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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Dec 16. 2017

고통은 계기다

글쓰기 클래스 4회차_주제: 고통

   가끔 보면 나의 아버지는 예상을 뒤엎는 말을 하는 것을 즐기시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나의 아버지께서는 박근혜 전대통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의아한 마음이 들어 물으니,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나왔다는 답을 주셨다. 힐러리를 제치고 트럼프가 당선 되던 날, 앞으로 미국이 잘 살게 될 것 이라는 말을 하셨다. 트럼프 뒤에는 반드시 엄청나게 좋은 대통령이 오게 되어있다는 설명이었다.


    견딜 수 없이 고통이 크고, 그 고통이 크기가 넘칠 듯 차오르게 될 때 인간은 변한다. 참 게으른 것이 우리의 본성이라 자꾸만 우리는 관성대로 살고 싶다. 잘못된 방식을 용인하고 싶고,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아.. 무언가 잘못 흘러 가는데..'싶은 이성적인 판단은 행동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힘이 없다. 물론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이 가지는 잔잔한 변화의 힘에도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기는 하다. 


   그래서 사실 큰 고통은 기회이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기에 우리는 반드시 변화하게 된다. 데여봐야 뜨거운 줄 아냐고 핀잔을 준다면, 어쩔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삶에서 어떤 일의 "계기"란 드물고도 귀한 일이다. 그런 탓에, 불교에서 도를 통하려면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는데, 그 인연은 바로 도를 통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닐까 싶다.


   현대사회의 방식은 이와 다르다. 겁지 않고 뜨끈한 미열같은 고통이 조금씩 우리를 질식사시킨다. 당장 큰 일 나지 않으니 우리는 변할 수 없다. 그 변하지 않는 게으름이 실재하는 문제로 닥쳤을 때, 우리는 이미 잡아먹혀있다. 현대사회 들먹이지 않고, 나만 해도 그렇다. 내 삶을 당장 위협하지 않는 작은 생활습관의 문제 들이 내 세포부터 시들게 함을 느낀다. 겨우, 생활 습관 하나. 혹은 그 순간마다의 작은 판단에 결국 나는 잡아 먹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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