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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Jun 12. 2017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2편

너는 나를 모른다.

1.


나는 아마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런 것 같다. 우울감의 무게에 온 몸이 꺼질 듯 무거워진다. 우울에 잠긴다. 눈은 계속 감긴다.  눈이 계속 감기다 감기다 우울에서 도망치기 위해 잠이 든다. 깨어나서 시계를 보면 10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곤 한다. 한참을 뒤척이다 간신히 거울 앞에 앉았다. 눈 앞에 있는 여자는 많이 불행해보이는 모습이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젖어 있다. 사실 이 모습이 요즘의 나다.


살짝 들여다 본 휴대폰에는 잔뜩 연락이 쌓여있다. 걱정이  그득한 잦고도 긴 메세지들. 답장해줘야겠지만 조금 있다가 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지금 너의 걱정을 보살필 여력이 없다. 문혁아.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아니.


2.


사실 문혁이는 내 우울증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뭐 사귀기 전 부터 하루 이틀 안 사이는 아니니까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거다.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적당한 때에 내 입으로 먼저 말해버렸다.


"아마도. 나 우울증일 거야. 알고 있었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먼저 말할 줄은 몰랐나보다. 그 순간의 놀라운 기색은 얼굴에서 감추지 못하더라.


"문혁아. 내 아픔을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서 나에게 고백할 수 있었다고 했었잖아. 그 말 여전히 책임질 수 있겠어?"


문혁이는 아주 잠깐 섬칫 멈춘다. 그러나 곧 굳은 눈빛을 띠며 대응했다.


"응. 다 준비한 부분이야."


에라 모르겠다하고 던진 폭탄에 차분하고 단단한 선언을 내뱉는 문혁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더 겁이 났다. 너를 결국 좌절하게 만들면 나는 어떡하지. 이렇게 곧은 너도 나를 포기해버리면 나는 내가 더 괴물같이 느껴질 텐데. 언젠가 그렇게 되어 버릴 거면, 이렇게 무모하게 감당하겠다고 달려들지 말란 말이야.


3.


내 슬픔의 대부분은 사람을 믿어서, 너무 믿어서 생긴 것들이었다. 나를 알아봐 줄 것 같은 사람들, 나를 사랑해줄 것 같은 사람들은 의심없이 믿고, 대부분 버려졌다. 그런 최후의 결말 뒤에 주저 앉아 울고 있으면 실재하지 않는 음성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누가 믿어달라 그랬어?"


문혁이는 내 슬픔을 이해할 것 같지 않다. 혼자 막연하게 하는 생각에, 어줍잖은 계산이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러나  문혁이 안에는 내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슬픔의 흔적이 없다. 문혁이는 기본적으로 다 내어줄 듯 누군가를 믿지 않는다. 자기를  다 열어서 보이는 일도 없다. 다른 사람을 보는 네 눈은 낯설만큼 무심하다. 냉기가 서리는 한 점 감정없는 눈빛. 언젠가 나를 그 눈빛으로 쳐다보게 될 미래를 가정하기만 해도 섬뜩하다.


마음에 허기가 지는 일이 없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내 남자친구는 그 사랑한다는 나에게도 기대는 일이 없다. 자기를 꺼내 보여주는 일이 없다. 나는 단지 보호의 대상일 뿐이다.


오늘은 뜬금없이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들고 와서 읽어주고 있다. 아름답고, 예쁘고, 낭만적인 글이다. 마음은 예쁘고 고마웠지만, 거리감 넘치는 글들에 짜증이 나서 듣기 싫었다.


"네가 이 글들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러다 보면 네 맘속에 힘든 것들이 사라지지 않을까..했어."


아니야. 아니야 문혁아. 내 마음 속 골의 깊이는 한참이나 더 깊단 말이야. 네가 뭘 알고, 겨우 그런 글들로 나를 위로 하려해. 네가 뭘 안다고 내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척을 하냔 말이야. 넌 나랑 다른 사람이잖아. 그런 나를 제대로 보고 있지도 않잖아.


"문혁아. 나는 수국 안 좋아해."


터져나오는 내적독백을 눌러 넣고, 짧게 반항했다.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너는 나를 역시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걸까. 네가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 걸까. 나를 사랑하며 혼자 행복해하는 네가 나는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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