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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Feb 10. 2018

순수함에 대한 상념들

   순수한 사람은 아름답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 기쁨이 온다. 하지만 나는 순수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이 연하고 맑아서 다치는 사람들이 싫었다. 믿을 만한 사람을 믿지 않고, 뱀같이 징그러운 사람을 믿는 순진한 눈빛이 답답했다. 오히려 그들이 더 미워졌다. 독사들에게 속아 그들에게 힘과 권위에 연료를 제공하고,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순수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나를 괴롭혔다. 

 

 너는 대부분 순수하지만, 얕고 약은 사람이었다. 나 역시 순수하지만 꽤나 약아빠졌기에 너에게 크게 사로잡혔을 것이다. 진실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지만, 스스로의 연약함에 짓이겨져 살아남기를 택하는 인간. 그런 네가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너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매 순간 반했다. 아마 흔들릴 줄 아는 사람이기에 사랑했을 것이다. 


   나를 일 순간에 울게 만들 수 있는 너였던 만큼, 내 삶의 지배권은 너에게 있었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던 내가 몹시 좋았다. 내 마음의 돛대가 명확히 목적지를 향해 있었기에, 거기에는 일말의 모순감이 없었다. 이 모순 감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너를 향하는 내 마음은 단 한 점 의심없는 진실이었고, 가장 완벽한 순수였다. 온전히 시간낭비였던 내 길었던 짝사랑은 순수했기에 충분했다. 너를 통해 나는 조건없는 순수를 배웠다. 


   나는 약한 사람이다. 약해서 약은 사람이다. 이 사실이 아직 나에게는 눈물 나게 어렵다. '지금만' 혹은 '아직은' 과 같은 단서를 달고 싶다. 내가 약해서 남에게 기생해야 하는 순간들이 치욕스럽다. 자아를 훔쳐보고, 세계관을 빌려 썼다. "너는 순수한 사람이야."라고 나를 설명해주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무언가 속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완벽한 순수는 강박일지 모른다. 당신을 수용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욕심이 많은 탓에, 강해서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미숙한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 가보지 못한 세상이, 사랑해주지 않은 네가 아직 탐이 난다. 


   아마 이러한 마음들은 조금씩 흐려질 것이다. 욕망으로 추동되어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고, 남을 부지불식간에 해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 마음이 깊고 깊어져, 어느 순간 강한 내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놓칠 수 없다. 순수하고, 또한 강인하며 명확한 현실인식 속에서도 또 다시 누군가를 끈질기게 믿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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