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부산 여행기
코로나가 일상이 되고난 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면, 여행의 욕구일 것이다. 나 또한 여행을 참 좋아한다. 특히 매년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하곤 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미 해외여행은 먼 훗날의 소망이 된지 오래다. 요즘엔 유튜브에서 다양한 도쿄 브이로그 영상들을 보면서 도쿄앓이 중이다. 도쿄에서의 행복한 추억과 더불어 '내가 왜 미처 도쿄에서 저걸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면서 여행의 욕구가 한없이 커져만 간다. 지금 나를 도쿄에 데려다준다면 누구보다 재밌게 놀 자신이 있다. 정말 진심이다.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은 잠시 접어두고) 올해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많았다. 그 중 상반기에는 나와 남자친구가 신경을 많이 써야했던 이벤트 하나가 끝났다. 이를 기념할겸 올 여름 4박 5일이라는 시간의 휴식을 갖기로 했다. 우리가 정한 여행지는 바로, 부산. 우리의 첫 부산은 코가 빨개질 정도로 추운 한겨울이었는데 이번엔 긴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 가기 전 일기예보를 가득 채우던 비 소식과 올해 장마가 시작된다는 뉴스들로 날씨에 대한 기대는 아예 내려놓고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난 뉴욕 여행 때처럼 첫날만 비가 추적추적 오다 다른 날들은 해가 쨍쨍 뜨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비를 멈추게 하는 날씨요정들이었다. 평생 이 행운의 능력이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행을 시작한 해운대에서는 호캉스를 즐겼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보이는 부산 바다 뷰는 지금도 벌써 그립다. 이번 여행 때는 문득, 호텔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에서는 '루틴'의 성격을 가진 것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하고 다녀오면 어김없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침구의 모습, 아침에 일어나서 '뭐 먹지?' 고민을 해결해주는 조식, 1일 2사우나 (아침 저녁으로 호텔 안 사우나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까지, 일상 속 나의 루틴이지만 좀더 편리해진 것들이 소소한 행복을 주었다.
여행을 마무리한 광안리에서는 내가 몇년 전 우연히 SNS에서 발견해 저장해두었던 개인 호스트가 운영하는 숙소에서 머물었다. 개인 숙소는 아무래도 호텔보다 나의 수고가 더 들지만, 개인 호스트가 직접 꾸민 공간 속에 담긴 취향에 공감하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이다. 호텔로 즐비한 해운대와 달리, 광안리 숙소 주변은 좀더 사람 사는 동네 냄새가 났다.
내가 느끼는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편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숙소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는 것이다. 몇일밖에 안되는 시간이어도 그 시간 동안 이 동네와 친해지고 익숙해져서 정이 드는 과정을 즐긴다. 걸어다니며 우리 취향에 맞는 장소들을 마음 속에 찜해두고 시간이 날 때 꼭 방문한다. 인터넷으로 손쉽게 찾는 핫플도 좋지만, 우리가 직접 간판부터 공간의 느낌까지 물색하며 고른 공간은 유독 빨리 정이 든다. 특히 광안리 숙소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있어서 아이들이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모습도 훔쳐보고, 또 10분 걸어가서는 부산 대표 관광지답게 광안대교가 펼쳐진 부산 바다도 볼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좋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좋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 그냥 그 감정에 충실할 때도 있고 때로는 '왜 좋은지' 스스로 되물을 때도 있다. 언젠가 적어둔 기록처럼,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방식을 찾는 건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짧고도 긴 여행 시간 속에서는 무엇이 나와 우리에게 좋을지에 대한 선택들을 압축적으로 하게 된다. 여행 속에서 "왜?"를 묻다보면 그 속엔 나조차 몰랐던 내가 있다. 낯섦과 익숙함, 편리함과 수고로움의 적절한 균형이 있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 게으르면서도 부지런한 나. 더위와 배고픔에 취약한 나... 내 안의 수많은 나와 마주하며 나를 대하는 방식, 더 나아가 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경험이 곧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