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서 편하게 가보자.
친구가 두바이를 다녀간 후 긍정 에너지가 마구 생겼다. 갑자기 토스트마스터즈(Toastmasters)에 참여해야겠다 생각했다. 카톡을 뒤져 검색해 보니 맨 끄트머리에 있는 대화창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대화는 2022년 10월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걸 놓고 지내왔을까?
직접 마주하기 보다는 온라인에서라도 목적을 갖고 만나는 걸 좋아한다. 시간이 맞으면 장소가 어디라도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이 모임은 어찌 보면 영어 훈련 모임이고 또 다르게 보자면 회의참석 놀이다. 여자처자 한 달 늦게 이번주 모임에 들어간다. 두근거린다. 적어도 민폐는 끼치치 말아야겠다.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려고 한다. 회사 취업당시 썼던 자기소개서와는 다를지언정 이렇게 간절하고 떨리는 자기소개는 오랜만이다.
토스트마스터즈는 발표하는 행의에 의미를 둔다. 전 세계적으로 온오프라인 모임이 있고 형식에 맞춰 진행하기 때문에 회비가 있다. TED 영어 소모임 멤버 한 분이 토스트마스터즈를 추천해 주셨다. 두 번 정도 게스트로 참여했을 때 느낌이 왔다. 이건 나랑 잘 맞는다.
젊은이부터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함께 어우러진 이 구성이 좋다. TED 영어 소모임으로 진을 다 뺀 나로서는 이 모임 초대가 약간 부담스러웠던 것도 맞다. 두바이 시간으로 토요일 새벽 5시에 모니터 앞에 앉아야 한다. 이 새벽 시간에 주로 소모임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시차는 5시간이니깐 이렇게라도 참여할 모임이 있어 좋다.
아직 컴컴한 새벽 알리커피(Ali cafe) 믹스 하나 타서 자리 잡으면 시작이다. 이게 은근 힘에 부쳤다. 아이가 어리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 계속 옆에서 기웃거리는 거다. 텔레비전을 켜서 보여주기도 했지만 한 시간 넘게 그러려니 이건 아니다 싶어 기회가 될 때 정식으로 다시 하겠다 말씀드렸다. 그게 일 년 하고도 4개월인 지난 지금이다. 그동안 꽤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로 운전을 많이 하면서 영어 듣기가 생활이 되었다. 멜 로빈스(Mel Robbins) 아주머니의 쉰듯한 목소리 다그치지 않고 위로하는 그 말투가 특히 좋다. 좋아하는 클립은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면서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되었다. 더 알고 싶은 부분이 생겨서 다시 듣고 싶을 정도니 내 영어 인생에 있어 큰 발전이다.
둘째로 책상에 앉아서 손에 연필 쥐고 영어 공부하는 게 나하고 맞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영어 공부 한 답시고는 책 한번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신 듣기 말하기는 입이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록 많이 했다. 그런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다. 생존영어 엄마영어다.
셋째, 오래 하려면 어쩌면 평생 할 거 쉽게 가자는 거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면 꽂혀서 그것만 한다. 여기에 유통기한이 있고 그 기간이 지나면 금방 잊는다. 슬럼프가 오더라도 끌고 나갈 힘이 내게는 없다. 그럴 바에 모임에 껴서 같이 가는 것도 좋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긴 하다. 진작에 알았으면 덜 고생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요리 시작한 지 10년 차인데 요리하는 거랑 영어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느낀 적인 꽤 있다. 이건 기술이고 해 봐야 실력이 는다. 조리법만 본다고 그 요리를 능숙하게 할 수 없다. 많이 듣고, 직접 말하다 보면 내 근육이 반 자동으로 익힌 것을 내보낸다. 내 근육이 바뀌는 그 시간이 짧은 사람이 있는데 난 엄청 길더라.
최근에서야 좀 자신감이 생겼다.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너무 부담 갖고 싶지 않다. 아쉬운 점은 있다. 나의 진심, 생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될 때 그렇다. 친구 아이가 독감에 걸려 이 주째 학교에 못 나온다고 한다. 지난해 아이와 나도 같은 고생을 했기에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갔다. 이런 마음을 그 자리에서 표현했어야 했는데... 마음은 주고받는 것인데 그러지 못해 슬프다. 표정과 짧은 위로의 말로 충분히 전달되었을 테지만 그래도 말까지 했다면 더 좋았겠다.
토스트마스터즈와 함께 할 주말새벽이 기다려진다. 그동안 미루고 또 미뤄왔던 일들을 한꺼번에 하는 중이다. 나는 그런 스타일이니까 괜찮다. 다시 슬럼프가 오더라도 다시 시작할 마음만 있다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