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대신 사람을 기록하는 스토리텔링
기자라면 누구나 황당한 제보자를 만나 그날 취재가 엎어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입사 초기 사회부 기자 시절이었다. 한 여성에게서 제보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자신을 지역 대학 총장 딸이라고 소개하며 파출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제보 내용은 제법 그럴듯했다. 직접 만나 자세히 말하겠다고 했다.
나는 점심 약속까지 취소한 채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제보자의 얼굴을 마주친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대낮인데도 중년으로 보이는 제보자에게는 술 냄새가 풍겼고, 손톱에는 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그녀는 소주 한 잔을 사주면 엄청난 제보를 털어놓겠다고 했다.
그녀는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10분 뒤 화장실에 간다며 빠져나와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도망치듯 나왔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쓴웃음이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여인을 만난 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제보라도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됐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안타까운 현실이 있다. 기자들은 입사 초반 사회부에서 몇 년을 보내는 동안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경력이 쌓일수록 일반 시민과의 접점이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출입처에 매몰되면서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기업인 등 목소리가 큰 이들을 주요 취재원으로 삼는다. 자연스럽게 출입처의 취재원들에게 더 많은 지면과 전파를 할애한다.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성이 모두 ‘관 씨’다. 신문 지면이나 방송 뉴스에서 흔히 코멘트를 할 때 등장하는 ‘관계자’가 이 사람들이다. 취재원들이 특정 계층에 치중된 것도 모자라 대부분 익명의 가면을 쓰고 있다. 뉴스와 일반 독자 사이 괴리감만 키우는 꼴이다.
물론 매우 민감한 기사를 작성할 때는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익명을 꼭 써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을 제쳐두고도 한국 언론의 익명 표기는 필요 이상으로 과하다. 물론 나 또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양질의 스토리 뉴스가 나올 수 없다. 이야기에는 반드시 등장인물이 있어야 한다. 익명의 취재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끔 스트레이트 뉴스에도 일반 시민이 등장하지만 간단한 인터뷰나 현장 증언 등으로만 소비될 뿐이다.
반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체감하게 하는 스토리텔링은 오래도록 회자된다. 다시 말해 스토리 뉴스를 선택하는 기준은 거창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곁의 이웃에게 향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 언론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토리 뉴스의 대표적인 소재로 자주 활용된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였던 에이미 골드스타인의 책 <제인스빌 이야기>도 이점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돼 큰 울림을 선사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이라는 인구 6만 명의 소도시다. 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던 자동차 기업 GM이 2008년 12월 23일 이곳에서 철수해 버린다.
일자리 9000개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GM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골드스타인은 책에서 GM 공장 노동자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어떻게 몸부림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골드스타인을 직접 만난 것은 2023년 10월, 가을이었다. 당시 나는 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 DC를 방문했고, 그곳에 가기 전 그녀에게 미리 인터뷰를 요청했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미국 언론인들로부터 인터뷰 거절을 당해봤기 때문이다.
미국에 오기 전, 나는 스토리텔링 저널리즘 분야에서 꼭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은 기자나 작가 10여 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잠시라도 대화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대부분 거절이었다. 몇몇 사람은 아예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스타인은 내 요청에 응한 유일한 기자였다. 그녀는 이메일에서 내 연구 주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내가 워싱턴 DC에 머무는 동안 시간을 내줄 수 있다고 전해왔다. 그녀의 이런 회신을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와의 만나기로 한 날, 워싱턴 DC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웨스트엔드 가로수는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거리에는 퇴근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맥주를 홀짝이면서 수년 전 읽었던 <제인스빌 이야기>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리고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인터뷰 질문을 정리했다.
골드스타인은 사진에서 본 것처럼 풍성한 곱슬머리에 안경을 끼고 있었다. 마치 이웃에서 마주칠 법한 아줌마처럼 친근한 인상을 풍겼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도 부드럽게 잘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녀와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이런 판단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골드스타인은 <제인스빌 이야기>의 기획과 취재, 집필 과정을 차분히 설명했다. 나는 그녀의 말속에서 번뜩이는 날카로움을 종종 발견했다. 잘 벼린 칼날에 손을 대는 것은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그녀가 나에게 질문할 때였다. 누가 누구를 인터뷰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나는 그녀의 질문에 쩔쩔맸다.
골드스타인은 버지니아주 노퍽의 지역 신문 등에서 일한 뒤 1987년 가을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했다. 글쓰기를 좋아했고, 기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그녀를 기자의 길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녀는 건강보험 정책을 중심으로 사회보장, 복지, 주택 등의 문제를 폭넓게 취재했다.
백악관 출입 기자로 굵직한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녀는 2002년 2002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연방정부의 대응을 집중적으로 추적한 심층 보도 시리즈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 취재팀 일원으로 퓰리처상 국내보도(National Reporting) 부문을 공동 수상했다.
내가 그녀를 인터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4년 1월, 그녀는 36년간 몸담았던 <워싱턴포스트>를 떠났다. 그리고 같은 해 3월부터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골드스타인에게 어떤 계기로 <제인스빌 이야기>를 취재했는지 물었다. 이 책의 배경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은행 파산이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로 돌아간다. 괜찮은 직업을 가진 중산층 미국인들이 갑작스럽게 실직했다. 정부나 지자체에 복지 혜택 신청도 쇄도했다. 평범했던 수많은 삶들이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골드스타인은 이와 관련된 당시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해 아쉬워했다. 뉴스의 최우선 관심은 정부 정책이나 금융기관, 자동차 산업 향방 등 거시적인 사안들이었다.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실업률과 같은 숫자에 매몰되고 말았다.
물론 지역 신문 기자들이 푸드뱅크에 사람들이 몰리는 모습을 다룬 기획 기사는 존재했다고 한다. 골드스타인은 그럼에도 경제 위기가 지역 사회와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깊이 탐구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결국 그녀는 일련의 사태가 미국의 최대 발명품 ‘아메리칸드림’의 쇠퇴로 이어지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미국에는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신화가 있어요. 삶이 점점 나아지는 것, 발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죠. 하지만 제가 본 현실은 정반대였어요. 사람들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죠. 기자로서 저는 이 문제가 미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골드스타인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할 수 있도록 결심한 것은 2009년에 발표된 한 보고서 때문이었다. 그녀는 2018년 2월 하버드대학교 니먼재단이 발행하는 ‘니먼 보고서(Niemen Reports)’ 기고문 ‘일자리 통계의 이면을 파헤치다(Digging behind the Jobs Numbers)’에 이를 상세히 썼다.
“나는 경기 침체를 다루는 많은 저널리즘이 대체로 거시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실업률 통계나 자동차, 은행 산업에 대한 연방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주된 내용이었다. 2009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연구에 따르면, 경제 기사 중 단 5%만이 일반 미국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반드시 전해야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혔다.”
골드스타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책 전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대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남겨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분투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사람들은 절망에 무너졌다가도 다시 희망을 붙잡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위기 속에 인간 군상을 깊이 탐구한 하나의 행동학적 기록이라 할 만하다.
주요 인물로 GM 공장에서 13년간 일하다 해고된 노동자 제러드 휘태커와 그의 가족이 등장한다. 하루아침에 실직한 제러드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한다. 결국 그의 쌍둥이 딸 알리사와 케이지아까지 아르바이트에 나서 가족을 돕는다.
맷 워펫은 이른바 ‘GM 집시’가 됐다. 제인스빌 공장이 문을 닫은 뒤 400km가량 떨어진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의 GM 공장에서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현지에서 근무하고 주말마다 제인스빌로 돌아왔다가 월요일이면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크리스티 바이어와 바브 본은 GM 협력업체에 일하다 해고됐다. 두 사람은 이후 기술전문대학에 입학해 형사행정학 과정을 수료하고 교도관으로 전직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새 직장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골드스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이 책의 영어 원제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영어 제목은 <Janesville: An American Story>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제인스빌: 미국인 이야기>다. 내가 주목한 것은 부제 ‘미국인 이야기’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 ‘미국인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이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인스빌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하신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목과 부제에 대한 질문에 답하자면, 말씀하신 방향은 맞지만 조금 더 풀어 설명하고 싶네요. 저는 제인스빌 사람들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미국 곳곳의 지역사회와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나타난 경제적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은유로 바라봤어요. 이는 중서부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책의 부제는 한 지역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동시에 그것이 미국 전반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던 변화와 고통을 상징한다는 점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이죠.”
그녀의 대답은 <제인스빌 이야기>의 휘태커 가족과 맷 워펫, 크리스티 바이어, 바브 같은 인물들이 당시 경제 위기 속에서 미국 전역에 넘쳐났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언론은 그들을 숫자와 통계 속에 묻어버린 채, 살과 피를 지닌 이웃들의 삶에는 좀처럼 시선을 주지 않았던 보도 관행도 다시 돌아보게 했다.
골드스타인과 약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다 문득 아쉬움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에서 그녀의 책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었다. 미리 만날 줄 알았다면 사인을 받기 위해 분명 책을 챙겨 왔을 텐데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이를 한탄하고 있다.
대신 나는 그녀에게 우리 대화를 받아 적는 데 사용하던 수첩을 내밀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이렇게 따뜻한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동료 기자이자 내러티브 작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행운을 빕니다."
("With best wishes to a fellow journalist and aspiring narrative 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