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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Jan 03. 2023

임산부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27. 사방에 확진자가 널렸다.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고 약 3년. 단 한 번도 내가 이 문장을 쓰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에 10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던 그 시기에도 우리 부부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조심했고 또 조심했기에.


그래서였을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에도 코로나에 걸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조금 목이 잠긴다고, 체력이 좀 떨어졌다고, 피로가 쌓였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감기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열도 없었고, 기침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금요일 밤이 되자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목이 완전히 잠기고 가래가 나왔다. 약간의 열감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잔기침이 시작됐다. 전조증상 없이 갑작스러운 설사도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도 선명한 두 줄이 찍혔다.


혹시나 싶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코로나 검사키트를 들고 온 아내가 이불을 덮고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는 내게 일어나 앉으라고 말한다. 검사해 보자. 혹시 모르니까라고 말하면서.


검사 키트에는 너무도 선명한 두 줄이 찍혔다. 망했다. 두 줄이 그어진 키트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아내와 더 빨리 떨어졌어야 하는데. 당연히 코로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격리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아니, 더 빨리 테스트를 해볼 생각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갖가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일단 장모님 댁으로 가 있어요.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까. 일단은 장모님 댁에 남는 방이 있으니까 거기서 격리를 해요. 나는 여기서 격리하고 있을게요.”


아내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일주일치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겨 처가로 향했다.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장모님이 계신다는 게 이렇게 힘이 된다. 역시 가족은 가까이 있고 봐야 하는 건가 싶었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외로운 주말을 보냈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작은 공간에 덩그러니 남아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을 우리는 버거워했다. 유일한 위로는 화상통화와 카톡뿐이었다.


그래도 아내에게 특별한 코로나 증상이 없다는 말이, 그리고 그곳에는 유사시에도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그랬었는데. 그래야 했었는데.


생각하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정말 생각하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아내의 피난처인 장모님 댁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장모님과 처제가 코로나에 걸렸고, 장모님 댁에서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충분할 것이라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장모님은 안방에, 처제는 처제 방에서 격리를 시작했고 주말부부인 장인어른은 안전을 위해 지방 사택에서 올라오지 않으셨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처남 한 사람뿐이었다. 그마저도 처남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면 집에는 코로나 환자들만 남는 상황. 뭔가 단단히 잘못되기 시작했다.


월요일이 되어 아내는 회사에 갔다. 의료재단을 계열사로 보유한 아내의 회사에서는 임직원에게 무료 PCR검사를 해주었다. 월요일에는 다행히도 음성이 나왔다. 정말로 이렇게 넘어가나 하고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지만,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화요일 오후.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PCR검사 결과 양성.


아내의 증상은 나와 똑같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아내는 나와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공유했다. 이게 뭐 좋은 거라고 이런 것까지 나눠가지나 싶지만, 결국 내 탓이다. 내가 더 조심하지 않았던 탓에, 임산부 아내가 코로나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내 탓이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같은 확진자가 되어서.


빡빡하게 채워갔던 캐리어를 들고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같은 확진자가 되어서. 3일 만의 재회. 너무도 반갑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그런 우리의 재회.


그렇게 우리 부부의 코로나 투병기가 시작되었다. 일주일간의 격리. 코로나에 걸린 것도 처음인데, 심지어 임산부인 아내. 미지의 영역인 코로나 투병기간으로, 그렇게 우리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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