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속에서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힘
매년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특별한 날을 앞두고 기자들은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올해는 무엇을 쓸까?” 특정한 날짜를 계기로 생산되는 기사를 보통 ‘날 기사’라고 한다. 기념일이나 사건의 기일에 맞춰 준비되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4월 5일 식목일이 되면 전국의 나무 심기 현황이나 숲 가꾸기 운동을 점검하는 기사가 나온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는 독립운동을 되짚는 기사가 이어진다. 6월에는 호국보훈을 조명하는 보도가 등장한다.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한 날이 다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그 의미와 이후의 변화를 짚는 기획 기사가 만들어진다.
기자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두 가지다. 마감과 아이템이다. 마감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동시에 매일 새로운 쓸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기자들은 취재 아이템을 ‘일용할 양식’에 빗대 ‘땟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데스크에 보고할 아이템이 없을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날 기사’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된다. 정해진 날짜 자체가 기사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를 능숙하게 쓰는 기자를 ‘날 기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념일이라는 틀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라는 뜻이다. 동시에 ‘날로 먹는다’는 자조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큰 품을 들이지 않아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뉘앙스다.
스토리텔링의 대가들은 이렇게 뻔한 날 작성하는 뻔한 기사가 훌륭한 스토리 뉴스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념일은 과거를 반복하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조지아대 저널리즘 스쿨의 잰 윈번 교수는 누구보다도 기념일이나 주기적인 행사의 무궁한 스토리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었다.
“스토리텔링을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방법도 있어요. 데스크를 설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이죠. 기념일 기사 아시죠? 기념일 관련 기사를 작성하시나요?”
“네, 특정 날짜에 맞춘 기사 말이죠. 오늘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면, 다음 해 오늘 같은 경우 기념일 기사가 되는 거죠, 보통.”
“맞아요. 그래서 '아,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라고 생각하게 되죠. 기념일 기사는 전형적인 예이고, 또 다른 예로 ‘주기적으로 다뤄야 하는 주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학교가 다시 시작되니 학교 관련 기사를 쓰는 것이죠. 이런 기사는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죠. 하지만 여기에 스토리텔링을 적용하면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윈번은 바로 생각이 난 듯 나에게 기사 하나를 소개했다. 1997년 6월 18일 <LA타임스>에 보도된 ‘느리게 흐르는 시간… 기지 선생님과 2학년 교실은 어떻게든 종이 울릴 때까지 버티다(2nds Crawl By : Miss Gizzi and Class Somehow Endure Till Summer Bell Rings)’였다. 기사를 작성한 JR 모링거 기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언론인이자 소설가, 대필 작가다. 그는 영국 해리 왕자의 자서전 <스페어>의 대필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모링거 기자는 기사에서 초등학교 2학년 마지막 날을 묘사한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떠나는 마지막 수업 종료 순간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방학과 3학년 진급을 코앞에 둔 아이들은 들떠있었다. 몇몇은 책을 거꾸로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학생들은 장난을 치거나 혼잣말을 하며 집중하지 못했다.
수업 종료를 몇 분 앞두고 교실의 분위기는 갑자기 숙연해진다. 아이들은 종이 울린다는 것이 사랑스럽고 자상한 기지 선생님과 호프먼 선생님과의 이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호프먼 선생님의 눈시울이 촉촉이 젖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마지막 포옹을 나눈다. 이내 아이들이 모두 떠난 교실은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조용한 공간으로 남는다.
솔직히 처음 이 기사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여러 번 자문했다. ‘이게 왜 기사가 될까?’라는 의문이었다. 방학을 앞둔 교실에서 벌어진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스트레이트 기사의 리드, 즉 내용을 압축해 보여주는 첫 한두 문장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이른바 ‘야마’, 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포인트가 무엇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 기사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설렘에다 이별, 상실의 슬픔을 함께 버무리고 있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여러 번 겪게 되는 일이다. 작가는 이 평범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섬세하게 그려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마법의 가루를 더해,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해마다 4월 16일이 돌아오면, 우리는 여전히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2014년 이날, 300명 넘는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한국의 언론은 매년 이 날짜가 되면 세월호를 되짚는 기획 기사를 내보낸다. 이러한 보도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사회적 기억을 보존하고 공동체의 책임을 환기하려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로 볼 수 있다.
미국 보스턴에도 이와 같은 집단적 상처가 각인된 날이 있다. 세월호 참사 1년 전인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결승선 인근에서 폭탄 두 개가 연이어 폭발했다. 사제 폭발물이 설치된 이 테러로 3명이 목숨을 잃었고, 최소 18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축제의 공간이 순식간에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도시의 시간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 1주기가 다가오던 무렵, 윈번은 <CNN>에서 에디터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보스턴의 지역 신문 <보스턴글로브>가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CNN>도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경쟁 매체의 보도를 단순히 따라가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보도가 필요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여러 언론이 동시에 취재하는 상황에서는 경쟁의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자들은 더 깊은 이야기와 새로운 시선으로 뉴스를 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독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윈번이 선택한 전략도 스토리텔링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창의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미국에서 다른 테러가 무엇이 있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 건물 폭탄 테러, 애틀랜타 올림픽공원 폭탄 테러, 그리고 9.11 이전에도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서 발생했던 폭탄 테러가 있었죠.”
“그래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각 폭탄 테러의 생존자를 찾아 그들의 이후 삶에 대해 물어보면 어떨까?’ ‘보스턴 마라톤에서 최악의 날을 겪은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물어보면 어떨까?’라고 말이죠.”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CNN>의 보도가 인터랙티브 뉴스 ‘보스턴을 넘어(Beyond Boston)’였다. 이 스토리 뉴스의 전문은 기획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이 보스턴 테러 사건 1주기를 맞았다. 그보다 앞서 세 차례 폭탄 테러를 겪은 생존자들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인생을 바꿔놓은 그날로부터 이제 막 1년을 맞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윈번이 언급한 것처럼 기획 기사는 1996년 애틀랜타, 1993년 뉴욕,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발생한 각 테러 사건의 생존자 3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애틀랜타 올림픽공원 폭탄 테러로 어머니를 잃고 자신도 크게 다친 팰런 스텁스는 오랜 시간 혼자 상처를 견뎌야 했다. 이후 그녀는 분노를 넘어 범인을 용서하고, 자신의 삶을 다시 세우며 평화를 찾아갔다.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은 경찰관 토머스 맥헤일은 구조 활동을 펼친 뒤 오랜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는 그 경험을 계기로 대테러 활동에 헌신하며, 시간이 상처를 치유한다고 말한다.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로 어린 아들을 잃은 헬레나 개럿은 깊은 상실 속에서도 슬픔을 견디며 살아왔다. 그녀는 오랜 시간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며, 아들의 기억을 붙잡은 채 살아왔다.
이 스토리 뉴스의 백미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대에 있다. 이들은 보스턴 테러를 바라보며, 폭발이 남긴 충격과 상실이 그날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후의 삶 속에서 오래 지속되는 시간의 일부가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고립 속에서 치유가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떠난 이들은 살아남은 이들의 시간 속에서 계속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한강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쓰기 위해 소설 <소년이 온다>를 썼다. 그리고 나는, 스토리 뉴스를 읽으며 그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을 발견했다. 이야기는 시간을 건넌다. 이야기는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고, 떠난 이들을 다시 우리 곁에 앉힌다.
이것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가만의 특권이 아니다. 언론인 역시 스토리를 통해 현재를 도울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이 스토리 뉴스를 통해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