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2주가 지났다.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라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양수검사를 받은 지 2주. 정밀검사를 받고 며칠 동안은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그냥 비용이 몇 십만 원 더 들더라도 결과가 3, 4일 안에 나오는 추가 검사를 신청할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불안감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처럼 이야기했다. 고위험군이라 해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그러니 별 문제없을 거라고. 별 문제가 없을 테니, 그냥 평소에 지내던 대로 그렇게 지내자고.
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자 망각의 동물이라고. 별 문제없을 거라 스스로 되뇌던 말은 믿음처럼 굳어졌고, 곧 나는 검사 결과에 대한 기다림마저도 일상의 루틴 뒤로 미뤄둘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검사를 받았었다는 사실조차도 조금은 희미해지고 있던 그런 어느 저녁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거 봐요. 괜찮을 거랬잖아.
“방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아내가 말했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괜찮구나. 우리 꼬물이는 건강하구나.
“아무 문제없대요. 전부 다 정상이래.”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내의 잔잔한 목소리가 호숫가를 쓸어내리는 봄날의 바람처럼 귓가를 스친다. 달콤한 행복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거 봐요. 괜찮을 거랬잖아요.”
회사 동료와의 술자리가 있던 날 저녁, 이제 두 돌 남짓한 아들을 가진 동료가 말한다.
“으하하. 그럴 줄 알았어. 병원 이거 다 상술이에요. 비싼 검사받게 하는 거지.”
호탕하게 웃으며 잔을 부딪히는 동료는 너스레를 떤다. 나이는 조금 아래여도 출산과 육아에 있어서는 내가 한참 배워야 할 선배다. 잔을 마주하고 웃음으로 답한다. 순식간에 술잔을 비운 그는 나의 잔을 채워주며 아주 조금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말한다.
“하기사 결과가 잘 나왔으니 이런 농담도 할 수 있는 거죠. 맘고생했을 텐데. 고생했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참 정이 많은 사람이다.
벌써 바뀔 게 있나요?
“아내가 임신을 하고, 참 자잘하지만 많은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요.”
나의 말에 동료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벌써 바뀔 게 있나요? 뭐가 있지?”
“예전과는 달라지는 게 생겨요. 예를 들면 매일 아내의 배에 튼살크림을 발라주기도 하고, 예전에는 아내가 운전을 좋아해서 대부분 주말에 아내가 운전을 했다면 지금은 그 비율이 반대가 되었고.”
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동료는 껄껄 웃으며 답한다.
“애 태어나면 그런 거 아무것도 기억 못 할걸요? 전 2년밖에 안됐는데, 아내가 임신했던 기간 동안 아내 배가 불렀던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어요. 애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겪게 되는 변화가 너무 많고 거대해서. 지금 느끼는 그 변화들은 아마 머릿속에 남아있지도 않을 거예요.”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뭘 상상하건, 그 이상이 있을 거예요. 그가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답한다. 그래서, 지금의 생각이 모두 사라져 버리기 전에 열심히 기록해두어야겠다고. 내게 찾아오는 작고 소중한 변화들을 적어두고, 언제고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꺼내어보려고.
진짜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진짜 변화는 나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고 있다. 익숙하던 모든 것들을 낯선 눈으로 보며, 그 안에 숨어있던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된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나는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면서,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무력함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력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무력감. 노력이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 않고, 때로는 노력이 더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그런 잔인한 무력감.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내가 자라온 과정을 천천히 떠올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던 나의 부모님이 사실은 거대한 그리스 신화 속 타이탄 같은 분들이었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보다 잠이 드는 어머니는 아직 깨어있을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전화벨이 울린다. 세 번, 네 번, 딸칵. 여보세요? 어머니의 목소리.
“응. 엄마 아들. 뭐하세요? 저녁은 드셨어요? 별 일은 없지요?”
벨이 울리는 동안 골랐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답한다.
"응. 아들. 밥 먹었지. 잘 지내지?"
저녁식사. 잠. 운동. 날씨. 무수히 뻗은 곁가지와 같은 이야기를 스쳐가며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귀에 담는다. 어릴 적 나의 마음을 보듬어주던 어머니의 목소리다. 내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마다 나를 안심시켰던 그 목소리로,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이야기를 한다. 그래. 거봐. 괜찮을 줄 알았어.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거두지 않는 법을 익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말랑말랑하게만 보였던,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나의 부모님을 통해 나는 어떻게 부모가 되어야 할지 힌트를 얻는다.