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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anni Nov 08. 2021

다리가 휘어진 할머니의 ‘헬스타그램’

모든 삶의 양태와 취향은 그 시대가 제공하는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중년, 단체, 패키지여행, 이 결합해서 빚어내는 편견. ‘여행 부심’과 ‘예술 부심’이 이중으로 빚어내는 오만. 거기에는 미술관 전시를 관람하는 문화를 경험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취향이라는 걸 만들기 어려웠으며, 지금처럼 여행이 보편화되기 전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래서 여행의 장벽을 패키지여행으로 넘어보려는 세대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었다”

“여행에 정답이 있나요”
김혼비, <다정소감>, 안온북스


이미 몇 년 전 칼럼에서도 읽고 감명받은 바 있는 내용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단체관광 아주머니들을 비판한 이에게, 그리고 비슷한 편견과 오만을 갖고 있었지만 인식도 못하던 나에게 김혼비 작가님은 따끔한 한 마디를 건넨다.


몇 년이 지난 오늘,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부모님과 함께 갔던 제주도의 ‘본태 박물관’과 ‘빛의 벙커(반 고흐전)’ 에서의 경험이 생각났다.


(왼) 빛의 벙커, (우)본태 미술관 (너무 좋았지〰)


 아니었으면 이런데 오겠어”, “신기한 경험이다라고 말씀해주시던 두분과 나는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사실 어릴 때부터 나를 박물관과 절에 데려가  분들은 우리 부모님이다. 내가 뉴욕에서 짧게나마 거주하며 미술관과 박물관을 전전할  있었던 것도  그들이 내게 주신 경험의 기회였다.


모든 삶의 양태와 취향은 그 시대가 제공하는 경험의 격차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나 각자의 문화유산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단순히 특정 방식의 예술감상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배제한다면 다양성의 풍요는 쪼그라 들것이고, 현재의 감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어떤 시대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저 그 삶의 양식이 결정될 뿐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가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90년대’라 하며 90년대 영상을 보여주는데, 보다 보면 (레트로가 유행이라 그런지) 그냥 동 세대 사람들 같다.


출처: 크랩 KLAB ‘아침밥 절로 소화되던 90년대 지하철 풍경’


물론 저들은 이제 50-60대를 맞이하였겠지만, 그들이 20-30년 뒤에 태어났다면 저 영상 속 일부는 인스타 힙쟁이가 되지 않았을까?


다리가 휘어 걸음이 불편한 어느 할머니도, 몇십 년 뒤에 태어나셨다면 몸을 살피고 돌아보다 결국 헬스타그램을 올리고 계시지 않으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것은 내가 운동을 접하고 자세를 교정하며 건강과 자세에 더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잘못된 자세로 오래 살다가 결국 발걸음 하나 떼기 힘든 노년을 맞이하시게 되신 분들을 보며, 나를 대입해보기도 하고 그들에게 주어지지 못한 기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 역시 수십 년 전 태어났다면 몸의 뒤틀림 같은 것 신경 쓰지 못한 채 당장의 보리밥에 급급 했겠지. 지금의 내가 헬스타그램을 올릴 수 있는  건 운동이 보편화되고, 여성의 근육이 멋진 것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일찍부터 주식 등 재테크에 깨어있는 어린 친구들이 부럽고 샘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또 다른 세대에 비하면 더 이른 것일 수도 있겠지.



이제는 세계적으로 힙한 것이 된 한국의 대중문화도 사실 외국의 문화를 동경하고 받아들이며, 유치하지만 적극 ‘나만의 것’을 만들어 온 이전 세대의 유산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80년대 해외 팝 레코드를 구해 듣던 어떤 청년과 90년대 힙합 모자를 쓰고 다니던 어떤 이들과 2000년대 외국영화에 빠져 살던 그 모든 세대의 유산이 만들어낸 것이 현재의 문화이자 언어이다.


Coldplay “Higher Power” 뮤비 한 장면, 오래된 서울골목 배경 ‘Ambiguous Dance company’의 댄스로 구성되는데 그걸 보며 저런 생각을 했다


각자는 그 시대가 주는 기회와 양식에 맞춰 새로움을 발견하고 문화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 양식을 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그것이 또 밑거름이 되어 다음 세대를 일구어 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뿐만이 아니라 이미 시대를 살고 지나간 사람,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길에서 마주치는 아저씨까지도 하나의 감사한 ‘세대’로 묶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세대에 대한 불편함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아버지 세대를 ‘인간사’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 피식 대학의 ‘한사랑 산악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댓글이 그러기를 “그저 시끄럽게 느껴지던 아저씨들의 대화가 어느 순간 한사랑 산악회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러니까 하나도 시끄럽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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