 요점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글을 쓰면 독자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예를 들어, 제 책의 첫 장면이 기억에 남는 이유처럼요?”
“네, 맞아요. 중요한 건 ‘구체적인 이미지(concrete image)’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중요한 건 구체적인 이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거예요. 그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방식이죠. 제 책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결국 모두 그런 이미지들이에요.”
그날 워싱턴 D.C.의 한 카페에서, 우리는 스토리텔링 글쓰기의 핵심에 대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독자는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는다. 장면을 기억한다. 독자의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장면, 그 촘촘한 이미지들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