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해 먹고 싶은 마음
요리를 시작한 건 한국에서 아부다비로 이주한 이후부터이다. 일단 무엇을 먹어야 할지부터 생각하느라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요리를 한 적이 거의 없기에 압력밥솥을 먼저 샀던 거 같다. UAE에서 빵만 먹고살기는 어려울 듯싶어 그랬다. 우선 빵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내 입맛에 맞지 않아서이다. 집에서는 헝그리 잭이라고 유명한 팬케이크 한 박스만 있었다. 한 며칠을 근처 슈퍼에 가서 파는 음식들도 좀 살펴봤다. 스피니스( Spinneys)라는 로컬기업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집 근처라 가보았다. 스피니스에 가면 한쪽에서는 갓 구운 빵도 팔고, 간단한 샐러드와 샌드위치 같은 것을 진열해 놓았다. 슈퍼만 보면 들어가고 싶은 외관이다.
사다 먹는 음식도 한두 번이다. 겉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사 먹는 음식과 비슷했지만 먹다 보면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소스맛이 났다.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싶어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찾아봤다. 일단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소고기 닭고기 파는 곳을 흘끗 보았다. 대강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을 장바구니에 넣고 소스 파는 곳으로 가봤다. 일단 재료와 소스면 요리라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소고기 스테이크 소스도 있고 닭고기 PeriPeri 소스도 보였다. 집 근처 몰에 있는 음식점과 같은 브랜드 같아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야채도 몇 가지 주섬주섬 넣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큼직한 오븐이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한참 헤맸다. 요리란 것은 참 힘들구나 싶었다. 요리에 대한 흑역사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맘만 먹으면 김치도 금세 해 먹고 인터넷 찾아서 먹고 싶은 건 장 봐서 뚝딱 해 먹는다. 십 년 정도 요리를 하다 보니 이제는 그만 하산해야겠다고 맘을 먹게 되었다. 그런 계기가 몇 가지 생겼다. 혹시 식단과 삶의 질을 생각해 보고 저울질할 맘이 생긴다면 한 번쯤 점검해봐야 한다.
무엇이든 어느 정도까지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이 기간이 하찮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내 시간의 값어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난 과감히 요리와 멀어지려 한다. 시간의 값어치라는 것은 내 시급이 비싸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시급은 고려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나의 시간은 마감이 있다는 것이다. 대략 100살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날은 80세까지 일 듯싶어서 이다. 그리고 40대의 시간과 50대 60대의 시간을 그 생산성에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빨리 시작할수록 그 시간이 지니는 의미가 점점 더해지니 말이다. 40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인생을 요리에 전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루에 요리에 드는 시간을 생각해 보니 너무 많아서 충격적이다. 하루는 24시간인데 기본적인 식욕을 충족하기 위해 내가 오롯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쓰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침에 아이 도시락 준비를 포함해 세 번의 식사를 하는데 최소한 3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온라인으로 장보고 재료 준비하고 요리하고 음식 먹은 후 정리 및 설거지까지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전업 주부의 주된 업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요리는 그냥 생활에 있어 음식을 먹기 위한 옵션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
내가 여기서 만난 많은 여성들이 요리를 하지 않는다. 아예 주방을 쓰지 않는 경우도 보았다. 물론 그들은 이사회 멤버, 사업운영, 은퇴 등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지만, 전업주부이지만 주방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보았다. 처음에는 너무 이상했다. 사람이 어떻게 먹고살지? 외부 서비스를 이용해서만 하는 게 좋은 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미 서비스로 제공하는 많은 옵션이 있다. 그것을 이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일단 그렇다는 얘기다.
이 시간이 나는 너무 아깝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요리를 해 먹는 기쁨은 어떠냐 묻는다면? 한 명 희생해서 가족들에게 기쁨을 제공하고 싶지 않다. 개개인이 모두 즐거운 방법이 있으면 찾아야 하고 없다면 만들면 된다.
음식을 본인이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이상하다. 안 그런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루에 3시간이면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후다닥 요리해 먹고 치우기까지 최소한의 시간을 들이는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투자한 시간까지 합친다면 더 속상한 일이다. 요리하는 것 자체를 무시하거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하루 한 끼 그리고 몇십 년을 나와 가족을 포함한 몇 명의 끼니를 책임지기에 희생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심어진 과정을 좀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이미 많은 행위들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고 그것이 더 좋다고 피부로 느낀다. 청소, 세탁 같은 것들 그리고 심지어 육아까지 말이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내 식생활에서 개선할 수 있는 점들을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과감히 시간이 들지 않는 쪽으로 바꾸려 노력 중이다. 음식을 한다는 것은 재료 준비, 소스 만들기 그리고 본격적으로 불을 써서 맛과 질감을 바꾸는 행위이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 정리 및 남은 음식을 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복잡한 과정에서 특히 소스 만들기 그리고 불을 쓰는 것을 줄여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다 보면 다양한 맛이 살아있는 요리가 아니고 단순한 맛이 남는다.
단순하게 음식을 먹는 건 멋진 일이다. 내 기준에 단순하게 먹는다는 것은 재료를 준비하고 먹기까지 드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다. 소스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재료 맛을 살려 섭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내가 최근에 주로 먹는 음식은 병아리콩, 두부, 청경채, 로메인, 치즈, 견과류, 과일, 사워브레드, 땅콩버터, 고기 정도이다.
아이를 위해 국을 가끔 끓이고 죽도 끓여 먹는다. 지금 여섯 살로 아이는 어느 정도 컸다. 아이에게 내가 즐겨하는 식단을 조금씩 공유하는 중이다. 아이가 받아들이는 선에서 간단히 먹으려 한다. 아이에게는 밥과 국 그리고 생선 고기 해산물과 야채를 주로 준다. 아이는 야채를 좋아하고 잘 먹는데 그 이유는 내가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성이 나를 닮아 까다롭지 않아 다행이다. 식성과 기호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아이에게 맞춰주어야 한다. 특정 음식을 덜 먹는다고 어른이 될 수 없는 게 아니다. 올바른 식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그게 참 부모로서 괴로운 일이지만 육아를 해 보니 그렇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좋아하고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정해지게 마련이다. 단순한 식단을 위해 내 입맛 따위는 포기할 수 있을 만큼의 인내심이 생기기도 했다. 인내심은 매우 중요한데 이제는 더 이상 식욕이 폭발하는 일은 없다. 내가 소화시킬 수 있고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만족할 만한 정도의 식감과, 영양, 그리고 내가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을 생각해 다른 것을 포기했다. 인생은 맞바꾸는 것이다. 나는 맛을 잃는 대신에 시간을 얻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대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