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는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한국인에게 국경은 매우 생소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럼에도 그 국경을 넘겠다고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북쪽에 간혹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월남하는 경우도 있지만, 탈북민 대부분 중국으로 탈출하는 루트를 선택한다. 한국은 분명 대륙에 속해 있지만, 일상적 경험에서는 섬나라와 다름없는 고립성을 지닌다.
2023년 10월 애리조나주립대(ASU) 월터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에서 함께 연수 중이던 기자들과 방문했던 노갈레스는 이런 점에서 나에게 특별했다. 이 도시에는 미국과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높은 장벽과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왼쪽 미국 쪽은 넓은 도로와 아무것도 없는 언덕이 펼쳐졌다. 반면 멕시코 쪽은 장벽 바로 옆에 건물과 사람들이 밀집해 긴장감이 느껴졌다.
맑은 하늘 아래 평화로운 풍경과 견고한 국경 시설이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미국-멕시코 국경의 불법 이민 규모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강력한 단속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멕시코와 중남미는 물론 중국 등 다양한 국가 출신 이주자들이 여전히 위험한 루트를 통해 넘어오고 있다. 사막과 강에서의 사망, 밀입국 차량 사고, 인신매매 피해 등 인도적 참사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와 함께 남부 애리조나를 여행했던 페르난다 산토스 전 <뉴욕타임스> 기자는 현직 때 이 지역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국경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스토리 뉴스를 작성했다. 이와 관련된 그녀의 대표적인 기사 하나를 소개하겠다. 2013년 5월 20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애리조나 사막, 더 위험한 길로 나선 이주민들을 삼키다(Arizona Desert Swallows Migrants on Riskier Paths)’라는 제목의 기사다.
기사의 첫 장면은 애리조나주 피마 카운티 검시소의 내부 묘사로 시작된다. 그곳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 744구가 시신 가방에 담긴 채 보관돼 있었다. 2011년 사라진 안드레스 발렌수엘라 코타의 가족은 그의 유해가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로 검시소의 연락을 기다린다. 국경의 사막은 점점 더 많은 이름 없는 죽음을 삼키고 있었다. 신원을 찾는 작업은 퍼즐처럼 느리지만, 그 과정 자체가 남겨진 이들에게는 마지막 작별의 기회였다.
나는 산토스와 인터뷰 중 자연스럽게 이 기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의 저널리즘적인 관심 분야 중 하나가 미국-멕시코 국경이라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그곳에서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기사를 읽어봤죠. 우리는 내일 그 지역(노갈레스)을 방문할 예정이잖아요. 왜 멕시코 국경 지대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산토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국경은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최적의 소재이기에 탁월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색깔 비유로 설명했다.
“흔히 말하는 '흑백 논리'라는 표현 있잖아요. 모든 것이 명확하게 흑이거나 백인 상황을 말하죠. 하지만 흑과 백 사이에는 어떤 색깔이 있을까요? 회색? 회색에는 다양한 농도가 있잖아요. 아주 밝은 회색에서 시작해서 점점 어두워지다가 결국 검은색이 되는 거죠.”
산토스는 명확한 찬반으로 갈리는 극단적인 흑백 구도의 사안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하나의 사안을 둘러싼 복잡성과 그 안에 얽힌 다양한 관점이 스토리텔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의 한쪽에 서기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전적인 찬성이나 반대를 택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미묘한 결은 신문이나 TV 뉴스의 관행적인 보도 방식에서는 충분히 포착되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경 지대는 복합적인 스토리를 품은 뉴스의 보고다. 노갈레스가 대표적이다. 노갈레스는 하나의 도시처럼 보이지만, 두 나라에 걸쳐 나뉜 공간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국경 너머에 사는 친구와 친척을 알고 지낸다. 일상적인 상업 활동 역시 국경을 가로질러 이뤄진다. 매일 수많은 트럭이 국경을 오가고, 사람들은 차를 타거나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 여러 층위의 삶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 도시를 갈라놓는 것은 결국 높게 세워진 장벽 하나뿐이다.
그녀는 국경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동시에 붙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워싱턴에서 생산되는 정치와 정책의 언어, 그리고 국경에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시선이다.
“저는 워싱턴에서 내려다보는 정치와 정책의 관점으로 이 지역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지역 사람들은 이미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워싱턴의 사람들은 왜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왜 그런 현실을 정책으로 만들지 못하는 걸까요?”
미국의 국경 정책은 미국과 멕시코를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갈라놓으려는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산토스는 현장에서 마주하는 국경이 훨씬 더 유기적인 공간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경에 가서 시간을 보내보면, 그곳의 유일한 분열은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말이다.
국경 지역 주민들이 이곳을 ‘보더랜드(Borderlands)’라고 하나의 단어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토스는 그들에게 국경의 양쪽은 다른 땅이 아니라 같은 땅, 같은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인식은 국경을 선과 장벽으로만 이해하는 시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는 복잡한 것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을 올바르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좋아해요. 제 도전은 어떻게 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의 결정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이해하게 만드는 거죠.
우리가 읽는 많은 이야기들은 모두가 무언가를 미워하거나 모두가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요. 저는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에서 ‘모든 사람’이나 ‘아무도’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모든 한국 사람이 밥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저는 ‘밥을 먹지 않는 한국인도 있을 것이다’고 말할 거예요.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중간에 있는 것을 놓치게 돼요. 사실 최고의 이야기는 그 중간에 있어요. 바로 '회색지대'에서요. 최고의 이야기는 회색지대에 존재합니다.”
산토스가 말한 ‘회색지대’는 정치적 타협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기자가 어디에서 이야기를 찾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좌표에 가깝다. 스토리텔링에서 중요한 것은 흑백으로 나뉜 사안의 중심이 아니라,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자리—그곳이 스토리가 된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나는 조금 당혹스러워졌다. ‘회색분자’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보통 회색에 대해 부정적인 첫인상을 갖고 있다. 참과 거짓, 선과 악을 가르는 이분법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런 나에게 산토스의 입에서 ‘회색지대’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 생각이 잠시 멈췄다. 그런데 산토스는 더 나아갔다. 그녀는 스토리를 고르는 안목으로 ‘지그재그 시선’을 제시했다. 지그재그라니! 듣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산토스에게 이 지그재그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언론이 앞다퉈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는 것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갈 때 그녀는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을 생각한다. 그들이 '지그'하면 산토스는 '재그'하고, 반대로 '재그'의 상황에서는 '지그'로 걸어본다는 것이다.
“저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요. 한 발짝 물러나서 주제를 다르게 보려고 하죠. 때로는 제 편집자들이 왜 이런 방식으로 하냐고 혼란스러워해요. 모두가 이렇게 하는데 왜 당신은 다르게 하냐고요. 때로는 그들이 맞고, 제가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밀어붙이는 게 맞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때로는 제가 제 방식대로 하겠다고 고집했어요. 반면, 제가 그들의 방식을 따랐던 경우, 제 본능이나 직감을 따르지 않아서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죠.”
산토스의 말을 정리하면, 모두가 한 방향을 볼 때 다른 방향을 향해 질문할 틈을 찾는 것이 곧 이야기 선택의 전략이라는 뜻이다. 그녀의 책 <파이어라인·The Fire Line: The Story of the Granite Mountain Hotshots> 역시 그런 ‘지그재그 시선’에서 탄생했다.
이 책은 2013년 애리조나주 프레스콧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 참사를 다룬 서사형 논픽션이다. 희생된 소방대원들의 삶과 팀 문화, 그리고 참사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원한다. 유가족과 지역사회가 겪은 상실과 갈등, 애도의 시간을 따라가며 비극 이후 세계까지 비춘다. 현장 르포와 인터뷰, 정책 분석을 결합한 재난·공공정책 서사의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야넬힐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20명의 그라나이트 마운틴 핫샷 대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화재 진압 중 불에 휘말려 19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2001년 발생한 9·11 사건 이후 한 번의 임무에서 가장 많은 소방관이 숨진 미국 내 최악의 산불 참사로 기록됐다. 국내 언론도 이 비극을 보도하기도 했다.
태평양 건너 한국까지 소식이 전해질 정도니 이 사건에 대한 미국 내 언론사들의 취재, 보도 경쟁은 불 보듯 뻔했다. 산토스에 따르면 이때 상당수 언론이 집중한 것은 누가 소방관들을 위험천만한 곳으로 내몰았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화재 발생 뒤 지휘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을 때였다고 한다.
하지만 산토스가 바라보는 방향은 달랐다. 그녀가 소방관들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그들이 누워 있던 위치를 확인했을 때였다. 6월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녀는 한 달 뒤 야넬힐 갔을 때 펜스로 둘러싸인 공간을 보게 됐다. 그들은 너비 30피트(약 9m), 길이 24피트(약 7m)의 매우 협소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 그녀는 그 순간부터 단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혔다.
“저는 처음부터 다르게 접근했어요. 누가 명령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모두 임무에 동의했고, 함께 움직였어요. 제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왜 그들 중 아무도 불길이 가까워졌을 때 도망치지 않았을까?’ ‘높이 40피트(약 12m)나 되는 거대한 불길이 다가오는데, 왜 이 남자들은 함께 남았을까?’라는 질문이었죠.”
이 질문은 산토스의 취재를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게 만들었다. 왜 그들이 끝까지 함께 남았는지, 무엇이 그 팀을 특별하게 만들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개인보다 팀의 정체성을 앞세웠던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성장 배경과 가치관까지 깊이 탐구했다.
<파이어라인>은 신문 연재를 묶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책으로 집필된 작품이었다. 그녀는 순직한 소방대원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기사 형식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들의 삶과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한 권의 책으로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날 노갈레스의 장벽 앞에서 나는, 직선으로 그어 놓은 국경이 인간 삶의 교차가 만들어낸 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저널리즘은 그 직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지그재그로 걸어가며 보이지 않던 이야기를 발견하는 과정일 것이다. 모두가 한 방향을 볼 때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야기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내가 찾아야 할 이야기 역시, 흑과 백 사이의 회색지대, 그리고 그 경계를 따라 이어진 지그재그 위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