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세상을 움직일 때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는 드라마로도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드라마를 접했던 시청자 중 한국인을 제외한다면 재일한국인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싶다. 그럼에도 이들이 드라마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깊은 공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작가는 독자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했다.
저는 농담처럼 말하곤 해요. 제 인생의 목표는 여러분 모두를 한국인으로 만드는 거라고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모두 한국인이 된다면,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쓰기는 소설에서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기자들이 공들여 취재해 쓴 스토리 기사는 공감을 통해 독자와 깊은 연결을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이 같은 방법으로 특정 사안을 더 입체적이고 깊이 이해하게 된다. 페르난다 산토스 전 <뉴욕타임스> 기자는 이러한 공감의 힘을 누구보다 굳게 믿은 언론인이었다.
내가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잰 윈번 교수와의 인연처럼 애리조나주립대(ASU)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에서 스토리텔링 연구를 하던 과정에서였다. 나는 2023년 8월부터 이 주제를 탐구할 수 있는 언론인들을 찾아 나섰다. 마침 그곳에는 <워싱턴포스트> 전 편집국장, 레너드 다우니 교수가 있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한 보도팀의 편집 책임자였다.
그는 나에게 주저 없이 산토스를 추천했다. 다우니 교수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산토스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의 스토리텔링 작가이자 선생님이죠.
당시 산토스는 ASU에서 실무 교수로 재직 중이어서 비교적 쉽게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그해 10월 나는 함께 연수 중이던 10개국 출신 기자 10명과 함께 투산과 노갈레스, 비스비 등 남부 애리조나를 여행했다. 산토스도 이 일정에 동행했다. 그녀는 교수였지만, 곳곳에서 사람들을 만나 끊임없이 질문하는 모습만큼은 천생 기자였다. 나는 투산의 한 호텔에서 그녀와 스토리텔링, 저널리즘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산토스는 사회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이어 리우데자네이루의 기업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취재를 거듭하며 이야기의 힘에 매료된 그녀는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에서 저널리즘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매사추세츠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며 본격적인 기자 경력을 쌓았다. <뉴욕타임스>에서 12년 동안 근무했고, 그곳에서 피닉스 지부장을 맡은 인물이다.
산토스는 스토리 기사를 쓰는 게 마치 자신의 운명과 같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이러한 그녀의 습성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그의 가족에게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의 인생 초창기 기억이 모두 이야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 등 모든 것이 이야기 중심이었다고. 산토스는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기억은 어떤 사건이나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과 연결되어 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할 공간을 제공하죠. 제가 쓰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주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산토스가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이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고, 독자는 결국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거나 “이 일이 그 사람에게 벌어졌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는 식의 접근이 소통에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등장인물의 이야기로 기사를 풀어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뛰어난 탐사보도라도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구체적인 인물과 서사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독자들은 이 기사가 전하는 사안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 어렵다고 여길 것이다.
공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감정적 연결’이다. 산토스는 감정적 연결에 대해 이렇게 부연했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미국 하원의장이 축출됐다’ 이런 속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을 전달합니다. 그런데 만약 독자들이 더 깊이 이해하길 원한다면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적 연결’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감정적 연결을 만드는 방법은 사람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는 거죠.
이런 감정의 연결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친구가 와서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면 때로는 연민을, 때로는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기사 속의 등장인물이 실제로 나쁜 일을 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나쁜 행동에 대해 감정적 반응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지? 감옥에 갔나? 그 행동에 대해 어떤 결과가 있었나?’ 이런 궁금증이 생겨요.
이는 흥미로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거나 재미있는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치와 비슷하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작성된 기사도 독자와의 감정적 연결을 통해 몰입해서 읽고 싶거나, 계속 보고 싶고은 것과 효과를 이끌어낸다. 산토스도 이 점을 정확히 짚었다.
산토스는 한 편의 영화를 사례로 들었다. 주인공이라는 좁은 시점에서 시작해서, 다른 인물들의 소개로 확대된다. 영화는 종종 광각 렌즈를 사용해 전체적인 맥락이나 배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장소, 그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주인공에게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는 거예요. 말씀드렸듯이, 그것이 공감이든 연민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이든, 어떤 감정이든 중요해요. 그리고 감정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지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돼요.
내가 그녀를 인터뷰할 때는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를 근거로 저소득층 학자금 대출을 최대 2만 달러까지 탕감하려 했었다. 하지만 미 연방대법원이 행정부 권한을 넘는 조치라며 제동을 걸었다. 약 2600만 명이 빚 탕감을 신청한 정책이 무산돼 백악관이 반발했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비싼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학생들이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게 매우 흔하다. 그들은 졸업 후 대출을 갚기 시작한다. 하지만 금리가 너무 높아서 대출금을 다 갚는 데 20년, 30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산토스의 설명이다. 졸업하고 일을 시작해도, 번 돈의 상당 부분을 학자금 대출 상환에 써야 한다.
산토스는 이 사안에 대해 스트레이트 기사와 스토리 기사로 작성할 때를 비교하며 스토리텔링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단순히 ‘바이든 대통령이 얼마의 대출을 탕감했다’고 보도한다면 그냥 그 사실만 전달하는 거예요. 하지만 만약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존은 대학에서 4년 동안 학비를 내기 위해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졸업 후 연봉 7만 달러를 받는 괜찮은 직업을 얻었지만, 그중 40%는 주거비로, 20%는 학자금 대출 상환으로 쓰고, 나머지는 식비와 각종 요금으로 지출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저축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만약 독자가 부모라면, 유권자라면, 또는 젊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세상에, 이게 존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내 자녀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 아니면 나에게도.’ 그러면 사람들이 정부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라고 묻기 시작해요. 이런 방식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고, 변화에 대한 요구를 이끌어내는 방법이에요.
산토스는 <뉴욕타임스> 재직 중 2007년 11월에 보도됐던 그녀의 스토리 기사 사례를 들려줬다. ‘DNA로 무죄가 됐지만, 세상 밖에서 길을 잃은 남자(Vindicated by DNA, but a Lost Man on the Outside)’라는 긴 제목처럼 분량도 꽤 많은 기사였다. 살인 혐의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가 진범이 나타나자 풀려난 제프리 마크 데스코빅이라는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다.
기사는 “1989년 이후 DNA 증거를 통해 전국적으로 최소 205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이들 중 53명은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이다”고 설명한다. 데스코빅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 교도소에 간 뒤 16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다시 자유를 되찾은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었고, 단순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 쉽지 않았다.
산토스는 무려 1년 동안 데스코빅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녀가 이 기사의 취재와 글쓰기에 그토록 공을 들인 이유가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 그의 일상을 독자들에게 상세히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데스코빅에게 일어난 일은 보통 사람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일이 아닌 매우 특별한 경우다. 독자들은 그가 겪는 일상의 어려움에 대해 피상적 이해로만 그칠 수 있다. 산토스는 공감을 통해 데스코빅과 독자들의 간극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기사가 소개된 지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녀와 대화를 나눴지만, 산토스는 데스코빅에 대한 취재 과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게 제가 처음으로 쓴 긴 내용의 스토리 기사였어요. 몇 가지 이유로 저에게 특별해요. 그중 하나는 그 남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삶이 어떤지 깊이 이해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녀의 이 기사는 단순히 불행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데스코빅의 이야기가 보도된 이후 그는 뉴욕주 의회에 초청돼 자신의 경험을 한 번 더 공유했다. 뉴욕주는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보상하는 방식을 바꿨다고 한다. 한 개인의 경험을 전하는 스토리가 사회 시스템을 개선한 것이다.
만약 산토스가 데스코빅의 이야기를 일반적인 기사로 작성했다면 이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그녀는 이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단순하게 ‘억울하게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석방 후 돈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썼다고 가정해보죠. 독자들은 그 문제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한 사람의 시각과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이게 바로 공감의 힘을 활용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