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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Dec 18. 2017

눈이 와서 서럽다.

글쓰기 클래스 5회차_주제: 겨울

    아침 출근길 부터 눈이 펑펑 쏟아졌다. 아름답기 보다 재난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눈발이었다. 그 때문에 버스 길은 막히고, 지하철도 철로가 미끄럽다며 계속 연착했다. 평소같으면 1시간 20분 걸렸을 거리가 1시간 40분이 걸렸다. 당연스레 지각하겠구나-싶었고, 아니나 다를까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9시였다. 셔틀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지각할테지만, 버스도 지하철도 난리인데 교내 셔틀버스가 운행을 할리가 없었다. 퍼뜩 정신이 들어, 야무진 마음을 먹고 머나먼 등산길을 시작했다.


    정문에서 우리 연구실은 셔틀버스 시작점과 종점까지의 거리, 택시로 6분, 셔틀버스로 10분 걸리는 구불구불 언덕길이다. 밖에서 보는 풍경도 설산 등산이었고, 내 마음 속 풍경도 그러했다. 패딩 모자를 코까지 내려 뒤집어썼다. 낱낱의 여우털이 코를 간질여서 혼났다(사실 여우털인지 폴리인지는 모르겠다). 패딩 밑 허벅지는 땅땅하게 감각을 잃었고, 신발이 눈에 젖어 축축해졌다.


    그 고행길 중간 중간에 쉼터는 있었다. 잠깐 눈을 피할 건물에 들어가, 살짝 몸을 녹이고, 다시 5분간 눈발 속을 걷다가 다른 건물에 도착하면 살짝 눈을 털어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꼬박 30분이 걸리는 대장정을 끝냈는데, 나는 왠지 서러워졌다.


    눈에 다 젖어버린 내 옷도, 가방도 머리칼도 서럽고, 이렇게나 고생해서 도착했지만 나는 30분이나 지각한 것도 서러웠다. 요즘 나는 이렇게 하잘 것 없이 서러워진다. 그 고생스러움이 쓸데 없는 나에 대한 연민만 불러일으킨다. 정말 쓸 데 없다. 못난 감정이다.


    그런 서러움도 일상 속에 젖어들면 성가신 감정이 되어버린다. 오늘 하루의 일을 시작하는데는 서러움도, 눈발도 다 잊어버린 채 지금 당장에 집중해야한다. 그런 것에 서러워하지 않는다면 성숙한 어른인 걸까. 내가 꿈꾸는 대단한 "성인 여자"는 그런 것에 초연하겠지. 확실하고, 정확하며,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서러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자꾸 서러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게 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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